1. [일본 서점 대상]이라는 타이틀에 속고 말았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전에 목숨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당연히 받을 수 밖에.

   게다가 출판사와 직원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 '서점대상'의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2. 가장 짜증나는 부분은 이 소설이 일본어 사전을 소재로 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 소설이 인기가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기나라 말을 아끼고 사랑하며 사전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 읽는 사람은 좋아할 수 밖에.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에 번역되는 것은 또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본어 사전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니...

   우선적으로 작가가 열심히 설명하는 뉘앙스의 차이를 한국 독자는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러니 짜증난다.

   국내 출판사의 구조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출판사의 구조도 전혀 알 수 없으니 답답하고 짜증난다.

   소설의 소재가 전혀 익숙하지 않으니 공감이 없고 소설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웠고 일본 출장도 다녀서 일본어 사전을 자주 사용했는데도 답답하다.

   일본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내가 느낀 것 이상의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3. 소설의 힘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이야기를 찾을 수 없다.

   주인공이 회사에서 성공하는 성장과정이 그려지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의 사랑이 뜨겁지도 않다.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에피소드들이 등장하지도 않고 반전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전체적으로 미지근하고 싱거운 느낌의 이야기들이 잔잔히 이어지는 소설이다.

   소설적 재미를 나는 전혀 찾을 수 없다.

 

4. 그래도 긍정적인 면은 열정과 성실함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사전을 만드는 일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요령을 피우지 않고 꾸준히 전진하는 성실함이 만드는 결과.

   그 결과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은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그걸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미우라시온, 배를엮다

1. 우선 이우혁 작가가 바라는 대로 이번 영화화는 성공하기를 바란다.

 

2. 그런데 영화의 원작이 [퇴마록 외전]이라면 다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퇴마록은 이야기 보다는 재미에 우선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재미 보다는 퇴마사들의 인간적인 감정을 다루는 이야기에 촛점을 두고 있다.

    게다가 퇴마사들이 모인 초기의 이야기라서 능력도 떨어지고 악령의 힘도 떨어진다.

    요즘같이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영상들이 판을 치는 영화계에서 어설픈 이야기는 독이 될 수도 있다.

    걱정반 기대반의 심정으로 영화를 기다려 봐야 겠다.

 

3. 환상의 콤비라고 생각했던 박신부, 현암, 준후, 승희가 처음부터 죽이 맞은 건 아니었군.

    하긴, 아무리 힘든 일을 함께 겪었다고 해도 처음보는 사람과의 거리를 줄이는 것이 쉽지는 않지.

    특히나 나름의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퇴마사들은 더욱 더 스스로 벽을 쌓았을 것 같다.

    서로가 스스로 쌓아두었던 벽을 허물고 하나의 테두리 안에 다시 모이는 과정이 진솔하게 느껴진다.

    역시 만능은 없는 것이고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한자로 보면 '사람 인(人)'은 인간은 서로가 기대며 살아가야 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 승희에 대한 현암의 마음이 아무리 애틋하고 깊다고 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느끼는 것은 감정의 절약이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랑은 마음이 아니라 표현이다.

 

5. 약삭바르고 이익을 챙기는 주기선생의 또다른 모습이 신선하다.

    퇴마록을 읽은 사람이라면 주기선생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주기선생의 태도가 현실에 더 맞지 않는가? 더 인간적이지 않는가?

    인간은 도인이 아니기에 자기 스스로의 이익을 챙기려 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주기선생의 모습은 이익보다 정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존과 다르다.

    가끔은 주기선생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모습도 그렇지 않은가?

이우혁, 퇴마록외전

1.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는 아버지도 없어지면 가정이 무너진다.

   아버지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가정을 지키는 기둥이 된다. 그건 사실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떨어져서 지냈던 기간을 기억해 보면 가정이 많이 흔들렸던 기억이 난다.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의 부재가 발생했다면 좀 더 쉽게 적응할 수 있겠지만

   아버지가 존재했던 기간이 길면 길수록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을 크다. 아버지는 가정의 기둥이다.

 

2. 소설 속 아버지는 자본과 소비가 아버지와 자식들 사이에 끼어들어 관계를 망친다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할 정도로 급속한 가정의 해체과정을 보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로 자본과 소비를 핑계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소설 속 선명우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원하지 않는 결혼이었고 그 후에 회복되지 않은 관계에 있다.

   스스로가 가정에서 소리 내기를 포기하고 자본과 소비를 핑계로 자기 합리화에 치중했던 것은 아닐까?

   부인과 자식들의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관계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관계를 위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당할 각오가 있었다면 가족이 자본과 소비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역할을 가정의 캐쉬카우로 스스로가 정의해 버린 후에 핑계를 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3. 내 아버지를 생각해보면 언제나 접근할 수 없는 커다란 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아버지가 나에게 다정하게 대했던 기억은 내 머리속에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정성을 다해 봉양해야 한다고 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스스로 벽을 만들고 접근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은 아버지들에게는 그저 놀이다. 아이와 함께 게임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간혹 함께 게임을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아이와 함께하기 위한 봉사(?) 정도로 치부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에 진짜로 빠져서 왜 아이가 좋아하는지, 어떻게 빠지게 되는지 경험할 생각은 없다.

   아이가 좋하하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모든 것들(게임, 놀이, 운동, 여행 등)은 금방 지친다. 힘든 일이 된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좋아하려 노력하고 그것이 좋아졌을 때 아이와 함께 하면 오래가고 즐거운 일이 된다.

   관계의 설정에 서툴기 때문에 스스로가 가정의 캐쉬카우라고 자기를 비하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4. 집 나간 아버지는 찾아야 하는가?

   어린 아이처럼 충동적으로 나간 것도 아니고 돌아갈 길을 몰라서 돌아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돌아가기 싫어졌을 뿐이다. 그런 아버지를 끝까지 찾아야 하는 것일까? 아버지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나?

   이미 가정을 버린 아버지에게 가정에 대한,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나는 우습다.

   결국 소설 속에서도 아버지를 찾아나선 시우가 아버지의 버림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그게 정답이다.

   지나치게 강조되는 가족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우리 사회에 지나친 부담이 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삶을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고민해 보게 된다.

   아버지의 입장이 아니라 자식의 입장에서도 부모와 형제의 틀을 벗어나고 싶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좀 더 쿨해질 수는 없는가? 이제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의지하는 삶은 딱 성인이 될 때 까지만!!!

 

5. 소설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

    점점 더 힘을 잃어가고 있는 전통적 윤리규범의 가치를 아버지의 부재로 다시 조명해 보려 한다.

    그런데 왜 나는 소설이 원하는 교훈이 아니라 정반대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내가 너무 지쳤나 보다.

박범신, 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