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래간만에 만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언제나 유쾌함이 넘치는 작가인데 이번에 조금 씁쓸한 웃음이 난다.

 

2.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서 인터넷 댓글을 소설에 끌어들인 시도는 신선하고 재미있다. 작가 자신이 인터넷 게시판의 오타쿠라도 되는 듯, 게시판에서 일어나는 논쟁의 흐름에 대해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익명성을 바탕으로 근거없는 악플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는 잉여인간, 논쟁의 본질에서 벗어나 전혀 상관없는 논리의 비약으로 자신의 엉뚱한 주장을 정당화시키는 궤변론자들, 모든 것이 거짓이고 꾸며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듯 진심으로 걱정하고 설득하려는 사람들까지. 온갖 부류의 인간들이 익명성의 그늘 아래서 모이는 인터넷 게시판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지금 우리 시대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깊고 심각한 고민은 되도록 멀리하고 가면 뒤에 숨어 자신을 정당화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는 너무 외롭지 않은가? 쥰페이가 느끼는 외로움은 결국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는 외로움과 같은 것이 아닐까?

 

3. 본문 중에서 '청춘이 무모한 것은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청춘은 아직 경험한 것이 적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많아서 무모한 것이다. 내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감동을 모르고, 일에서 성취를 이루어 냈을 때의 벅찬 흥분을 모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의 행복을 모르기 때문에 무모하다. 모르기 때문에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의 열매를 안다면 너무도 잃을 게 많아서 무모할 수 없다. 정년퇴임한 교수가 쥰페이에게 해주는 이 말이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청춘을 무모할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잃을 것이 없지만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잃을 것이 너무도 많은 것이 청춘이기 때문이다. 청춘의 무모함에 대해 먼저 살아 본 사람이 전하는 조언이 이 소설이다.

 

4. 지금의 사회는 외로움을 강요하는 사회이다. 맞벌이로 인해 아이들은 어릴 때 부터 부모와의 격리를 체험하고 그것은 그대로 외로움이 이 사회의 보편성임을 강요하게 된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관계를 넓히며 인생을 살아갈 무기를 갖게 되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학원으로 휘둘리며 친구의 소중함을 체험하지 못한다. 친구라기 보다는 경쟁상대로 인식하며 살아가기를 강요 받는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사랑을 해도 조건에 휘둘리는 사랑에 또 한번 상처를 입는다. 인터넷의 발달로 세상은 가까워지고 인간관계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사람들은 좀 더 친해졌다고 믿지만 실상의 우리는 그저 외로울 뿐이다. 쥰페이를 아는 척 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그와 친하다고 볼 수 없듯이 우리가 지금 외롭지 않다고 느끼게 만드는 이들과의 관계도 실제로는 우리의 핑계일 뿐이다. 쥰페이로 대표되는 우리들의 자화상에 씁쓸함이 베어 나온다.

 

5. 난 개인적으로 열린 결말을 싫어한다. 어떤 식으로든 작가가 결말을 내 주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가장 큰 단점은 열린 결말이다. 내가 상상하는 결말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는지 알 수 없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난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알고 싶다. 과연 쥰페이의 결말은 무엇일까?

오쿠다히데오, 쥰페이다시생각해

1. 미래를 기억하는 남자.

   자신이 겪게 될 미래를 온전히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고통일까?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를 비롯한 세계적인 예언자들도 자신들의 미래를 볼 수는 없지 않았는가?

   그런데 세상의 미래가 아닌 자신의 미래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것은 너무도 잔인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그 고통이 덜어질 수 있을까?

   오히려 정해진 이별을 피할 수 없음을, 정해진 이별의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되고 더 슬퍼지지 않을까?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한 엘리의 곁을 떠나야 했던 가야의 마음, 남겨진 엘리스가 가질 고통까지 함께 떠안지 않았을까?

 

2. 과거를 기억하는 여자.

   이건 더욱 더 가혹한 형벌이며 저주받은 재능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기억을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망각의 힘도 반드시 필요하다.

   망각을 할 수 없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있을까? 잊고싶은 기억을 모조리 기억해야 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눈 앞에 다가온 사람과의 관계도 이별로 끝난 후 남겨진 기억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두려움에 피하게 되지 않을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망각은 인간이 숨을 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데 그것이 없다면 난 살 수 있을까?

 

3. 자신의 저주받은 재능을 이용하기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1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펼치는 복수극.

   10년 후 자신의 가족들이 겪어야 할 고통으로부터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10년 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남자의 이야기.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이고 소설적 상상력이 있기에 가능한 복수이지만 통쾌함은 그대로이다.

   자신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그런 운명속에 밀어넣은 이들에게 가하는 복수는 짜릿하다.

   단 5일간의 짧은 인연이었지만 운명으로 엮였기에 더욱 더 간절했던 가야와 엘리스의 사랑이 안타깝다.

   스토리가 탄탄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도 있고, 애절한 사랑도 있는 한 편의 영화샅은 소설이다.

 

4. 그렇다고 모두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의문인 것은 가야의 능력은 자신의 미래를 기억하는 것인데 죽은 후의 일은 어떻게 알았을까?

    기억이란 말 그대로 자신이 살아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인데 죽은 후 10년 뒤에 일어날 일들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가기는 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데...

 

5. 세상에 많은 음모론이 존재하지만 그 진실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실제로 궁극의 아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세상을 주무르는 세력을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힘을 가진 이들이 힘의 논리로 인간의 정신적 가치들을 억누르고 있는 모습들. 그런 세력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장용민, 궁극의아이

1. 온 세상이 '멘토'라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는 '힐링'이 세상을 지배하더니 올해는 '멘토'라는 주제가 지배하는 것 같다.

   이런 흐름속에서 이 책은 '이순신의 멘토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파헤친 책이다.

   다소의 과장과 왜곡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영웅이자 멘토인 충무공 이순신.

   그런 이순신을 있게 만든 이들은 누구이고 이순신은 누구의 영향을 받아 성장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해답을 찾고 싶었으나 욕심이 다소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2. 저자가 지독한 '이순신빠'라는 건 확실하다.

   스스로 이순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로 이야기 하면서도 이순신을 그 위에 둔다.

   여기에 나오는 15명의 인물들 모두 빛나는 역사의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순신 보다는 아래이다.

   물론 저자의 논리에 나도 동의하고 나 스스로도 '이순신빠'임을 인정하지만 좀 과하다는 생각이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멘토를 따라하지 말고 스스로에 맞게 응용하라'는 메시지 같다.

   그런 면에서 이순신을 그런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여 민족을 구원한 인물이었다는 건 나도 동의한다.

 

3. 각 인물들의 삶과 그 과정에서 이순신이 얻은 교훈, 그것을 응용하는 방식.

   임진왜란에서 구국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독한 공부와 배운 것을 응용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그리고 이순신이 멘토들에게서 얻은 교훈은 그대로 오늘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교훈들이다.

   고전의 내용이라고 치부하고 넘길 것이 아니라 오늘의 리더쉽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따로 읽기 힘든 고전의 내용을 발췌하여 축약된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다.

 

4.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이순신의 방대한 독서량이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이순신의 독서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고금을 망라하고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게다가 이순신이 활약했던 시대는 전쟁의 시대였고 그가 있었던 곳은 전쟁의 한 복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순신이 읽은 책의 양이란 나같은 범인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방대한 독서량이 그에게 뛰어난 전략과 전술, 응용력을 가져다 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순신이 민족을 구할 수 있었던 힘이 되었던 것이니 독서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5. 이순신의 삶을 보면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않으려 노력한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백성을 위해서는 한없이 자애로웠고 군사들과의 일심과 동심을 강조하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을 통해 군사들은 그를 믿고 따랐으며 백성들을 그에게 의지해 삶을 꾸려갈 수 있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믿음과 신뢰는 순자가 말한 '왕자의 군대'이며 불패의 군대이다.

   우리는 이순신의 이야기를 기적이라 말하지만 그 기적이란 그가 만들어낸 무한한 믿음이 가져온 결과이다.

   한 팀을 이끌어 가는 팀장의 위치에 있는 내가 배워야 할 리더쉽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것이지 않을까?

박종평, 흔들리는마흔이순신을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