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국원왕 사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김진명의 고구려 시리즈 5탄이다. 고구려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왕으로 기록된 고국원왕을 다시 조명해 보고 싶었던 욕심이 과했던걸까? 나로써는 김진명 작가가 비판받는 가장 큰 부분인 지나친 민족주의가 다시 한번 문제가 된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가 더 앞선다. 책의 내용은 재미있고 전쟁의 시대에 평화를 꿈꾸었다는 해석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의 기록이 심각하게 훼손될 정도라면 문제가 아닐까? 고국원왕이 진정 평화를 원했던 왕이라면 백제를 먼저 침략했다는 역사의 기록은 거짓이 된다. 백제군에 맞서 싸웠다는 기록도 거짓이 된다. 모용부의 침입을 피해 단웅곡으로 피신했는데 그것을 신하들의 반란에 의한 감금으로 해석하면 어이가 없지 않은가? 치욕의 역사는 치욕의 역사 그대로 서술하는 것도 작가의 의무가 아닐까? 지나친 미화나 재해석은 우리 역사에 대한 또다른 만행이다.

 

2. 작가의 해석이 맞다고 해도 사유는 여전히 부족한 왕이다. 미천왕이 만들어 놓은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백성들을 지키지 못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시대에 평화를 꿈꾼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전쟁의 시대의 군주들은 모두가 호전적이었기 때문에 전쟁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들도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세상을 원했지만 시대의 흐름이 그들에게 전쟁을 강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들에게 전쟁이란 자신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호전적인 상대의 침략으로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평화만을 외친다면 그것 자체가 지도자로써의 자격미달이다. 평화를 원했던 고국원왕이 얻어낸 것은 무엇인가? 결국 그는 고구려의 백성들을 지키지도 못했고 전쟁을 멈추지도 못했다. 강성했던 고구려의 군대는 무력화되고 고구려의 백성들은 치욕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결국 모용부의 연나라가 망했지만 고구려는 살아남았다는 것으로 사유의 승리라고 주장한다면 그것 자체가 심각한 언어도단이다.

 

3.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살아가는 것 자체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노예의 삶 보다는 죽음을 원하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다. 사유가 말하는 보호란 단순한 목숨줄의 구명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적 치욕을 당해서도 아무런 저항도 못해보고 굴욕적인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백성을 위한 삶인가? 그래도 목숨은 부지하고 살고 있으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유의 논리를 소설 내내 주장하고 있으니 읽으면 읽을 수록 화가 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고국원왕의 치욕을 무리하게 감싸 안으려 했던 작가의 과욕이 불러온 결과가 아닐까?

 

4. 그나마 소설에서 보여주는 소수림왕 고부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소수림왕의 동생인 고국양왕 이련의 모습도 보여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광개토대왕의 아버지인 고국양왕이 나타나면서 앞으로의 이야기에 강한 기대감이 생긴다. 그래서 빨리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다. 다만 고국원왕에 대한 이야기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야사에 의하면 이련은 고국양왕의 친자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고구려 황후가 모용부에 잡혀간 사건이 발단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모든 원인을 제공한 고국원왕에 대한 재해석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김진명, 고구려5

1.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백야행]에 나오는 유키호를 능가하는 악녀의 탄생이다. 10개의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지독한 악녀로 등장하는 미유키의 모습은 전형적인 팜므파탈의 모습이며 자신을 위해 어떤 악행도 망설이지 않는 과감한 인물이다. [백야행]의 유키호에게는 료라는 남자와의 이야기가 있고 어느 부분 동정을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이 소설의 미유키는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순수한(?) 악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녀가 그렇게 지독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그녀에게 무기가 되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따라가보면 오쿠다히데오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2. 지금의 우리나라도 나아진 것이 없지만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관계와 뇌물과 관행이라는 악습은 우리사회의 고질병이다. 일본도 어쩔 수 없는 문제인가보다. 배경은 일본의 지방도시라고 하지만 대도시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외부에서 보기엔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부정과 비리의 덩어리로 보이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불문률이라면 인정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삼는다. 누구나 하는 일이라서, 관행이라서, 이곳의 불문률이기 때문에 하는 행동들에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여기서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소설에 나오는 지독한 악녀 미유키의 행동이나 다른 사람도 그러니까 나도 그런다는 식의 죄책감 없는 불법행위들 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똑같고 어떤 경우는 미유키의 악행보다 더 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관행들에 대해 우리는 지금처럼 죄책감도 없이 묵인하고 살아야 하는가? 10개의 작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번 쯤 해봐야 하지 않는가? 작가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3. 10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마지막에 가서 하나의 결론으로 연결되는 구성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오쿠다히데오의 소설에서는 본 적이 없는 구성이다. 또한 이야기의 주제도 주로 개인적인 것이었던 작가가 사회적인 것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읽은 오쿠다히데오의 소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이 소설의 가장 큰 재미는 결말이 가져다 주는 블랙유머가 아닐까? 결말에서 보여주는 미유키의 모습은 통쾌하기까지 하다니... 천하의 악녀를 응원하고 그녀의 행동에 통쾌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들다니... 오쿠다히데오의 능력이 하나 더 늘었다.

오쿠다히데오, 소문의여자

1. 역시 정유정이다. 폭발하는 이야기의 힘이 독자를 압도한다. [내 심장을 쏴라] 이후에 관심을 가졌고 [7년의 밤] 이후에는 완전히 빠져버린 작가. [7년의 밤] 이상의 이야기는 만들어 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의 이야기는 너무도 강렬해서 책을 읽고 3일이 지난 지금까지 강한 여운이 남아있다. 다른 소설을 읽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2. 어제 KBS 다큐멘터리 3일에서 동물병원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우리나라의 반려동물은 500만이고 함께 사는 인구는 무려 1000만이라고 한다. 국민 5명 중에 1명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인데 놀라운 수치이다. 실제로 이제 강아지나 고양이를 안고 다니는 사람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한 여름에는 개 짖는 소리에 이웃끼리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길가에는 유기견과 길고양이들이 넘쳐나다. 그 동물들도 한 때는 반려동물로 주인의 사랑을 받고 살았을 텐데 쉽게 버려진다. 반려동물들을 '애기'라고 부르면서 온갖 정성을 다 들이고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조금만 힘들어지면 쉽게 버리는 현실. 소설은 그런 인간의 이기적인 동물애호에 대한 돌직구이다. 개를 매개로 하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돈다고 하면 당신은 당신의 애견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가? 동물로 부터 시작되는 전염병이 발생할 때 마다 되풀이되는 '살처분'이라는 이름의 학살을 행할 권리가 과연 인간에게 있는가? 동물은 인간의 이기적인 필요에 의해서만 존재가치가 있는 것인가? 살처분되는 돼지들의 동영상을 보면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의 커다란 주제의식 하나를 알 수 있다.

 

3. 국가에 의해 봉쇄되는 '화양'이라는 도시의 상황이 80년의 광주를 떠올리게 해서 가슴이 더욱 아팠다. 계엄이라는 미명 아래, 다른 지역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상상할 수 없는 국가적 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외부에서는 상황을 알 수 없는 도시. 화양 이 외의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을 계속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80년에 우리도 그랬지 않은가? 광주에서 간첩들의 폭동이 일어났다는 언론의 왜곡을 그대로 믿고 광주를 우리는 버리지 않았던가? 그들은 간첩도 아니고 폭도도 아닌, 그저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는데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모르고 있지 않았는가? 작가가 의도를 했던 안했던 '화양'과 '광주'는 너무도 닮아있다. 우리 사회가 광주에 지고 있는 커다란 빚을 다시 상기시킨다.

 

4. 화양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엿볼 수 있다. 사회적 통제가 포기된 사회에서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으며, 얼마나 잔인할 수 있으며,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얼마나 지독할 수 있는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을 다룬 소설을 수없이 많았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세대의 이야기로 그려지면 더욱 더 실감이 난다. 여류작가라는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게 그려지는 리얼리티를 통해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져버린 무질서의 한 가운데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기력하게 무너지는지 극명하게 그려낸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처절하고 잔혹하게 리얼리티를 추구한 이 소설을 그래서 읽어내기 어렵지만 그렇기에 강한 여운을 남긴다. 적어도 이 사람은 살겠지라고 예상한 등장인물을 여지없이 죽여버리고 혼란을 수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결말을 예상하지만 전혀 다른 결말을 만들어 낸다. 오히려 이런게 현실이지 않겠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난 작가의 그 질문에 '그렇다'라는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5.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재형의 이야기를 통해 속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저 참혹한 현실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지옥같은 현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참된 속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썰매개들을 버려야 했던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가다가 지옥의 한 복판에서 진정한 구원과 속죄를 얻었던 주인공의 이야기. 가장 저주해야 했던 인간을 구원해야 했고 가장 혐오했던 인간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뜨거운 삶이 이야기가 지옥으로 변한 세상에 작가가 전하는 아주 작은 위안이 된다. 살처분 되는 동물들 처럼 세상의 다른 이들에 의해 '살처분'되는 화양의 시민들에게 재형의 이야기가 전해질 수는 없겠지만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시도했던 그의 노력이 남은 이들에게는 작은 희망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6. 수많은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지만 가장 특이했던 것은 늑대개 '링고'의 시선으로 바라 본 인간들의 세상이다. 인간에게 상처받고 인간을 증오하면서도 인간에게 구원을 받아야 했던 링고. 개가 사고능력이 있고 없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의 시선으로 바라 본 인간의 모습이 이 소설 전체를 통해 가장 뛰어난 블랙유머가 아닐까?

 

7. 강력한 이야기의 힘을 원한다면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진정한 속죄와 구원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읽어보길 권한다. 인간의 저급한 이기주의에 대한 돌직구를 원한다면 읽어보길 권한다.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엿보고 싶다면 읽어보기 권한다. 강추 !!!

정유정,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