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난 거부감을 가졌다.

내가 가진 윤리관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야기였기 때문이다.

70대 노인과 10대 소녀의 애로티시즘은 아직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윤리의 문제이다.

영화가 개봉되면서 주연 여배우와 그녀의 베드신이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며 또다시 불쾌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인간의 일차원적인 욕망에 대한 묘사가 이 소설의 매력일까?

직접 읽어보지 않고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인터파크에서 e-book으로 구매해서 완독했다.

결론은 이 소설은 70대 노인과 10대 소녀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애로티시즘은 더더욱 아니다.

이 소설은 70대 스승과 50대 제자의 애증의 관계를 10대 소녀를 매개체로 풀어낸 소설이다.

소설의 관계에서 주가되어야 하는 부분은 이적요과 은교가 아닌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라는 것이다.

만약 영화가 은교라는 여주인공의 육감적인 매력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면 난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시성'이라 추앙받은 위대한 시인이 사후에 남긴 노트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첫 문장에서 자신이 아끼던 제자를 살해했다고 밝히면서 그 배경에 한 소녀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문장에서 모든 궁금증이 발생한다. 왜 시인은 자신이 아끼던 제자를 죽여야 했는가?

두 사람의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들 사이에 있던 10대 소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은교라는 이름의 그 소녀가 대체 그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당연한 궁금증들.

그리고 시인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 서지우의 비밀노트가 드러나면서 사건의 진실은 더욱 궁금해진다.

작가는 그 둘 사이의 일들을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일차원적인 욕망에 날선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또한 존경과 신뢰가 미운과 증오와 분노로 바뀌는 과정을 통해서 인간의 관계라는 것의 허무함을 드러낸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 혹은 내가 아끼는 아랫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가?

흔히들 절대 무너질 수 없는 신뢰라고 하는 것도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지 않았는가?

인간 사회의 모든 관계에서 '절대'라는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항변하고 싶었을까?

다른 사람들고 그랬고 그들 스스로도 인정했던 이적요와 서지우의 신뢰가 은교를 통해 어이없이 무너진다.

나는 소설에서 은교에게 맞추고 있는 촛점을 최대한 분산시켜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에 시선을 두고 읽었다.

그렇게 읽어보니 이적요도 서지우도 참으로 불쌍한 세상을 살았다는 느낌이다. 물론 은교는 더욱 불쌍해진다.

스승은 자신을 배반한 제자에게 '사형'은 언도하고 그 죄책감으로 스스로에게 '사형'을 집행하며 스스로를 벌한다.

제자는 스승이 자신을 버렸음을 깨닫고 스스로 죽음의 형벌을 받으며 자신의 배반을 목숨으로 회개한다.

그들의 관계는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서로가 너무나 사랑했고 너무나 미워했던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70대 노인에게도 욕망이 있는가?는 또다른 질문이다.

인생의 황혼기에서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뛰게 만드는 설렘을 만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 설렘을 자신의 욕망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그 과정에는 수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나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도덕 등의 문제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무릎쓰고 자신의 욕망에 굴복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위대해도 탐욕덩어리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시인의 노트에서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을 상세하고 묘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시인이 소녀에게 품은 생각은 어리석다.

그러나 노트에서 보았듯이 그런 욕망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서지우라는 제자였고 그 배경에는 그들의 애증이 있다.

노인의 욕망이란 재능이 없음에도 끈기 하나로 버티는 제자에 대한 안쓰러움이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된 결과이다.

결국 노인의 욕망이라는 관점으로 소설을 읽는다해도 결론은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에 더 방점이 찍힌다.

소설에어 은교가 말하는 '끼어들 수 없는' 관계가 이적요와 서지우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신뢰와 유대감이었을 것이다.

은교라는 목적물을 두고 다투는 수컷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쓰다듬지 못하는 불쌍한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시인의 노트와 서지우의 노트가 교차로 편집되고 중간 중간 은교의 이야기가 끼어드는 구성이 좋았다.

한 쪽의 시선이 아니라 이적요와 서지우 두 사람의 시선이 균등하게 분배되고 서로가 균형을 맞추면서 이야기가 탄탄해진다.

조금씩 조금씩 변해하는 인간의 심리와 감정의 변화에 대한 묘사가 치밀하고 캐릭터의 개성과 일관성이 매력적이다.

자극적인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는 가슴아픈 이야기이다. 남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로 읽혔다.

영화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고 평가할 수 없다. 다만 읽지 않고 지나간다면 아쉬움이 크게 남을 소설이다. 추천 !!!

박범신, 은교

영화로도 대박을 친 [완득이]를 읽으면서 키득거렸던 기억이 선하다.

김려령 작가의 소설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젊게 느껴진다.

부모인 내가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내 아이가 속한 세상의 이야기를

마치 그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해서 전해준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내 아들이 서서히 들어가고 있는 청소년이라는 나이.

그 험난한 방황의 시기를 건너는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과 어떻게 다른지,

아이들이 진정 보듬어주기를 바라는 가슴 속 가시같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 소설은 흔히들 말하는 문제아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도둑이라고는 하지만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모범생의 모습을 보이는 해일과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고 아빠의 행동에 힘들어 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어보이는 지란.

가슴 속에 아픈 가시를 품고 있으면서도 어른들이 보듬어 주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우연이 겹친 인연으로 서로가 서로의 가시를 빼내어 주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해일의 단짝 진오와 지란의 단짝 다영은 각각 지란과 해일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면서 어울린다.

해일과 지란의 이야기를 축으로 진오와 다영이 양념처럼 섞이고 반 아이들과 담임이 조연이다.

가시를 품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이지만 무겁지 않고 가벼운 웃음으로 버무려져 있다.

요즘 나오는 청소년 대상 소설들은 어둡고 무겁고 침울하지 않아서 좋다. 현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를 기점으로 이렇게 밝은 청소년 소설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 명성에 걸맞게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도 시종일관 끊이지 않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마력을 부린다.

가벼운 이야기가 아닌데 전혀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재주는 김려령 작가의 최고의 매력이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요즘 '중학생병'에 걸린것 같다. 자기만이 오로지 옳다는 자존감 과잉의 병.

부모의 입장에서 하루하루 머리가 굵어지는 아들의 상대하는게 여간 힘들지 않다고 느낀다.

이런 소설은 그런 나의 부모노릇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정말 좋다. 강추 !!!

머지않은 미래, 생물학 공격을 포함한 전쟁으로 만들어진 디스토피아.

20대에서 50대 사이의 사람들은 모두 죽고 남은 것은 10대와 노인들뿐.

엔더라고 불리는 노인들은 전쟁 후 복구단계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확장시키고

스타터라고 불리게 되는 미성년자의 모든 권리를 빼앗아 자신들의 욕심을 채운다.

남겨진 미성년자들은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버려진 건물들 속에 숨어 살거나 비인격적인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린다.

물론 조부모가 있는 미성년자는 조부모의 보호속에 호화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린다.

주인공 캘리는 아픈 동생을 위해 자신의 몸을 엔더에게 빌려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러나 렌탈 도중에 렌탈을 주도하는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의 음모를 알게 된 캘리.

자신과 동생, 그리고 무고한 수많은 10대들의 운명을 구하기 위한 그녀의 투쟁이 시작된다.

 

얼마전에 영화로 개봉한 [헝거게임]과 비슷한 설정을 가진 소설이다.

[헝거게임]이 하나의 국가의 독재에 맞서는 다른 국가의 전쟁속에 한 소녀의 활약을 그렸다면

[스타터스]는 엔더로 대변되는 기득권들의 욕심에 휘말린 10대들의 운명을 건 소녀의 이야기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헝거게임]과의 유사성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많이 비슷하다.

10대들이 주인공이라는 것, 주인공에게 안타까운 로맨스가 있다는 것, 3각관계의 설정도 있다는 것 등.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가져온 끔찍한 디스토피아의 세계관을 그리고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

[헝거게임]은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10대들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스타터스]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극복하기 위한 개인들의 욕심이 무고한 10대의 목숨을 노린다.

비슷한 설정이고 이야기의 전개도 비슷하다. 아무리 부정해도 둘 사이의 연관성은 무시할 수 없다.

 

기존의 소설들에서 노인들의 모습은 대체로 따스하고 인정이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노인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10대들을 가차없이 이용할 정도로

잔인하고 포악하기까지 하면서 죄의식이 없고 도덕적 관념이 사라져 버린 당황스런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금까지 우리가 소설에서 접해왔던 노인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얼굴이 찡그려진다. 씁쓸하게.

그런데 한편으로는 소설속의 모습이 인간의 본성에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부족하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노인들의 모습이 현실적일 수 있다.

게다가 현대사회의 건조함과 조급함이 만들어 낸 지금의 노인들의 모습은 과거의 노인들과 다르지 않은가?

지금의 노인들은 젊은이들과 주저없이 싸우고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지금의 젊은이들이 노인들이 되었을 때를 상상해보면 충분히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그런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막을 수 있는 노력은 지금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삭막해지고 조급함이 지배하는 지금의 사회를 보다 인간적인 향기로 채워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읽는다면 실망감이 큰 소설이다.

그러나 그저 오락용을 생각하고 읽는다면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만약 [헝거게임]을 읽지 않았다면 더 재미있었겠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가 있었던 소설이다.

리사프라이스, 스타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