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으로 종말론이 팽배했던 20세기의 마지막을 기억한다.
수많은 종말론이 판을치고 저마다 종말의 증거라며 수많은 사건들을 들이댔다.
게중에는 너무나도 개연성이 있어서 솔깃해지는 내용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고 세상을 그렇게 흘러가 또 다시 종말론이 대두된다.
이번에 꽤나 그럴듯한 논리가 펼쳐지고 있고 영화나 소설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진다.
과연 올해 12월 21일에 세상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모습일까?
한국 판타지 소설의 시작이라고 평가받는 퇴마록 혼세편은 종말론를 배경으로 한다.
세상이 떠들썩했던 20세기말의 종말론을 배경으로 퇴마사들의 투쟁을 통해 메시지를 보낸다.
신의 분노에 의한 종말, 외계인의 침공에 의한 종말, 지구온난화에 의한 종말, 핵에 의한 종말 등.
수많은 종말 시나리오 가운데 이 소설은 전설적인 대홍수의 재림을 통한 종말을 이야기한다.
거기에 그동안 퇴마사들의 최대의 적이었던 블랙써클의 마스터의 영혼의 음모가 끼어있고
과거 가장 먼저 치수법을 알았던 고조선의 자랑스러워야 할 기억을 녹여내고 있다.
퇴마사들의 행동을 자신들의 시각에서 판단하고 그들을 없애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종족이 가진 미완성적이고 역겨운 본성에 화가나고 허탈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박신부의 말을 통해서 전해지는 메시지의 무게감은 절대 가볍지 않다.
세상의 종말은 신의 분노나 악마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의 섭리는 인간의 종말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인간 스스로 종말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신은 애초에 불완전하고 약한 존재인 인간에게 세상의 주인공 역할을 부여하면서
인간 스스로 계속 발전하면서 세상도 함께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믿었다.
그렇기에 신은 인간의 종말을 원하지 않으며 종말이 온다면 신의 균형을 깨는 인간에 의해서이다.
마지막 현암과 한빈거사의 대화를 통해 신의 균형을 깨뜨리는 인간의 오만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퇴마록의 가장 큰 매력은 기독교와 도교와 밀교와 불교의 힘이 하나로 합쳐서 싸우는 것에 있다.
박신부와 현암, 준후, 승희는 서로가 다른 종교적 배경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함께 싸운다.
그들이 사용하는 전설상의 기술들과 그들의 능력이 판타지가 아니라 그들의 화합이 판타지일 것이다.
현실의 모습이 어떠한가? 화합을 말하는 종교는 서로를 배척하고 인간도 서로를 배척하고 살지 않는가?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단군상의 목을 쳐버리는 것이 지금의 기독교의 모습이고
자신들의 교리에 맞지 않는다고 이슬람교의 성전인 코란을 불태우고 그것을 자랑하고 있지 않는가?
종말론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불안을 먹고사는 종교가 위로와 화합이 아닌 배척과 투쟁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의 종말이 온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런 인간과 종교의 오만함이 가져오는 비극이 될 것이다.
한국형 판타지의 시작을 알렸던 [퇴마록] 시리즈가 이제 마지막 '말세편'만 남겨두고 있다.
20년 가까이 지난 소설이라 지금의 시대와 전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대단한 작품이다.
처음에 나왔을 때, 다른 사람들이 열광할 때 함께 열광하지 못하고 이제서야 열광하는 내가 참 우습다.
그래도 이 소설 정말 대단하고 정말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 작품이다.
왜 우리가 PC통신의 단조로운 기계음을 견디며 눈이 빠지게 기다렸었는지 다시한번 기억하게 된다. 강추 !!!
P.S : 읽으면 읽으수록 '세크메트의 눈'이 지금의 스마트폰과 닮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