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번트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이 소설도 서번트증후군을 가진 수학천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도 폐쇄성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이라는 체제안에서 살아가게 된 박제된 천재의 이야기.
자신과 인연의 끈으로 엮여 있다고 믿는 한 여인을 찾아가는 너무도 기나긴 여정.
수학이라는 아름다움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험난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2.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다.
특별히 운명론을 믿지 않는 입장이지만 이 말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공감을 한다.
지금 내 주위에서 나와 함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우연히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이 이야기 하듯이 우리는 서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인연의 끈으로 묶여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와 내 주변의 관계들은 어떤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언제가는 묶여야 했던 관계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매일매일 만나는 사소한 관계들과 일상을 함께 이루는 모든 사람들이 소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끊어질 듯 이어지는 희미한 운명의 끈을 따라가는 주인공의 여정이 나에게는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3. '나는 거짓말쟁이다'라는 명제에 깔린 패러독스는 무척이나 재미있다.
내가 진짜 거짓말쟁이라면 위의 명제는 참이 되므로 참을 말한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내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위의 명제는 거짓이 되므로 거짓을 말한 나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소설의 첫 부분에 나온 이 명제가 이 소설 전체를 감싸는 커다란 복선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읽은 소설에서 참은 어디까지이고 거짓은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는다면 작가가 쳐놓은 커다란 덫에 걸려 허우적 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4. 북한 - 중국 국경 - 상하이 - 한국 - 미국 - 스위스로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은 그대로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이다.
자신의 가진 천재성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용해 나가면서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혐의를 가지게 된 주인공의 삶.
자폐증을 가진 한 소년이 수십건의 국제적 범죄와 연결되어 있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제시하고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말이 되게 만들어 버리는 작가의 스토리텔링에 빠져 들 수 밖에 없다. 그게 작가의 힘이다.
인도 소설 [Q&A](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최하층 주인공이 퀴즈쇼에서 우승할 수 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듯이
이 소설에서는 자폐증을 가진 수학천재가 국제적인 범죄자로 인터폴의 수배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들에 대한 설명이 이 소설의 줄기이고 작가가 전하고자하는 '인연'의 무게를 감당하는 힘이다.
5. 다만 주인공의 진짜 자폐증을 가진 사람일까?라는 의문은 든다.
내가 실제로 자폐증 환자를 알지는 못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일반인도 생각하기 어려운 트릭들을 쓰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알 수 없었기에 자폐증이라는 설정이 다소 무리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