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작가의 만화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연재할 때 챙겨보고 단행본도 구입한다.

그런데 어쩌다 이 작품은 단행본을 구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영화가 나온다고 한다.

이전에 읽었던 기억이 나서 Daum에 접속해 보니 어느새 유료화가 되어있었다.

나도 개발자이면서 '무료'에 물들어져 있었다는 반성과 함께 단행본을 구입했다.

(이왕이면 단행본을 구입해 주는 것이 강풀 작가에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강풀 작가의 만화들은 섬세한 표현들로 인해 영화화가 쉽지 않은 작품들이 많은데

이 작품은 그 중에서 가장 영화화하기 편한 작품이 아닌가라는 나만의 생각을 해 본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외에는 영화화에 성공한 작품이 없는데 이 영화의 성공을 기대한다.

 

만화는 연쇄살인마에 의해 한 여고생이 살해된 '강산빌라'를 무대로 펼쳐진다.

여학생의 죽음 이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의심하게 되는 2동 101호 남자 류승혁.

사람들이 조금씩 의심하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설마하는 생각으로 신고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희생자가 발생하고 또 다른 살인이 계획되고 준비된다.

그와 함께 이웃을 지키기 위한 강산빌라 사람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힘을 모으기 시작한다.

 

만화는 범죄자와 형사의 대립이라는 일반적이 구도가 아닌 범죄자와 이웃사람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또한 제목에 나오는 '이웃사람'이 사건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한 아이러니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 대해 안타까운 시선을 던지고 있다.

끝까지 범인을 숨기고 있다가 마지막에 반전으로 뒤통수를 치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따라가지 않고

처음부터 범인을 알려주고 범인과 주민들의 대결과정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점점 높혀간다.

중간에 나오는 '그 때'라는 챕터를 보면 만화의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때' 우리가 조금만 더 서로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조금만 더 용기를 내 다가설 수 있었다면...

그렇다고 그런 후회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뒤늦게나마 범인과 대립을 통해 공동체를 지켜냄으로써

개인의 작은 힘들이 모여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도 함께 전하고 있다.

물론 마지막 장면이 전하는 작은 반전은 생각할수록 섬뜩한 느낌을 전해준다. 기대해도 좋을 듯.

 

강풀 작가 특유의 이야기의 힘과 인간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은 만화 중간 중간에 자연스레 묻어난다.

외로운 아이 여선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수연의 모습, 수연에게 애정을 보이는 경비원의 손에 들린 단팥빵,

서로에게 익숙하지 못해 머뭇거리다 결국 비극을 맞은 경희와 여선의 안타까운 사연,

경희를 받아드리려 노력하는 여선의 감나무와 여선을 받아드리려 노력하는 경희 소소한 모습들.

강풀의 따스한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은 순간들이 만들어 내는 따스한 풍경들의 묘사가 여전히 감동적이다.

가장 강풀다운 만화이자 가장 강풀과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만화이다.

영화 개봉에 앞서 읽어본다면 영화를 훨씬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강추 !!!!!!

강풀, 이웃사람

매스커레이드 : 가면무도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의 제목이기도 하다.

제목만 보고는 전혀 내용을 상상할 수 없었던 소설이다.[매스커레이드 호텔]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이보다 적절한 제목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딱 맞는 제목이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보여주는 가면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 처럼.

 

소설은 연쇄살인의 다음장소로 지목된 도쿄의 최고급 호텔에 경찰이 잠입하면서 시작된다.

절대로 경찰처럼 보이지 않고 호텔리어처럼 보여야 하는 프런트 직원을 맞은 '닛타 고스케'.

호텔 최고의 호텔리어인 '나오미'의 혹독한(?) 교육으로 호텔에 잠입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1주일 간격으로 벌어진 전혀 연결되지 않은 사건들을 하나의 사건으로 묶은 수상한 숫자들.

그 숫자들의 비밀을 해독한 유능한 형사 닛타는 호텔에 잠입하여 수사하는 것에 불만이 있다.

뛰어난 능력과 넘치는 정의감과 함께 자신이 스스로 공을 세우고 싶은 욕망도 강한 형사이다.

그런 그의 파트너는 너무도 평범해 보이고 세련미와는 거리가 먼 아저씨 스타일의 노세 형사.

겉보기와 달리 성실함을 무기로 뛰어나 수사능력을 보여주는 노세형사는 닛타의 좋은 파트너다.

닛타는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호텔 내부에서 추리하고 노세는 호텔 밖에서 발로 뛰어다닌다.

수많은 인간군종들이 드나드는 호텔에서 근무하면서 닛타와 노세는 서서히 진실에 다가서는데...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사건의 단서를 하나씩 흘려내는 방식에 있다.

기존의 추리소설처럼 사건 수사의 과정에서 단서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거나 추리해 내는 방식이 아니라

호텔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사건의 단서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닛타가 집어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호텔리어로써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해주는 나오미의 역할도 크다.

사건의 단서가 되는 호텔에서의 에피소드들을 보면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가면들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최고급 호텔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가진 가면속의 모습을 알면서도 모른척 해야 하는 호텔리어들의 모습.

그들이 감추고자 하는 것이 뭔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감추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

호텔의 속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 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데 그것들이 사건의 단서가 된다.

역시나 게이고라는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탄탄한 구성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사건의 단서를 보여주는 과정에 호텔의 에피소드를 사용한 것은 영리한 구성이었다고 한다면

사건 자체에 쓰인 범인의 트릭은 일반인들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할만큼 복잡하고 치밀하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건들이 하나의 연관성을 가지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과 트릭은 놀라울 따름이다.

경찰을 현혹시키는 트릭을 던지고 진짜 범행을 저지르는 과정은 범인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계획에 맞춰 하나씩 범행을 완성해 가는 모습에 소름이 끼친다.

숫자 트릭, 전화번호 트릭, 연쇄살인 트릭, 연기를 통한 트릭 등 수많은 트릭들로 형사들을 속인다.

추리소설 하나에 하나의 트릭도 제대로 사용하기 힘든데 여러개의 트릭을 동시에 사용한다.

게이고가 데뷔 25년 기념으로 혼신의 힘으로 썼다는 소설답게 게이고의 재능이 한껏 발휘된 트릭들이다.

 

또하나 이 소설에서 반가운 것은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이다.

[용의자 X의 헌신] 등의 유가와 교수, [악의] 등의 가가형사 시리즈에 나오는 가가 교이치로 형사 이후에

이 소설에 나오는 '닛타 고스케'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새로운 캐릭터의 탄생을 예고하는 반가움이 있다.

범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전혀 예상하지 못한 트릭들을 간파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젊고 유능한 형사지만

거기에 맞게 다소 건방지고 명예욕과 승부욕이 지나치게 강해서 그만큼 약점도 가지고 있는 형사.

첫 등장에서 보여진 닛타의 캐릭터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지 궁금해지고 그만큼 기대도 된다. 게이고이기 때문에.

닛타의 파트너 노세 형사와의 콤비고 기대되고 살짝 연애감정이 생긴듯한 나오미와의 이야기도 점점 기대된다.

유가와나 가가형사가 나이대가 높아서 다소 보수적인 반면에 톡톡튀는 매력의 닛타형사는 생동감이 넘치는 캐릭터다.

앞으로 닛타와 노세, 그리고 나오미의 이야기가 점점 기대가 되면서 이제 다시 게이고에게 열광할 시간이다. 강추 !!!

히가시노게이고, 매스커레이드호텔

사막 한 가운데인 '예멘'에 영국의 연어를 옮겨 놓는다 !!!

말도 안되는 일을 추진하려는 이상주의자와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권.

그들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만들어 낸 황당하고 어이없는 코메디.

정치권과 관료주의와 언론에 대한 풍자가 유머러스하게 풀어지고

이라크 전쟁, 중동에 대한 서방의 건방진(?) 시각 등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거기에 달짝지근한 로맨스가 덤으로 곁들여지고 연어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진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연어낚시를 즐기고 싶다는 한 족장의 소망이

중동에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제고하고 낚시꾼들의 표를 끌어들이려는 정치권과 만나

본의아니게 휘말리게 된 어류학자와 함께 웃지못할 코메디를 만들어 낸다.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는 의견의 어류학자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몰아부치는 정치권.

이후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듯 꼬리자르기를 하는 정치권의 행태.

정치권이 흘린 뉴스를 덥석 물고 여론을 일으키는 언론의 모습 등이 우습게 펼쳐진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불쌍한 어류학자만 희생양이 되어버리는 상황에 씁쓸한 웃음이 난다.

사막에서 연어를 낚고 싶다는 이상주의자의 꿈이 정치권의 이해득실과 만나면 어떻게 되는가?

정치권에 이용당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꿈을 실현시킬수도 있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의 반전은 족장의 말을 따르자면 '신이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여러가지 형태로 기록된 소설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류학자의 일기로 시작하더니 언론의 뉴스, 이메일, 심문조서 등 여러가지 형태로 이어진다.

여러가지 형태가 하나의 소설로 묶여있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이 책에 빠져드는 장점이 있다.

이야기의 중반부터 심문조서의 양식을 띠는 것을 보면서 뭔가 사건이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언제 어떤 형태로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궁금증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또한 여러형태의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등장인물 각각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재미도 있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독자를 다루는 방법을 보면 노련함이 드러난다. 뛰어난 재능이다. 추천 !!!

사막에서연어낚시, 폴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