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이 단편집에 나오는 작가들 중에서 내가 아는 작가는 적다.

닉혼비, 닐 게이먼, 스티븐 킹, 마이클 클라이튼 겨우 4명이 전부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영미권의 소설들이 내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7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압박이 이 책을 선택하지 못하게 했다.

나름 용기(?)를 내서 선택했지만 만족과 불만의 경계선에 선 책이다.

7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장시간에 걸쳐 읽은 것에 비하면 만족감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다양한 영미권 작가들의 재기넘치는 이야기들은 재미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만족과 불만의 한 가운데. 딱 그정도의 느낌이다.

 

원제목을 보면 'Thrilling Tales'라고 나와있기 때문에 스릴러의 집합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스릴러라는 장르에 집중된 단편집은 절대로 아니었다.

작가들의 나이대는 모르겠지만 신구 영미권 작가들의 잘 쓰여진 단편들의 집합이다.

농담과 유머가 난무하는 장르도 있고 세상에 없는 판타지를 그린 단편도 있으며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SF도 있고 마녀가 나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제목에 충실한 스릴러 장르도 있고 괜히 무서워지는 공포소설도 있다.

그러니까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장르들의 집합체이다.

스릴러라는 한 장르에 집중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장르에 구분없는 것도 좋았다.

하나의 장르로 한정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작가들의 재기로움이 더 빛나는 느낌이다.

 

내가 아는 작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단편들을 만나는 것은 작은 기쁨이었다.

책의 제목이 되어버린 닉 혼비의 단편에서는 싸구려 농담돠 유머로 가득찬 이야기를 만나고

[미저리], [미스트] 등의 영화의 원작자로 유명한 스티븐 킹의 단편은 전혀 예상못한 장르였고

[신들의 전쟁]으로 유명한 닐 게이먼은 도시괴담 같은 귀신이야기로 시선을 멈추게 만들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마이클 클라이튼의 작품은 고인이 된 그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았다.

그들의 장편들을 읽었기에 그들의 단편을 만나는 경험은 색다르며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장편에서 만날 수 없는 단편만이 가진 매력과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그들의 색깔이 좋았다.

전혀 알 지 못했던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경험이었음을 인정한다.

 

다만 영미권의 문화나 역사가 너무 많이 반영되어 있어서 익숙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끼어 입어야 할 때 느끼는 거북한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의 정서가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거북함을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의 인디언 전쟁, 1930년애 유행했던 서커스 문화 등은 공감하려 해도 쉽지 않는 부분이다.

물론 작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우리와 비슷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전달과정은 쉽지 않다.

정서적 공감이 소설의 만족도에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은 대개 판타지적인 이야기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판타지의 세계는 결국 어느 문화권에도 속하지 않는 상상력이 가져다 준 선물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불만은 700 페이지가 넘는 두께이다.

너무 많은 작가들을 하나로 묶었기 때문에 책의 두께가 두꺼워지고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단편을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역설이 성립되면 서서히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물론 많은 작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난다는 점에서 좋았다고 하겠지만 욕심이 과했다.

아니면 차라리 2권 정도로 나누어서 출간했다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 역시도 이 책은 완독하는게 정말로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께의 압박을 다소 불만이다.

안그러면아비규환

학교에서 계유정난을 배울 때는 그저 그런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으로만 알았다.

나이가 들어 역사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게 되었을 때

조선이라는 나라를 특권층의 권력욕에 휘둘리는 허약한 나라로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권력욕이 빚은 계유정난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조선의 건국 초기 이성계의 우유부단과 정도전의 야망이 어우러지며 불거진 왕자의 난.

건국과정의 추축이 되었던 태종의 승리로 조선은 초기 굳건한 왕권을 확립할 수 있었고

그것이 그대로 세종의 치세로 이어져 조선의 국운이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수양의 계유정난으로 인해 조선은 공신이라는 특권층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들이 그대로 훈구파와 사림의 대결, 4색 당파, 노론과 소론의 대립으로 이어지면서

조선의 왕권을 점점 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결국 허약한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시초가 바로 수양과 한명회의 계유정난이었기에 난 결코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책은 수양과 한명회의 계유정난 전 후의 사정을 실록에서 발췌하여 소설 형식으로 엮었다.

엄청난 기록양에 눌려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왕조시록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씀으로써

일반인도 쉽게 그 시대의 상황과 계유정난이 역사에서 담당한 역할에 대해 알 수 있게 해 준다.

기존의 역사소설과 다르게 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그러면서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대화체를 많이 사용하고 어려운 용어들을 피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계유정난의 문제점과 그것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실록이라는 것이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수양에 대한 평가가 후할 수 밖에 없다.

수양이 중국에 사은사로 가면서 대륙을 보며 고구려 선조들의 기상을 회고 했다는 장면이나

양평대군이 군사를 길러 김종서, 황보인 등과 함께 왕좌를 차지하려 했다는 부분은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진위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기록들 마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쓴 책이다 보니 수양에게 다소 유리한 논리를 펴고 있다.

수양이 권력욕에 의해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한명회 등의 계략이라고 말하는 부분,

처음부터 단종을 죽이려 하지 않고 상왕으로 두고자 했고 귀양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부분 등은

실록의 기록을 사실로 간주하는 것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수양의 진실에 대해서도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겨진 실록의 기록이 수양의 의도에 따라 왜곡된 것이라면

우리는 결국 수양의 의도에 따른 역사를 배울 뿐 그의 진실에 대해서는 절대로 알 수 없게 된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가? 대선을 앞두고 역사는 곧 정치임을 알 수 있다.

명백히 쿠데타로 기록되어 있는 5.16마저 부정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5.16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또 다시 역사에 기록된다면 우리 후손들은 그 진실을 알 수 있을까?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라는 논리가 먹히면 그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음을 다시 깨달아야 한다.

이미 그런 논리가 먹혀들었던 조선의 역사, 계유정난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추천 !!

이정근, 수양대군

처음 접하는 일본 작가의 소설이다.

야구를 워낙에 좋아해서 선택한 책인데 탐정이 나오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절대로 추리소설이 아니다.

일류가 되고 싶었으나 2류에 머물를 수 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이다.

분명히 성공하지 못함 삶이었느나 결코 실패했다고 말할 수 없는 삶과 열정의 기록.

그의 무모하리만치 뜨거운 열정이 안타까우면서도 부럽기만 하다.

 

처음에는 사건을 해결하는 '마타라이' 탐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해결했다고 하지만 그가 해결한 것이 아니라 우연치 않은 화재로 인한 기적이었다.

기적을 일으킨 화재의 현장에서 탐정이 발견한 반만 타버린 야구공 하나.

거기서 이야기는 갑자기 한 남자의 인생이야기로 점프해 버린다.

합법을 가장한 악덕기업의 사기에 넘어가 자살해 버린 아버지.

아버지의 부재로 빠져버린 가난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야구.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은 없었지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제구력을 가진 투수.

결국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사회인 야구에서 살아가야 했던 2류 투수.

그러다 기적적으로 프로에 들어가지만 결국 불펜투수가 되어야 했던 기구한 선수.

한없이 실패만 거듭한 삶으로 보이는 그가 던지는 '최후의 일구'에 담긴 의미.

앞 장의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이 진행되던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는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 앞 장의 사건과 기가막히게 연결되며 전혀 예상못한 전개를 펼친다.

아무런 용의자도 없이 기적적인 우연의 연속으로 일어난 자연발화라고 생각됐던 화재가

전혀 뜻밖의 의미와 전개과정을 가지고 한 남자의 기구한 인생과 만나게 된다.

작가의 뛰어난 능력은 2류 선수의 인생과 천재 탐정의 추리와 우연을 가장한 화재를 연결시킨다.

이렇게 기가막히게 연결되리라고 생각을 못했기에 작가의 구성에 절로 박수가 나온다.

 

우리보다 50년 정도 앞선 일본의 프로야구 역사가 이런 멋진 야구소설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제 서서히 야구를 소재로 하는 멋진 소설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재미있는 야구소설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멋진 야구소설이자 한 남자의 뜨거운 삶을 이야기하는 인생소설이고 천재탐정이 나오는 추리소설이다.

이 모든 장르를 하나로 묶어내는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기를 강력히 권한다. 강추 !!!

시마다소지, 최후의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