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륵은 가야금, 왕산악은 거문고

 

처음 역사를 배우던 시절부터 무턱대고 외우기만 했던 역사문제.

그래서 가야금이라는 이름이 '가야의 금(琴)'이라는 의미라는 걸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너무도 얄팍한 역사지식을 가졌으면서도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안다고 자만했던 내가 부끄럽다.

김훈의 '현의 노래'는 지식으로 외웠던 가야금과 우륵을

살아 숨쉬는 사람과 음악의 이야기로 바꾸어 준 책이다.

 

음악은 스스로 만들어져 악기나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새로운 시간이다.

 

사람들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동물이 인간 뿐이라며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음악은 인간에 의해 즐겨지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악기속이나 사람의 몸속에서 태어나서 인간을 이용해 나타나게 되는 능동적인 것이다.

작가의 새로운 관점이 음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준다.

우륵이 음악을 찾는 과정을 보면서 어쩜 음악은 스스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왕국의 멸망. 그러나 여전한 백성의 삶.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 김훈 선생의 소설을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백성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전쟁'이라는 재앙 속에서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요된 고통속을 견디며 살아가는 민초들의 이야기.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결국에 별다른 차이없이 살아가는 민초들.

정치상황이나 권력욕, 성리학적 명분 같은 거창한 이념의 대립과 갈등이 아닌

고난속에 묵묵히 살아감을 이어가는 민초들의 삶이 결국 역사가 된다는 이야기.

'현의 노래' 또한 그러하다.

그렇기에 이사부의 가야 정벌을 치가 떨리게 잔인하게 그려지고

야로가 생산해 내는 철의 흐름이 그리도 차갑게 느껴지게 된다.

그런 잔인함과 차가움의 강조로 인해 그 속에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이 더 강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런 강한 생명력을 지닌 백성이었기에 수많은 전쟁속에서도 이 땅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제 목숨 살고자 한 배신자인가? 음악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가?

 

결국 우륵은 가야를 버리고 신라에 귀순하는 배신의 길을 걷는다.

그렇다면 그가 그저 배신자라는 이름으로 매도되어야 하는가?

제자 니문의 물음에 우륵은 이야기 한다.

'음악은 살아있는 동안 만의 음악'이라고 ...

'죽고나면 음악도 없는 것'이라고...

그것이 배신의 이유이고 우륵이 만들고자 한 음악의 의미이다.

 

김훈의 문체. 어렵다.

 

김훈 선생의 문체는 정말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아무리 짧은 단문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가 단번에 머리속에 박히지 않는다.

나만의 난독증일지 모르겠지만 꼭 한번은 다시 읽어야만 의미가 들어온다.

그리고 두번째 읽을 때 느껴지는 문장의 아름다움이 강한 중독성을 가진 문체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문제차 어렵다고 하고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문장으로 서사가 아닌 서사를 이어가는 능력이 매력적이다.

이 소설도 서사가 이어지고 끝나는 부분이 명확하지 않으나

다 읽고나면 결코 적지 않은 사건들이 이야기 되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역시 어렵다.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은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이 책 또한 기대를 많이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아마도 나 자신의 문제였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단순해서 너무 어지럽게 놓여있는 이 책의 묘사를 읽어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심한 난독증에 시달려야 했고 그 결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요즘 넘쳐나는 쉬운 소설들에 너무 익숙해 지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을 해 본다.

 

영화로 만들어 진다고 하니 한번쯤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무인도로부터 살의를 품고'

 

11개의 문자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추리소설 작가인 주인공의 애인이 어느날 무참하게 살해된다.

살해되기 며칠 전 만난 그는 '누군가 노리고 있다'는 말은 하고

누군지 짐작은 가지만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말이 된 '난 소심하거든'이라는 말과 함께.

그의 죽음을 당해서야 자신이 그를 많이 사랑했음을 알게 된 주인공은

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작은 단서로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친구이자 출판사 편집자인 휴유코와 함께 사건을 추적하다

모든 사건이 1년전에 있었던 해난사고와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된다.

그러나 사고의 당사자들은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태도롤 일관하고

그녀들의 추리도 한계에 도달한다.

과연 1년전 그 사고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계속되는 살인의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주인공은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것인가?

 

'그들은 자기들의 가치관에 맞춰 그를 죽였고 그래서 반성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가치관의 충돌은 때때로 예기치 않은 비극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의 사건들도 그 가치관의 충돌에서 빚어진 비극을 담고 있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심정이나 무엇인가를 감추어야만 하는 피해자들의 심정이나

그들의 생각들은 모두 자신들의 가치관에 맞는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충돌은 그런 가치관의 충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란 하루하루 조용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책이나 영화 같이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한 것도 아니다.

이 책의 범인도 물론 잘못된 행동을 했고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범죄자이지만

그 피해자라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그렇게 옳았다고 판단되지 않는다.

그러니 결국 누가 악인인가? 모두 다 어느 정도 악인이 아닌가?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사람들.

 

무인도에서 있었던 그 사건을 숨기기 위해 모두들 한통속이 되어 버린다.

물론 사건의 피해자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공모는 피해자의 잘못을 탓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의 비검함을 숨기기 위해서 였다는 것에 그 문제의 발단이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비난하고 나는 다르다 생각해 보지만

나또한 그런 상화에 처하게 된다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인간은 물완전하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은폐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우리 속담에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이 책의 '그들'도 완벽히 은폐했다고 믿지만 전혀 에기치 않는 곳에서 진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진실은  잔인하고 처절한 복수를 잉태한다.

역시 사람은 속이고 살면 안되는가 보다.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게이고 특유의 추리소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라고 하는데 이미 이 책에서부터 반전의 역학을 보여준다.

책의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서서히 드러내는 사건의 내막.

그 내막마저 반전에 반전을 더하고 있다.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단에 까지 반전을 보여주는 게이고의 능력이 경이롭다.

 

아쉬움이 아주 없지는 않다.

 

주인공을 여성 추리작가로 만든 것이 조금은 작위적이다.

차라리 형사난 탐정이었다면 주인공이 탐문해가는 과정이 보다 사실적일 수 있었는데

추리작가가 그렇게 과도하게 사건을 파헤친다는 것이 무리인 듯 하다.

무인도에서의 사건도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그런 상황에 그런 거래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범인의 정체도 중간쯤에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아쉽다.

물론 그 과정의 추리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방과 후 학교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은 이후로 팬이 되어서

어느새 내 책장의 한칸을 모두 채우게 만들어 버린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데부작이자 란포문학상 수상작인 '방과후'를 이제야 읽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여고교사가 된 마에시마.

어느날 부터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시도가 있음을 알고 하루하루 불안에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체육관 옆 탈의실에서 동료교사가 청산가리에 중독되어 숨진 채 발견된다.

버팀목이 받쳐져 있고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의 밀실살인.

과연 범인은 누구이고 왜 죽였는가? 그리고 마에시마를 노리는 범인은 누구인가?

본의 아니게 사건에 휘말려 오타니 형사와 산건을 풀어가게 되는 마에시마.

그러나 사건이 해결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과연 마에시마는 사건을 해결하고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작품에서 게이고는 2개의 밀실을 만들어낸다.

하나의 밀실만으로도 놀라울 정도인데 그 놀라운 밀실을 그저 인트로로 만들어버리는

두번째 밀실의 트릭은 정말 독자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등장인물들도 심상치 않다.

교사를 유혹하는 대담한 문제아 유코,

학교 최고의 수재이면서 자신만의 논리가 잡혀있는 마사미.

겉으로는 얌전해 보이지만 남자를 가지고 노는 아소 선생,

마에시마가 맡고 있는 양궁부의 주장인 게이,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표정의 조용한 아이 에미,

그리고 아이문제로 벽이 생겨버린 마에시마의 아내 유미코까지...

모두에게 동기가 있고 모두가 의심스러워 보이지만  딱히 의심할 수 없는 인물들.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도 뛰어나다.

'진실은 다른곳에 있다'

 

  지금의 게이고의 작품을 보면 사회에 대한 인식을 많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형식을 보통의 추리작가를 뛰어넘는 실력으로

자신만의 추리소설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이 있었기에 그의 이후 작품들도 그렇게 내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동기가 약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여자도 아니고 더욱이 여고생도 아닌데다 세대도 틀리기 때문에

작가가 말한 이런 동기로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게 납득하기 어렵고 아쉽게 느껴진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물어보니 그 동기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아직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긴 내가 가장 충격적으로 읽었던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x의 헌신의 이유가 납득가지 않은 부분이 있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는 게이고의 보너스다.

결국 이 책은 완전범죄로 이야기가 끝나고 있다.

물론 그 뒷 이야기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지만 게이고 다운 결말이다.

아니, 게이고 특유의 '씨게 뒤통수 때리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지막 부분의 반전이 '용의자 X의 헌신;의 멋드러진 반전과 맞물리게 느껴진다.

역시 게이고.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