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작가 - 미야베 미유키

각각 500페이지가 넘는 총 3권의 책을 받는 순간 그 두께에서 느껴지는 포스에 당혹스러웠다.

'황금나침반'과 비슷한 두께. 페이지의 압박으로 지쳤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두께 마저도 아쉬운 지금이지만 처음의 압박은 장난이 아니다.

성격이 급해서인지 이야기의 전개가 느린 책들은 중간에 덮어 버린다. 더욱이 두꺼운 책이라면 더...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나 '다이도 다케루'처럼 수 많은 사건들을 쉴새없이 몰아쳐대는 소설을 좋아한다.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처럼 하나의 사건을 길게 이야기하는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정말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은 이미 1권이 끝나기도 전에 결론이 나와 버렸다.

그 이후에는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와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보여준다.

3권의 그 막강한 두께가 결국 다루는 사건은 하나의 연쇄살인이고 범인은 1권에 밝혀진다.

예전에 나라면 이런 류이 소설은 중간에 덮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었고 오히려 아쉬움이 남는다. 대단한 이야기다.

이유가 없는 절대 악 - 살인도 유희다 !!!

요즘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이란 정말 이런 것일까?

살인의 목적이 단순한 자기과시와 자신의 즐거움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라니....

'흠좀무' - 흠.. 그게 사실이라면 좀 무서운데....

딱 이런 생각이다. 과연 지금의 우리 아이들의 사고방식이 이런 식으로 변하고 있는 걸까?

남의 생명마저 나의 유희의 도구이고 남의 죽음은 나와 상관없는 것인가?

이런 무서운 생각이 우리 아이들의 머리속에 들어가고 있는 건가?

타인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아니라 내가 짓밟고 일어서야 하는 적에 불가한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열광하고 동조의 시선을 보낸다면 어쩜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게 아닐까?

무서운 세상이고 무서운 이야기다.

이런 인식의 근저에는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마음이 깔려있다.

그 마음의 일단은 어쩜 부모들이 만들어 준 게 아닐까?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부모들과 같은 방식은 아닐지라도....

회사에 발목이 잡혀 아이의 자는 모습만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부재',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어보겠다는 부지런함에 근거한 '어머니의 부재',

남보다 조금 잘 살다고 아파트 통로에 담을 쌓아버리는 '부녀회 아주머니들의 단절',

그 속에서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짐짝처럼 이동당하는 '아이들의 처량함',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공부 지상주의'에 휘둘리는 우리의 아이들.

그 결과가 결국 우리 아이들이 성장한 시대에 저런 무서운 사고방식의 발단이 되지 않을까?

참혹한 사건을 대하는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

단순히 범인과 형사(또는 탐정 등등)의 추적과 트릭을 다루는 다른 추리소설과 달리

이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대하는 다양한 계층의 인간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범인, 피해자, 범인의 가족들, 피해자의 가족들, 사건을 이슈화하여 명예를 탐하는 이들,

모든 걸 무시한 채 이슈화에 목 매다는 수많은 매스미디어들, 그리고 형사들.

수많은 계층의 인간들을 이야기 하면서도 그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른 심리묘사가

너무나 적확하고 날카로워서 과연 한 사람의 작가가 이 모든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마치 작가 자신이 그 모든 계층의 인간으로서 살아 본 경험이 있는 듯한 심리묘사.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건들.

그 작은 사건들이 치밀하게 이어져 마지막으로 범인의 밝혀낼 때 까지의 과정이 대단하다.

한 치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단단하고 치밀한 구성이 단 한권의 책으로 작가의 역량을 알 수 있게 한다.

아쉬움....

역시 논란의 여지는 범인을 밝히는 마지막 이야기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드러나는 사건의 실상이 허무한 느낌이 든다.

물론 경찰의 조사로 거의 드러난 진상이지만 결국 경찰의 손을 빌리지 않은 결말.

그렇게 함으로써 시게코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었고

요시오가 범인에게 이 책의 주제를 이야기 해 줄 수 있었고

얼키고 꼬인 모든 관계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모든 결말을 위해서 범인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만큼의 무리가 있었다.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고 그 결말을 위해 중간에 복선을 깔은 것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무리수의 어색함을 완전히 지워주지는 못한다. 단 하나의 옥의 티.

역시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