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음으로써 얻는 기쁨 중에 하나는 직접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역사학자인 ’이덕일’선생이 바로 그런 스승 중에 한 명 입니다.
학교를 다닐 때 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역사관이 없었던 제가
그분의 책들을 읽으면서 나름의 확고한 기준과 역사에 대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저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그분과의 만남은 언제나 설렘을 줍니다.

이덕일 선생의 역사서들의 특징은 쉽고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마치 한 편의 역사소설을 읽는 것 처럼 편안하게 역사의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사건들이 발생한 배경과 그 속에 담긴 선조들의 삶과 투쟁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선생만의 확고한 역사인식과 관점을 통해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와는 다른
기존의 역사서술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시각으로 우리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다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그분의 저서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었던 책들을 정리해 봅니다.



1. 조선왕 독살사건
     왜 그렇게 많은 조선의 왕들이 독살설에 휘말려야 했는가?

   이 책은 개인적으로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책입니다.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되서 주말부부로 살던 시절에 부산으로 내려가는 버스안에서
   시간을 죽이기 위해 무심코 집어든 이 책이 이덕일 선생과의 첫만남이었습니다.
   이 책은 선조에서 고종에 이르기 까지 독살설에 휘말린 조선의 왕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단지 독살설에 대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독살설의 배경과 시대적 갈등, 관련인물들에 이르기까지
   왕의 독살설이 발생하게 된 모든 배경지식을 상세하고 쉽게 설명해서 독살설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논리적 귀결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의 창업에서 한일합방에 이르는 조선의 왕조사를 확실하게 머리속에 넣을 수 있었고
   ’소현세자가 죽지 않았다면...’, ’경종이 독살되지 않았다면...’,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다면...’이라는
   안타까운 가정을 하게되었습니다. 
   지금보면 너무도 황당할 수 있는 이유가 그 당시에는 목숨을 건 역모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보면서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고 소중이 소장하고 있는 책입니다.



2. 사도세자의 고백
     그 여드레동안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조’에 대한 사극이 대박이 나면서 작년 한 해를 휩쓸었던 정조 열풍.
    이덕일 선생을 세상에 알린 이 책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을 다룬 역사서 입니다.
    정조 열풍에 따라 경쟁적으로 발간된 정조관련 저서들과 달리 이 책은 이미 오래전에 발간된 책입니다.
    최후의 승리자인 노론의 시각에서 서술된 역사서들의 기록에 따라 그들의 시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사도세자의 입장에 서서 왜 그가 아버지 영조와 대립해야 했는지 왜 그렇게 처참히 죽어가야 했는지
    비극의 사건뒤에 숨어있는 그 시대의 당쟁의 배경과 영조의 결정의 원인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사도세자가 정신병과 영조의 냉정한 자식교육의 결과로 나온 왕가의 비극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버리고
    경종의 독살설과 관련하여 노론에게 자유로울 수 없었던 영조의 상황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노론 세력의 무시무시한 권력욕이 불러 일으킨
    신권이 왕권을 이긴 일종의 ’택군’의 결과였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심각하고 복잡한 배경을 지닌 사건이지만 책의 서술방식을 역사소설처럼 재미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명작 중에 하나 입니다.



3. 이덕일의 여인천하
     기록되지 않은 그녀들의 이야기
  
    역사의 기록에서 여인들의 자리는 거의 없습니다.
    여인들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왕후들 조차 ’OO왕후 O씨’라고 기록될 뿐
    이름조차 기록에 남길 수 없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서가 바로 이 책 입니다.
    조선의 역사 뿐만 아니라 한국사 전반에 걸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뒷편으로 쫓겨나야 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꺼내서 세상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세계 유일무이하게 3개국(고구려,비류백제,온조백제)의 개국을 이루어 낸 소서노를 시작으로
    근대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희생양이 되어버린 비련의 여인 나혜석까지.
    때로는 고의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역사에 의해 잘못이 숨겨졌던 그녀들의 이야기.
    우리의 역사에서 잊혀져 간 여인들의 삶을 되살려 낸 재미있는 역사서 입니다.



4. 장군과 제왕(전2권)
     세계제국 당나라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고구려 유민들의 이야기.

    고구려가 망한 후 당나라는 고구려의 재건을 막기 위해 무려 20만명의 유민을 중국으로 끌고 갔습니다.
    비록 고구려가 내??을 몸으로 겪어서 알고 있던 당나라에게
    고구려의 재건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기 때문에 유민들을 뿔뿔이 흩어 놓았습니다.
    이 책은 그 유민들 사이에서 나타난 2명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실크로드를 장악하고 세계제국 당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대륙의 별 고선지 장군과
    안녹산과 사사명의 난 이후 혼란한 당나라의 정세를 틈타 ’치정왕국’을 세우고 당나라와 싸웠던 제왕 이정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제국 당나라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고구려 유민의 이야기 입니다.
    측천무후와 현종, 현종과 왕모중, 현종과 양귀비, 양귀비와 안녹산, 안녹산과 이정기에 이르기 까지
    당나라의 번영과 혼란의 역사속에서 별처럼 빛났던 2명의 영웅의 이야기.
    우리가 잊고 지냈던, 혹은 우리 역사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를 꺼내어서 우리 역사의 무대를 넓힌 책입니다.
    이 책이 발간된 이후 KBS의 역사스페셜을 통해 이정기가 세웠던 ’제나라(치청왕국)’가 재조명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이정기의 제나라(혹은 치정왕국)를 다룬 역사서들도 몇권 더 출간 되었습니다.
 


5. 그 위대한 전쟁 - 이덕일의 영웅천하(전 2권)
     나라의 운명을 지고 싸우는 동북아 5국의 영웅들의 대 서사시

    중국의 ’삼국지’는 누구나 한번은 읽어야 하는 책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3국의 이야기는?
    슬프게도 흔히 ’삼한지’라고 부르는 우리나라 3국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책은 이덕일 선생이 쓴 삼국통일 시대 우리 영웅들의 이야기 입니다.
    유비, 관우, 장비, 조조의 이야기가 아니라 김춘주, 연개소문, 의자왕, 김유신 등 우리 영웅들의 이야기 입니다.
    삼국이 통일되던 격동의 시대에 각국의 운명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치열하게 싸웠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웅들과 일본, 당나라의 영웅들 까지 동북아 5개국의 영웅들의 대서사시 입니다.
    강국 고구려가 결국 신라와 당나라에 무너져야 했던 이유,
    영리하고 강한 군주였던 의자왕이 3천궁녀와 함께 몰락한 왕으로 기록되어야 했던 이유,
    백제를 상국으로 모시던 일본이 백제의 멸망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이유,
    고구려를 치기 위해 당나라에 손을 벌려야 했던 김춘추의 생각 등.
    격변의 시기에 활약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하나의 역사소설이 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 입니다. 교양역사서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한 편의 역사소설을 읽는 듯 재미있게 읽어가다 보면 두꺼운 분량의 책이 어느새 끝은 보입니다.
    이덕일 선생은 결국 최근에 역사소설을 발간했습니다. 이 책은 그 전초작업이라 보면 될까요?
    아무튼 제가 읽은 선생의 책들 중에서 가장 소설에 가까운 책이 이 책입니다.


일본과 중국이 역사를 왜곡할 때 마다 흥분하지만 금방 잊어버리는 현실.
대입에서 국사가 선택과목이 되면서 이제는 임짐왜란과 병자호란을 모르는 아이들.
역사를 잃어버린 국가는 미래도 잃게 됩니다.
이덕일 선생의 교양역사서는 그런 의미에서 미래를 지키는 하나의 버팀목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