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단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거 같다. 글쓴이의 말도 이쁘고, 사진도 참 이쁘다.

 

나는 나무가 참 좋다. 

기억에 어렸을적부터 나무를 참 좋아했었다. 

선머슴처럼 나무타기도 즐겼고, 나무 냄새가 좋았고, 숲에 있는 것이 참 편하고 좋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건 아니지만 그냥 좋다.

나무나 식물에 관한 관심은 아마 아빠에 의해 자연스레 길러진 것이리라. 어디를 가던 아빠가 알려주시던 나무이름, 식물이름들.. 덕분에 난 지금도 꽤 이름을 알고있는 편이다. 그동안 내가 나무나 식물이름을 아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이게 수년간 쌓여 온 지식의 힘이 아닌가 싶다. 

내게도 아이가 생기면서 아이에게 나무나 식물이름을 알려주려고하니 때때로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예전엔 알고 있었던 것인데 잊어버리기도 했고 처음 본 것도 있고해서(다육이들이 특히..) 다양한 식물이름과 특징이 적혀있는 식물도감이 하나 있음 좋겠단 생각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다양한 나무와 식물의 세계를 위해.. 이럴때 때마침 만난 정말 참한 책. 

첫 장의 사진부터 나를 사로잡는다. 
마치 내가 숲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싱그럽고 상쾌한 나무내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글을 쓴 사람과 사진을 찍은 사람이 달라 책 표지에도 따로 표기를 해 두었다. 이래서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공생관계가 필요한 듯..

이 책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나무 이야기를 일년 열두달 각 달에 맞도록 나무를 배치(?) 하고 아주 친절하게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까 매달 마다 달라지는 나무의 모습을 사진과 친절한 설명을 함께 해주는 것이다. 첫장은 모든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는 3월로 시작한다. 어디서 많이 본 건데.. 싶었던 사진에는 영락없이 설명과 이름이 나와서 궁금증을 없애준다. 감사할일.. 나무의 꽃은 내가 생각하는 화려함이나 알록달록함은 없지만 참으로 예쁜 연두빛이 가득했다. 그렇게 봄이 시작되었다.

 

3월이 연두빛 새싹의 향연이었다면 4월은 꽂들의 총집합니다. 각기 다른 나무들의 여러 꽃들..알고 있는지? 으해나무도 꽃이 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기 쉬운것이 꽃이라고하면 여러개의 꽃잎을 갖고 있고 적어도 초록색은 아닐것이라고 하는 편견. 그런데 은행나무의 꽃은 연두빛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신경쓰지 않는다면...가로수로 흔하디 흔한 은행나무의 꽃을 평생 못 보고 지날 수도 있다.

 

5월은 특산식물과 만나고, 6월은 다발꽃을 만날수 있으며, 7월에는 내가 좋아하는 자귀나무를 만날 수 있었는데 자귀나무의 특징 - 밤이 오면 양쪽으로 마주난 잎을 맞대고 잠을 잠 - 덕분에 '합환목, 합혼수'라고 불리며 예부터 신혼부부의 창가에 이 나무를 심어 부부의 금실이 좋기를 기원하였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는 것에 또 새로운 것이 더 해지니 재미가 쏠쏠하다. 자귀나무의 꽃은 지나가다 발걸음이 멈출만큼 향이 좋은(내게 있어..)것이지만 이상하게 이름을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이번을 계기로 확실히 기억할듯. 자귀나무... 한여름의 8월은 시원한 숲에 포커스를 맞춰서 나무이야기를 전해주며(개인적으로 사진은 8월의 숲 사진들이 제일 맘에 든다) 해당화, 무궁화, 산수국, 싸리등의 꽃 내음도 전해준다. 9월은 가을이 다가 오고 있어 열매잔치로 이어진다. 빛깔부터 완전히 달라진다. 9월부터는 익숙한 초록이 아니라 주황빛의 단풍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0월은 완연한 단풍의 계절. 그리고 낙엽의 계절...겨울 준비를 위해 하나둘씩 잎을 떨어뜨립니다. 매달린 나뭇잎보다 떨어진 나뭇잎이 더 많아지기 시작하면 겨울이 옵니다. 11월은 이제 잎사귀보다는 나무자체의 모습으로 인해 앙상한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봄을 위한 준비의 시작이니까. 특히 잎사귀가 없다보니 나무껍질로 나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정말 새로운 접근^^:)

 

12월부터 2월까지는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의 이야기이다. 눈속의 나무와 열매 사진이 더 익숙한 때. 이럴때 봄꽃이지만 좀 더 일찍 피는 설중매는 눈 가운데에서 피어 더욱 빛난다. 그리고 동백도...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단 얘기. 이제 봄을 향한 기다림과 준비로 나무는 조용히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나무의 1년이 지나간다.

 

나무의 1년 이야기, 자칫 지루할 수 있었을텐데 차분하게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주었고, 보는 재미를 준 사진들도 참 좋다. 이제 나는 사진보고 이름 외우고, 사진보고 이름 외우고를 해야겠다. 12개월, 1년내내 이 나무는 00이야, 이 나무엔 이런 얘기가 숨어 있어, 이 나무는 이런 꽃을 갖고 있단다 얘기할 수 있게 말이다.

 

 

어떤 책은 읽어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겨우겨우 페이지를 넘기기도 하지만 어떤책은 특별한 의식없이 술술 책장이 넘어간다. 전자는 전공서적이나 내가 어떤 앎을 추구하는 책인 경우가 많고 후자가 수필이나 소설이 해당된다. 수필은 마치 나와 누군가가 서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다양한 주제들로 쉴새없이 재잘재잘.. 한껏 수다를 떨고나면 그동안 답답했단 마음도 어느새 무장해제되면서 편안함이 찾아온다.

손바닥 수필은 보다보니 어느새 끝에 와 있었다. 작가의 속내를 고스란히 보여준 채.. 다양한 주제들이 때로는 신선하게 때로는 생각지못한 섬세함으로 때로는 아주 날카롭게 파고들어 지루함을 모르고 책장을 넘겼다. 

한자리에 앉아 쭈욱 책만 읽을 수 있는 사정이 아니라 틈틈히 읽었지만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앞뒤 상황도 없고 잠깐 보고 또 봐도 편히 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내가 생각하였지만 표현할 수 없었던 아니 제대로 표현해내기 힘들었던 부분들이 너무나 명쾌하게 쓰여진 것을 종종 만나게 되어 놀라웠다.

p.128 우연에 기대어, 예기치 않은 접속으로, 인연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삶의 많은 부분들이 의지나 계획보다 우발적 충동적으로 선택되고 집행된다.

누구보다 계획적으로 인생을 살아보려고 했던 내게 그러면 그럴수로 더 강학게 그 계획을 흐트러놓으시는 손길. 교만하지 말라고, 겸손해지라고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고 살라고 제 잘난맛에 살지 말라고 너도 실수할 수 있다고 그리 알려주시는거 같다. 계획하고 계획하고 또 계획해도 어느 순간 순발력을 보이며 선택하는 순간이 오며, 후회가 뒤 따른다. 물론 아닐때도 있다. 그때 계획한대로 안하길 잘했어...그런날 말이다. 그게 인생인거 같다.

 

p. 131 칼로 두부 긋듯 매사 야멸치게 나누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법이라고. 그대가 먼저 풀어지고 허물어져야 남의 속도 편안하게 풀어줄 수 있다고.

반듯반듯하게만 주장하다보면 꺽인다. 다른 사람에 의해 꺽일수도 있고(대부분) 나에 의해 꺽여질수도 있다. 사람이란 아귀는 톱니바퀴마냥 딱딱 들어맞는게 아니다. 때로는 내 속 다 들어내보이고 남속은 못 보는 날도 있고, 때로는 지나치게 망쳤다 생각했는데 되려 좋은 결과를 안겨주기도 한다. 딱딱 긋고살면 깔끔하긴하지만 질척질척한 정은 모르고 살게되는거 같다. 개인주의가 서로 간섭안하고 깔끔한 관계가 되어 좋지만 때로는 막걸리마냥 걸쭉한 정 한사발이 그리운게 사람이다. 먼저 열고 다가서야 한다.

 

p. 209 과일에서 블라우스, 노트북까지 교환과 환불이 가능한 세상에 그게 안 통하는 거래가 있따. 계약을 맺고 나면 반품이나 교환, 취소가 불가하다. 보증서나 사용설명서도 없다. 애프터서비스도 보장받지 못한다. 기대치에 어긋나도 절대 반품은 안하겠노라고, 중인환시리에 서약까지 해야한다. '고객변심'은 중대한 반칙, 맘에 안든다고 갈아치워도 안 되고 여유가 있다 해서 여벌을 들여도 안된다. 설령 어떤 수상한 바람이 마음 안쪽을 쑤석거려도 흔들리거나 한눈을 팔면 안된다. 고장이 나든 녹이 쓸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마흔 예순 여든까지 눈 딱 갘고 참아내야만 한다. 불카피한 사유로 계약을 파기하면 엄청난 패널티를 각오해야 한다. 천하에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거래, 그래서 ' 결혼은 미친짓이다'다. 미치지 않으면 못하는 짓이다.

아! 그래! 딱이다 딱! 어쩜 이렇게 잘 꼬집어 이야기를 풀어놓았을까, 역시 글로 먹고사는 작가답다하면서 읽은 구절. 내 발등 내가 찍었지하면서 절대 반품은 안되고, A/S는 한번 해 볼참이면 서로간의 스트레스로 피가 마르고(부작용으로 살이 찌기도..ㅋ), 모난부분 서로 두두려가며 긴 세월을 살다보면 겨우 조금 맞춰지는 관계. 결혼,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