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라는 운동경기는 남자의 전유물이며, 과격한 운동, 피멍, 퉁퉁 부운 눈이 떠오르는 그런 운동이다.
이런 권투를 하는 사람이 여자이며, 게다가 나이가 지극한(?) 아줌마이고, 직업이 심리치료사라는 점은 주목을 끌 수 밖에 없는 요인이 아닐까 한다. 왜 이 사람은 그 하고많은 운동 중에서 권투를 하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작가는 유태인인데 이 것에서부터 좀 시작점이 달라지는거 같다. 우리에게 유태인은 그저 외국인일 뿐인데 서양에서 유태인이 차지하는 위치, 입장, 영역은 좀 특별한거 같다. 선민사상, 유태인 우월주의 이면에는 유대민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는 묘한 구도속에 있어 삶이 평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심지어 나이도 많은 아줌마인데 운동, 그러니까 권투를 통해서 변해가는 과정은 숨어있던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기분이랄까?
p.165
아버지가 날 다른 방식으로 보호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인생이 다르게 흘러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권투를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행복은 내게 슬픔을 상기시킨다’라는 말은 정확했다.
운동을 통해서 자신을 마주하게되던 비니, 심리치료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는 권투를 하기 전까지는 그닥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이 아니 기울일줄 몰랐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 그러던 그녀가 (아마 내가 아이 엄마가 되면서 이론적 상담에서 현실적 상담인으로 바뀔 수 있는 계기와 비슷한것이겠지?)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내 인생이 다르게 흘러갔다면, 권투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이라고 말하면서 변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거칠과 과격한 그 운동을 통해서 내 안에서 무언가가 분출하고, 응얼이졌던 것들이 풀어지면서 내가 진정한 내가 되는 경험을 하게되는 것이다.(아..나도 운동을 좀 해야겠다. 걷기라도 해야하는데...거참...)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의 눈은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자신이 성적소수자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표현하며, 그 느낌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들려줄때 자신의 감정이 살아 그대로 전달되다보니 오히려 상대가 빨려들어오는 듯한 느낌에 더 흥이 난다는 점 등을 볼때 그녀는 권투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각도를 접하게 된것이다.
p.296
무절제한 바깥 세상과 달리 권투는 우아하게 억제된 공격성을 내포하는 운동이며, 보편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꿈을 위한 무대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명성을 사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권투가 머릿속에 갇혀 있던 나를 끌어내 몸 안으로 넣어주었다는 것이다. 그 몸 안에서 나는 더 똑똑해졌고 내 가족을 다시 만났다.
우아하게 억제된 공격성...권투는 마구잡이 싸움이 아니란 얘기다. 마구 주먹만 휘둘러서는 권투에서 승리할 수 있고, 수만번, 수백만번의 잽과 훅을 날리며 연습하고, 링바닥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규칙을 습득하고, 나를 찾아가는 운동이다. 더욱이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꿈을 위한 무대로 저자는 점점 더 자신을 향해 달려간다. 나도 문득 아..이렇게 권투를 하면서 내안의 것을 모두 쏟아내게되면 지금 무언지모를 희뿌연 답답한 생각들이 턱이 숨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그 시점에서 맑게 개어 선명하게 나를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게 갑자기 내가 권투 예찬론자가 되어버리려한다. 유대인이라는 제한된 어찌보면 억압된 그 환경 속에서 가두어지고 길들여진 한 중년여성이 권투를 통해 자신을 마주하게되고, 승리하는과정을 통해서 점점 더 성장하는 모습이 멋지게 그려진 책이다. 비록 겉모습은 같을 지라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라는 말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