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인간의 추억은 열어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내용물이 담겨 있는 녹슨 상자와 같은 것이다(346)

“아흔 살이 되는 날, 나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이름이 없다. ‘서글픈 언덕’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흔 살의 남자주인공과 열네살짜리 소녀는 주인공이 붙인 ‘델가디나’ 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신문에 칼럼을 쓰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을 사랑하며, 스페인어와 라틴어를 가르쳤던 아흔 살의 주인공은 창녀들과 책과 음악으로 가득했던 기나긴 자신의 삶을 아흔 번째 생일에 숫처녀와 함께 축하하기로 결심한다.

내가 처음 이 책의 제목에 끌린것은 보통 입에 올리기 거북한 단어를 너무도 당당히 쓴 책이었고 더욱이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의 글의 묘한 매력을 알고 있을터라 강한 호기심에서 읽었던 책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상상하는 그런 농도짙은 사랑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잠자는 소녀를 곁에서 지켜보며 아흔 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그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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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이란 것이 천장의 비 새는 곳처럼 우리 각자에게 남은 생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려준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15)

‘노인들이 본질적이지 않은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는 사실은 생의 승리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18)

‘소녀는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낳았을 때의 모습 그대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38)

‘다른 모든 새벽녘의 사창가와 마찬가지로 그곳은 천국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집이었다. 거리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는 아흔 살이란 나이의 무게를 느끼며 나에게 남은 밤의 시간을 헤아리기 시작했다’(44)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들이 잊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일어난 적이 없는 일들이 마치 일어났던 것처럼 기억 속에 자리 잡을 수도 있다’ (80)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낭만주의 문학에 빠져 들면서 작품들을 통해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은 행복한 사랑이 아니라 버림받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89)

‘섹스란 사랑을 얻지 못할 때 가지는 위안에 불과하다오’(94)

‘나의 소녀여, 우리는 이 세상에 단둘이다’ (96)

‘내 목숨같은 델가디나, 크리스마스의 산들바람이 도착했어’

‘나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 중 하나는 그날과 같은 어느 아침에 학교를 나서면서 느꼈던 혼란스러움이었다. 도대체 내가 왜이러는 거에요? 하고 물었을때 여선생님은 “얘야, 산들바람 때문이라는 걸 모르겠니?” (98)

‘단장을 하고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리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사실을 사랑이 너무 늦게 내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며 나는 그런 누군가를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110)

‘나는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시적 방종에 불과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고양이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가능한 것뿐만 아니라, 늙고 외로운 나자신이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의 것도 사실임을 깨달았다. 바로 내 고통의 달콤함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을.(113)

‘아흔 번째 생일에 델가디나의 행복한 침대 속에서 살아 있는 몸으로 눈을 뜨자, 인생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어지러운 강물처럼 흘러가 버리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석쇠처럼 몸을 뒤집어 앞으로 90년 동안 나머지 한쪽을 익힐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흡족한 생각이 스쳐갔다’ (142)

‘햇빛이 환하게 비추는 거리로 나선 나는 처음으로 내가 나의 첫 번째 세기의 희미한 수평선에 이르러 있음을 알았다. 태양은 공원의 편도나무 사이로 떠올랐고, 하천 우편선이 표효하면서 항구로 들어왔다.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어느 날이건 행복한 고통 속에서 훌륭한 사랑을 느끼며 죽도록 선고 받았던 것이다’ (151) 

 

이책을 좀더 젊었을때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학교다닐때 선생님의 좋은 책에 대한 권유가 너무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내가 듣고도 몰랐던건지도 모른다 모르면 무조건 안배웠다고 우기곤 하던 학생의 특징

이책을 읽는 내내 어떤 벅차오르는 기쁨에 도취되기는 처음이다

처음에는 책에 밑줄을 긋다가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게 되어 나중에는 밑줄긋는 의미마져

상실해버릴 정도였다

마치 보물이 가득 든 방에서 무엇을 택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상태같은것

책을 음미하듯이 읽다보니 다른 책보다 거의 2배이상이 걸렸다.

책을 읽다가 너무 좋은 구절이 나오면 옆사람에게 읽어주고 싶을 정도로 아마 나는 거의 책에 미쳐있었다

"나의 책을 던져버려라, 그리고 나를 떠나라"

 나타나엘이여, 그대는 모든 것을 지나치는 길에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느 곳에도 멈추지 말라. 오직 신만이 덧없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 두어라(19쪽)

 우리의 삶은 마치 우리들 앞의 찬물이 가득 찬 유리잔 같을 것이다(25쪽)

기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신을 행복과 구별하지 말라. 그리고 그대의 온 행복을 순간 속에서 찾으라....

마치 하루가 거기에 죽어가기라도 하듯이 저녁을 바라보라. 그리고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기라도 하듯이 아침을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것에 경탄하는 사람이다(32쪽)

 지상에서 내가 안 가장 아름다운것 ...그것은 나의 주림이다.(43쪽)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신이라 불렀고 모든 것을 사랑하고자 하였던 것이다(48쪽)

 나타나엘이여,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주위가 그대와 흡사하게 되면 그대에게 이로울 만한 것이 없다.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너의' 집안, '너의' 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52쪽)

 오오 봄이여! 한 해밖에 살지 못하는 초목들은 그들의 가냘픈 꽃을 더욱 서둘러 피우지 않는가?. 인간에게 봄은 일생동안 한 번밖게 없다(60p)  -동감-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선택하지 않는 것을 물리치는 것...

선택한다는 것은  영원히, 언제까지나, 다른 모든것을 포기해버리는 것이었으며, 수많은 그 '다른것들'이 어떠한 하나보다도 좋아보였다. 그것밖에 소유할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두려운 것이다(p77~78) -동감-

 나는 생의 모든 형태를 부러워하였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면 무엇이든 나는 그것이 '하고'싶었다(p79)

 닫혀 있는 모든 문 뒤에 신은 있는 것이다. 신의 모든 형태는 사랑할 만한 것이며, 그리고 모든 것이 신의 형태인 것이다(p89)

 '존재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쾌락적인 것이 되었다...나는 촉감의 즐거움이 제일 탐났다

가을 벌판에 소나기를 맞으며 외로히 서있는 나무. 깊이 젖어든  땅 속에서 물이 오랫동인 그 뿌리를 적셔줄 것이라고...나의 맨발은 젖은 당, 웅덩이의 살랑거리는 물결, 서늘한 , 미지근한 진흙의 촉감을 느꼈다.....

나는 가을의 축축한 바람을 좋아했다....비 많이 내리는 노르망디의 땅(p127)

(언젠가 프랑스에 간다면 꼭 노르망디에 가보고 싶은 마음을 지울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