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이상은은 가수다.
담다디를 부르던 키큰 여자가수...어딘지 이상한 춤을 추며 신나는 노래로 즐거움을 선사했던 가수...그런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떠났다.
담다디를 따라부르던 난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다시 이상은을 만났다.
이번엔 텔레비전 속의 노래를 부르는 이상은이 아닌 책을 펴낸 이상은을 만났다.
왠지 낯선 모습일 것 같았다. 내 머리속에 채워진 이상은이란 가수의 모습과 글을 쓰는 이상은의 모습은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책을 만났다.
겉 표지부터 색다른 책.
책을 쭉 넘겨보니 여행서라는 느낌보다는 오래전 카메라 회사에서 만든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여러컷 다이어리에 실어 놓았느데, 그 종이 질이 특이해 오랜 시간동안 간직했던 다이어리.
그런데, 이 책이 그 다이어리 처럼 여러컷의 사진도 실려 있고, 종이질 또한 까칠까칠하며 오래된 향수를 자극하는, 엔틱 풍이었다.
그리고, 아끼고 아끼고 이 책을 읽었다.
글 귀 하나 하나 참으로 예뻐 아껴두고 읽고 싶은 책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여행서이지만, 삶이 녹아들어 있는 그런 책이란 느낌을 받았다.
삶은...여행이란 제목처럼 인생은 여행이란 말이 이토록 와 닿을 수가 없었다.
베를린이란 도시를 여행하며 그 속에 이상은이란 한 인물을 녹여낼 수 있다는 것...이 책이 가진 특별함이라 말할 수 있다.
왜 이상은이란 뮤지션에게 '음유시인'이란 호칭이 붙었는지 몰랐는데, 글을 읽어보니 딱 맞는 호칭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담다디 이후 색다른 음악으로 찾아왔을 때 처음에는 낯설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그 낯섬은 이상은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 즉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왔고, 편안하게 음악을 듣게 했다.
이 책 또한 그러했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이상은다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독특한 듯 하면서도 이상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
이상은다움으로 가득한 책이었다.
베를린...어릴적 독일로 유학가고 싶은 꿈을 꿨던 나로서는 베를린이란 도시가 더욱 정감이 갔다. 그 도시를 이상은이 찾았고, 내가 꿈꿨던 베를린 모습 그대로가 담겨 있는 듯 더욱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꿈이 빨리 깰까 두려워 더욱 천천히 음미하며 이 책의 책장을 넘겼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여행서라는 타이틀에 맞게 여행지나 유적지 등을 잠깐잠깐 소개해 놓고 있었다. 난 그 곳에 머물고 있는 듯 조심조심 읽어 내려갔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것은 바로 내가 여행을 하고 있는 듯, 이상은이 소개하는 길 안내를 따라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상은이 부른 여행 노래를 들으며 글을 읽노라면, 더욱 이 책 속에 빠져들게 되었고, 모든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지금...나 또한 여행을 떠나고 싶을 만큼 힘든 삶과 맞닥뜨리고 있다.
만나고 헤어짐의 반복...나이를 한살 더 먹어갈수록 그것이 내 삶의 또다른 일부로 다가와 왠지 두렵고, 다른 한 편으론 더 행복하게 열심히 살아가도록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누구나 바닥까지 지쳐, 혼자의 힘으로 일어서기 힘들 때, 바로 그때 여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책장에 꽂혀진 책 한 권이 그런 새로운 힘을 전해 주기도 한다.
난 이번에 후자를 만났다. 이 책을 만난 것이 내게는 새로운 힘을 주었다.
진하게 책 내음이 그리울 때 만나서일까, 더욱 아껴두고 보고픈 책...다시 또 다시 읽고 싶은 책...그렇게 내게 왔고, 그렇게 내게 남게 되었다.
내 삶 또한 여행이다.
약간의 느낌이 다르고, 내가 가진 색깔이 다를 뿐.
여행의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려한 이상은만의 글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고, 내 꿈의 한 자락을 장식하고 있는 베를린을 만날 수 잇어 더더욱 즐거운 만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