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 계시는 김용학 할머니가 들려주는 한 해 농사 일기이다.
처음 이 책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다.
아이와 둘이 앉아 어떤 책이 재미있을까 하며 이 책 저 책 펼쳐보기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는 나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해 구매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1년 쯤 지나서 도서관 서가에 곱게 꽂혀있는 이 책을 발견하고 훑어보기를 한 후 아이에게 권했다.
처음에 아이는 표지에 그려진 할머니를 보며, 별로 일 것 같은 인상을 받은 듯 했다.
그러다 읽기 시작하더니, 금세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외가가 원주와 가까운 시골이라는 점도 아이에게 흥미를 주는 점이었지만, 지금까지 아이가 외가에서 보아왔던 낯 익은 풍경이 그대로 그려져 있어, 아이는 외가에 가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엄마의 눈에 비친 이 책의 느낌 또한 우리 아이와 똑같았다.
김용학 할머니는 친정엄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1년 12달 시골에서는 참으로 바삐 움직인다.
그 모습을 이 책에서는 매 달의 큰 행사를 중심으로 계절의 변화 맞춘 있는 그대로를 담고 있다. 2월부터 시작하여 다음 해 1월까지...우리는 양력을 쓰다 보니 그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닌 예전 그대로 음력을 기준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아이들은 왜 1월부터가 아닌 2월부터일까 하고 의구심도 생기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그 차이를 발견하는 이가 몇이나 될런지...
하여간 2월 장담그기 - 그림을 보면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분홍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예전의 우리 내 모습이 아닌 지금 현재의 우리 내 모습임을 알 수 있다.
3월 밭갈기 -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모습은 농업의 기계화로 보기 힘든 광경인데, 아직까지 소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이 정겹기 그지 없다. 친정 아버지도 아직까지 소를 이용해 밭갈기를 하시는데, 그 모습 그대로 그림 속에 잘 담겨 있다. 역시 이 부분에도 현대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소 귀에 달린 노란 귀걸이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것인데, 이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에는 귀에 이런 것을 달고 살지 않았다. 이것이 있어 그 소가 언제 태어났는지 어디에 살았는지 어떤 병을 앓았는지 등을 알 수 있는데, 지금 한창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미국소의 경우 이런 시스템이 없어 30개월에 대한 판정을 검역소 직원이 치아로 하는 등 그 불확실성에 국민들이 더욱 신뢰를 못하게 된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하여간 이 부분도 요즘 아이들이 쉽게 찾아 내기 힘든 Old & New이다.
4월 벼 모종 키우기 - 친정은 내가 초등 2학년생까지 벼농사도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농사라면 어느정도 이윤도 창출이 되어야 하는데, 한창 곡물값이 없을 때여서 아버지가 밭으로 토지성질변경을 하셨다. 그래도 어릴 때 기억을 되짚어 보면 이 맘 때 쯤 그림처럼 모판에 모종을 심고 논에 모내기 할 정도까지 키웠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물조리개를 이용해 물도 주고, 저녁이념 비닐로 덮고, 아침이면 비닐을 걷어내고, 정말 손이 많이 갔었다. 이 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Old & New는 바로 할머니의 모자이다. 이런 모자는 예전에는 없었고, 한 10년 전부터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5월 모내기 - 울퉁불통 모난 논의 모습이 자연 그대로여서 보기 좋다. 기계화로 모내기도 기계를 이용해 하는 현재의 모습과 함께 직접 모를 심는 예전 방식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는 장이다. 또한 정겹게 한 귀퉁이에 세워진 지게의 모습도 실골 정취를 담쁙 뿜어낸다. 이 장에서 찾아 볼 수 있는 Old & New는 등에 농약통을 짊어지고 약을 뿌리는 모습이다. 이런 기계는 한 10여년 전에 등장을 했고, 예전에는 은색의 스테인레스 통을 바로 등에 메고 뿌렸다. 그림처럼 등에 메기 편한 형태도 아니었고, 가방처럼 바로 등에 붙는 형태라 많이 무거워 힘들어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6월 감자캐기 - 여름 감자는 이렇게 하지가 지나고 나서 이 쯤에 수확을 한다. 하지만, 늦가을가지 감자를 땅에 그대로 두었다가 캐는 경우도 있다. 친정은 여름감자는 먹을 것만 그때그때 캤고, 항상 늦가을까지 그대로 두었다가 서리가 내리고 난 다음에 캐낸다.
7월 벼가 많이 자랐다 - 장마와 태풍에 피해나 입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농사꾼의 마음을 담아 낸 페이지이다. 이 장에서 볼 수 있는 Old & New는 바로 비옷이다. 예전에는 칙칙한 검은색계통의 비옷이 주였다면 최근에는 그림처럼 노란색 비옷을 입는다. 이 또한 비옷의 변천사라고난 해야 할까?
8월 소 풀 뜯기 - 지금은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예전에는 지천이 풀이었기에 밭일을 하러 가면서 소를 함께 끌고 가서 풀밭에 소를 메어 놓고 일을 했었다. 그러면 소는 주위에 널린 풀을 먹다가 쉬었다가 하며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소를 메어놀 곳이 없다. 작은 자투리 풀밭이라도 그것이 내 땅이면 개간을 해서 뭐라도 심기 때문이다. 땅 값이 많이 뛰다보니 농심도 그렇게 물이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사실 많이 안타깝다. 불행히도 소는 그 여름의 한가로운 때를 즐길 피크닉 장소마저 빼앗기고, 오로지 외양간에서 쓸쓸히 여름을 난다.
9월 고추 따기 - 빨갛게 익은 홍추를 포대 가득 따는 일. 정말 힘든 일이다. 나도 한 때 시골에서 고추 빨리 따기로 친정엄마께 칭찬을 많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농사일을 거드는 일 밖에 없었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농사일을 거들었고, 당연시 생각했다. 그냥 즐겁게 일을 했던 것 같다. 빨리 일 마무리 짓고 쉬고 싶어 더 열심히 했다. 이 장에서 찾을 수 있는 Old & New는 바로 고추골의 모습 변화다. 이 또한 농사일을 해 본 사람만이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고추골 한 골에 줄을 띄우고 고추를 땄다. 한 10여년 전부터는 고추골 2골에 줄을 띄워 고추를 따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 책은 바뀐 모습이 담겨 있다. 아마 쉽게 찾기 힘든 부분이다.
10월 벼베기 - 드디어 벼를 벤다. 그림에는 낫을 들고 예전처럼 벼베기를 하지만, 요즘은 이 부분도 기계화로 인해 기계가 알아서 깔끔하게 마무리까지 한다.
11월 콩 수확 - 미국산 대두 수입량이 늘어나면서 국내 콩농사는 엄청 줄었다. 그래서 친정에서도 자급자족용으로 콩을 심을 뿐 내다 팔기위해 대량으로 콩을 심지 않고 있다. 80년대 초반에 이미 콩수확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콩이 다시 주목받는 시대가 되었으니 정말 아이러니 하다. 게다가 토종 콩 씨를 미국과 일본등에서 반환받아 재래종이라는 토종 콩 수확을 위한 첫발을 내딛은 첫 해이기에 그 이미가 더 하다. 유전자변이 없는 이 땅의 콩 그대로를 만날 날이 멀지 않은 듯 하다.
12월 쥐불 - 논과 밭 두렁에 불을 놓는 장면을 흔히 본다. 예전에는 그 의미에 대해 어른들이 설명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아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지나갔던 장면이다.
1월 만? 남아 있다) 스타일의 만두빚기 광경이 아주 정겹게 담겨 있다. 아이는 원주 친가에서 설 전에 빚던 만두를 떠올리며 그 모습 그대로라며 좋아라 했다. 만두 빚는 방식이 어쩜 이리도 잘 포착되어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뒤페이지 부록도 알차게 되어있다.
벼농사 순서와 쌀이 되는 과정, 장담그는 과정, 고추를 길러 말리는 과정까지, 농사도구, 24사절기까지 농사와 관련된 부분과 아이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것들로 알차게 구성이 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맛나게 만두국을 드시는 우리 내 시골 할머님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런 책이다.
아마도 이 모습이 친정의 모습과 너무도 같기에 더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아이 또한 재미있다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주 큰 사이즈의 책인데, 그만큼 실감나게 표현된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이 부분은 편집자의 배려라고 해야 할까?
끝까지 즐거움을 준 책이다. 나와 아이에게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