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때'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늘 아침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취소 된 스케줄로 인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바로 잠에서 깬 아이에게 내가 너무 섣불리 약속 취소를 통보한 셈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기분이 좋지 않음을 짜증 섞인 표정과 말투, 행동으로 보였다.  아이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과의 표출이었다.  그런데도 엄마인 나는 아이의 행동을 지적했고, 잠시 동안 반성을 한 아이는 왜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이야기하고 나서야 서로의 상한 감정을 추스리고, 앞으로 서로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자며 서로를 보듬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렇제 늦은 아침이 시작되었다.  그래서일까 '힘든 때'라는 제목이 더욱 크게 눈에 들어왔다.  아이도 겉표지만 보고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 책을 읽고 싶다는 'OK' 사인을 주었다.

그리고,나보다 먼저 아이가 이 책을 읽었다.

몇 장을 읽다 말고 뒤 페이지의 내용을 쁘르게 훑어 본 아이는 다시 읽던 페이지로 돌아와 천천히 읽어 나갔다.  그런 후,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 읽은 책을 건네주었다.

책을 읽기 전 '힘든 때' 제목에서 연상된 것은 '가족과 아이의 갈등'이었다.  두 번째는 '어려운 가정 형편'이었다.  본문을 읽어보면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무게 중심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있었다.

그런데, 이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아이의 시각에서 밝게 그려내고 있는 점과 책 속에 글로 담기지 않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상상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는 책이었다.

힘든 가정 형현으로 인해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엄마 대신 아이를 돌보는 아주머니는 말 그대로 아이를 지켜주기만 할 뿐, 말 그대로 지키는 수준에만 그치고 있는 사회적 문제도 아이의 시선에서 날카롭게 지적해 놓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기르고 싶어하는 애완동물인 '강아지'.

그 '강아지'를 사 줄 수 없는 가슴 아픈 부모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둡게만 그려졌다면 자칫 우울한 느낌만 남는 그림책이었겠지만, 이 책은 밝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주인공이 밖에서 주워온 아기 고양이를 '강아지'라 이름 부르며 새로운 희망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고마운 부모의 마음.  또한 그런 부모에게 아이로서 고양이를 '강아지'라 이름 부르며 아픈게 하는 모습은 역락없이 순진한 아이의 모습 그 자체였다.

누구에게나 '힘든 때'가 있다.

살다보면 매일 힘든 때가 아닌 날이 없을 정도다.  그래도 그것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가냐에 따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좌우된다. 

그런면에서 밝은 주인공 아이의 모습은 자라는 아이들에게 긍정적 희망을 주는 좋은 모델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딸 아이와 책 표지를 놓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표지의 짜증 섞인 아이의 표정을 보며 아침에 이 표정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던 아이를 떠올렸다.  그래서 은근슬쩍(사실은 노골적이었다) 왜 아이가 이런 표정을 짓고 있을까? 라며 책을 먼저 읽은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이는 오히려 내게 왜 그런지 맞춰 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읽지 않아 모르겠다고 했더니, 아이는 '씩~미소를 지으며 "주인공 아이가 콩을 싫어하는데, 바로 콩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라고 했다.  그러면서 표지는 Color지만, 속(내지를 들춰 보여주며)에는 흑백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이 그림은 본문에 없다고 했다.

이 책을 읽어야지만 표지 그림을 알 수 있는 그런 재미를 가진 책이었다.

아이 책을 함께 읽고 짧은 대화라도 나누는 것이 나와 아이의 즐거움 중 하나인데, 그런 즐거움을 크게 느끼게 해 주는 책이었다.

우리 집 형편도 이 책의 주인공 아이의 가정처럼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맞벌이를 자주 생각하지만, 아이를 바라보며 조금 힘들더라도 엄마가 옆에서 아이를 이끌어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

아이는 잘 자라주고 있다.

밝고 긍정적인 속 깊은 아이이다.

지나치게 속이 깊어 오히려 문제라 생각될 정도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며 아이는 자신을 보는 듯한 착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제목은 힘든 책이지만 밝은 책...아이와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말로써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쉬운 책은 누구나 읽기에 편하지만 어려운 책은 쉽게 익히지 않다보니 책에 대한 지루함과 두려움과 같은 반감을 갖게 된다.

이 책을 쓴 작가 또한 같은 생각에서 출발을 했다.

딱딱한 내용의 책들도,

어른들을 위한 책들도,

아주 어려운 책들도...알고 보면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와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배에 비유한 작가의 책 이야기, 그리고 멋진 일러스트.

편안하게 책 속 이야기에 빨려들게 된다.

스페인어로 LIBRO는 책을 뜻한다고 한다.

여기서 LIBRO는 궁극적으로는 책을 의미하지만, 멋진 꼴라쥬 작품 속의 LIBRO는 배의 이름이다.  즉, 책을 배에 비유해서 이야기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책 머리에서부터 배에 책을 비유하고 있음을 알고 시작을 했지만, 일러스트 곳곳에 작가가 넣어놓은 단서들은 그 사실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항해의 시작, 작가는 글을 쓰고 출판사라는 항구로 간다.  편집자는 작가의 돛대를 살피고, 튼튼하다고 판단이 되면 책이라는 이름을 가진 배에 옮겨 태운다.

그리고 항해를 위해 교정을 거쳐 항구를 빠져나온다.  항해에서는 화가와 사진가들이 그림과 사진으로 멋지게 꾸미고, 북 디자이너 항구에서 컴퓨터를 사용 예쁜 모양으로 꾸민다.  출력소 항구에 닿을 때까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노랑, 파랑, 빨강, 검정의 네 가지 원색으로 나누고, 사진판이라 불리는 얇은 금속판으로 옮겨간다.

인쇄라는 다음 항구에서 인쇄기를 거쳐 똑같이 생긴 수천 개의 배들을 만들어 내고, 제본 항구에 도착해 제본을 한다.  딱딱한 표지를 붙여주고 재단기라 부르는 커다란 칼이 접혀 있는 곳의 세 군데를 잘라 낸다.  그런 후 드디어 책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어디가 되었던 책장에 꽂히게 된다.

마지막에 항해일지라는 페이지를 별도로 구성해 놓은 점이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아이가 꼼꼼하게 읽어 가며, "이 책은 분명 2000년도에 만들어진 거에요."라며 이 부분을 강조해서 날짜를 읽는다.

발상의 전환이 가져다 준 재미있는 책이 만들어 지는 과정. 

아이도 한 층 더 책과 친하게 되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요즘 한창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루이자 메이 올컷이 지은 '작은 아씨들'이다.

5살부터 축약된 명작 동화로 읽어오긴 했어도, 요즘처럼 빠져들며 읽지는 않았다.  아마도 아이가 8살이 되고 난 후 '작은 아씨들'을 제대로 맛을 느끼게 되어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나 또한 이 책을 무척 좋아했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었었던 미니시리즈도 보고 영화도 보며 더욱 이 작품에 열광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처럼 딸도 같은 책에 열광하는 것을 볼 때 그저 즐겁기만 하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공통된 주제, 그것도 서로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더욱 눈이 반짝이는 딸의 모습은 눈에 넣어도 안플정도다.

그런 아이와 함께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이 바로 이 작품이다.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과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함께 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사실, '월든'이란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 헨리 데이빗 소로우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며 이 작가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린 루이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도 알 수 있다.

8살 말괄량이 딸은 이 책을 통해 루이자와 자신이 많이 닮은 모습을 발견하고 글줄이 많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담임에게도 남자아이처럼 논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말괄량이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어린 루이자와 같다.

헛간 들보에서 뛰어내려 다리를 다친 루이자처럼 딸아이도 몸으로 움직이고 뛰어놀고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다.  얌전히 책을 읽을 때를 제외하면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  심지어 지금도 침대에서 겅중겅중 뛰어 놀며 중얼중얼 자기만의 이야기 세계에 빠져있다.

어린 루이자의 모습은 비단 딸아이의 모습과만 닮아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나의 어릴적 모습과도 같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도 루이자처럼 자연을 맘껏 즐기며 자랐다.  들과 산에 있는 온갖 열매가 나의 간식이 되어 주었고, 끼니를 잊고 놀게 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끼니때는 집에 꼭 와서 먹고 난 다음에 나가서 놀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루이자의 아버지는 교사였다.  교육자의 아버지는 글씨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밖에서 뛰어노는 루이자와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는 소로우 선생님과의 만남은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온다.

지금 시대적으로 생각해 보면 소로우 선생님은 교육에 있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는 분인데 말이다.  자연과 함께 보고 듣고 느끼며, 체험을 하는 것 만큼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없다.  그것을 소로우 선생님은 몸소 실천하는 분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노력이 후에 루이자를 유명한 작가로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개구지다고 엄마, 아빠에게 잦은 잔소리를 듣던 아이가 이 책을 읽는 순간 만큼은 속 시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끝에 던지는 아이의 말.

"엄마 나도 커서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냥 웃음이 났다.  그리고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