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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여우 헬렌.

제목과 표지 사진을 보며 실화구나!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것이 내 첫 느낌이었다.

그런데, 8살 딸아이는 아기 여우 헬렌 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헬렌 켈러를 떠올렸다고 한다. 아이의 직관력에 놀란 순간이었다. 아이는 헬렌이라는 이름에서 헬렌 켈러를 떠올리고 이 아기 여우도 헬렌 켈러처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 아니야고 내게 되물었다. 이름에서 헬렌 켈러를 생각하고 헬렌 켈러의 삼중고를 그대로 아기 여우 헬렌에게 적용하고 있는 아이의 생각에 때묻지 않은 아이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받았을 때, 분장 노오란 표지가 함께 하고 있었고, 그 곳에 세 가지 장애를 가긴 아기 여우와~로 시작되는 소개글이 있었다. 그런데, 난 이 부분을 통째로 놓치고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이 부분을 읽지 않고 그저 아기 여우 헬렌이란 제목만으로 세가지 장애를 가진 아기 여우이야기인가 보다 하고 추측을 한 것이다.

책읽기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을 다시 갖게 되는 순간, 이 만큼 자란 아이에게는 기쁨을 느끼면서도 저 만치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 내게는 부끄러움만이 가득 느껴졌다.

그렇게 순수함으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화려한 문체도 아니요, 내 입에 맞는 착착 감기는 그런 이야기체도 아닌, 작가라기 보다 한 사람으로서 그저 있었던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전달해 주려는 야생동물병원 수의사의 일기같은 다듬어지지않은 문체였다.

하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옮기다 보니 오히려 감동은 배가 되는 듯 했다. 사실이란 것을 부각시키는 사진은 더욱 그 느낌을 배가시키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화를 본적도 없을 뿐더러, 아기 여우 헬렌의 이야기도 들은 바 없기에, 내게는 모두가 생소한 이야기였다.

아기 여우 헬렌을 읽으며, 동물도 장애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눈뜨게 되었다.

인간에게만 있다고 생각한 장애. 그런데, 야생동물에게도 장애가 있었습니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당연히 다른 동물에게도 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조차도, 조금의 의심없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내 좁은 생각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 장애가 있다면, 그리고 헬렌 켈러처럼 삼중고를 안고 태어났다면 어떠할까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그 장애를 첨단 과학 기술로 조금씩 극복해 나간다고 하지만, 그런 혜택과 거리가 먼 야생동물은 과연 어떻게 살아갈까?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왜 동물에게는 장애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건 바로 장애가 있는 동물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이르게 되었다.

약육강식의 생존법칙이 존재하는 야생의 세계...그것도 야생 동물, 그 중에서도 먹이 사슬의 위에 존재하는 여우라면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기 여우 헬렌 홀로 남겨진 배경을 나름대로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의 저자가 알려주는 사실과 느낌에만 머물지 않고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았다.

이렇듯 내게 다가온 아기 여우 헬렌은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충격이었다.

자, 아기 여우 헬렌은 그럼 어떤 삼중고를 안고 태어났을까? 헬렌 켈러처럼 정말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여우일까? 하지만, 아기 여우 헬렌은 동물이다. 동물에게 있어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감각기관은 바로 코. 즉 냄새를 맡는 것이다. 그런데, 헬렌은 바로 그 후각기관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8살 아이도 야생동물이라는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남편에게도 질문해 보았다. 역시 남편은 동물이라는 점을 생각해 냄새를 못맡는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이렇듯 호기심을 극대화시켜놓고, 난 마저 이 책을 읽었다.

삼중고를 안고 있는 헬렌. 아무리 야생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이지만, 북방여우의 치료를 꺼려하는 솔직한 모습부터, 그리고 이런 장애를 가진 아기 여우의 마음을 이해하려 직접 눈도 가리고 귀도 막고 행동해 보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사실, 이 책을 읽어 나가며 아기 여우 헬렌이 헬렌 켈러처럼 멋지게 장애를 극복해 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헬렌은 그렇지 못했다.

헬렌을 만나고 헬렌을 떠나 보내기까지 한 달간의 생생한 기록. 한 1년 쯤 되보이는 이야기가 고작 한달의 기록이라니...그리고 너무도 짧게 왔다간 헬렌이 남기고 간 흔적은 너무도 컸다.

헬렌을 자식처럼 생각했던 멘코. 이 멘코 또한 헬렌을 떠나 보내고 책이 출간된 해에 떠났다.

멘코가 보여주는 아기 여우에 대한 사랑 또한 인간에게서 느끼는 자식사랑과 별반 차이가 없는 그것이었다.

작가는 야생동물병원 수의사로서 수많은 동물을 보살피고, 치료하고, 떠나보냈다. 또한 수의사로서 '안락사'에 대한 본인의 심정을 고스란히 글로 써내려갔다. 작가의 고충이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야생동물병원 수의사로써 그를 이해하고 함께 하는 든든한 버팀목인 그의 아내가 있기에 이렇듯 오랜시간 같은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 지금도 아기 여우 헬렌의 고충은 실감나지 않는다. 하지만, 발작을 일으키던 헬렌의 모습을 떠올릴 때,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이 생각났다.

고통스러워 하던 동생의 모습...그 모습이 아기 여우 헬렌이 발작하던 모습과 겹쳐지며, 조금이나마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는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이제 막 읽기 시작했다. 아이가 이 책을 많이 궁금해 안달이 난 시점에서 이 책을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이 또한 내가 느낀 감정을 느낄까? 아이가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함께 이 느낌을 공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