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도서관에 앉아 책을 보았다.
아주 잠깐의 시간을 내서 들른 도서관.
반납 수레 위에 놓인 책들을 정리하던 중 내 눈에 쏙 들어온 책이다.
표지 그림을 보면 일본풍의 그림이 그리 정감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제목을 보면 우리책임을 한 눈에 알 수 있기에 그 내용이 한층 더 궁금해진다.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읽는다. 그림도 살핀다.
아무리 보아도 그림은 일본풍, 내용은 우리 이야기...도대체 그린이의 의도를 모르겠다.
글을 읽다 보면 '뮬란'이 떠오른다.
뮬란은 늙은 아버지를 대신에 전쟁에 나가 싸워 영웅이 되었지만, 가시내는 스스로 전쟁에 나가 싸워 영웅이 된다.
이 대목에선 묘하게 웃음이 나온다.

나에게는 '가시내'라는 말에 얼킨 일화가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나보다 3살 위의 언니는 여장부라 불릴 정도로 시원시원했다.
그렇다보니 동생인 나에게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엄한 면이 있었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사용하는 '욕'을 배워와 그 뜻도 모르고 언니 앞에서 사용하다 아주 심하게 혼이 났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내 입에서 '욕'을 한 적이 있다.
나쁜 것은 초장에 바로 고쳐야 한다며 언니가 아주 엄하게 했고,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 이후 한 번도 욕이란 것 하지 않았겠는가?
반면 내게는 그리도 엄했던 언니는 상황에 맞게 간간히 욕도 하고 그랬다.
그런 언니에게 대들법도 한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언니가 자꾸 '가시내'라고 불러 이 말이 욕이라 생각한 나는 처음으로 기세등등하게 욕하지 말라고 대들었다.
그랬더니 언니가 웃으며 '가시내'는 욕이 아니라며 반기를 든 나를 더 혼내는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가시내'가 순우리말이며 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 말의 어원, 유래 등은 찾아보려 하지 않고, 그저 언니의 말만으로 그런가보다 하며 지나쳤다.
그래도 미심쩍었던지 '가시내'라는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흔히 쓰는 말을 난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에 이끌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웃으며 책을 읽은 후 이 책의 작가 소개를 읽었다.
특이한 점은 아무리 그림책이라 해도 글을 쓴 사람이 먼저 소개가 되고 그림을 그린이가 나중에 나오는데, 이 책은 반대로 그림을 그린이가 먼저 소개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책 표지에서도 그린이 다음에 글쓴이로 되어 있었다.
그만큼 글보다 그림에 포커스가 맞춰진 편집자의 의도가 읽혀지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왜 하필 일본풍의 그림을 선택했을까?
그린이의 프로필을 읽어보니 역시나 일본에서 그림 공부를 한 적이 있다.
공부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림의 풍이 일본풍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니 철저히 계산된 그림이라 하겠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의 내용을 읽어보면 상당히 남성적이며 용감하고 스스로 개척하는 삶을 산 여인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강인한 여성이란 인상을 심어주는 그림이 필요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일본풍의 차가우면서 가는 선으로 표현된 인물이 제격이 아니었을까?
편집자의 의도였는지 그린이의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이 계산은 철저히 맞아 떨어졌다.
날카롭고 날렵한 선은 그 만큼 강한 인상을 단번에 심어준다.
그러면서도 해학적이기에 처음에 들었던 그림에 대한 거부감이 뒤로 갈수록 서서히 줄어든다.
마지막장의 '가시내'의 유래를 읽을 때 쯤이면 그림에 저절로 동화되어 있음에 놀라게 된다.

이 그림책의 이야기는 경상도 지방에 전해져오는 옛이야기를 각색하여 다시 쓴 것이라 되어있다.
『갓쓴애』가 『가쓰내』로 그러다 지금의 『가시내』가 되었다 한다.

재미난 말의 유래도 알고, 색다른 그림에도 취해보고, 옛 추억의 한 자락도 꺼내보는 짧지만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