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그림 속 토끼가 눈을 사로 잡는다.
최근 일주일 간 토끼를 돌봐주어서 더 그러했던 것 같다.
네 발 다릴린 짐승은 만지지도 못하는 내가 처음으로 토끼를 쓰다듬어 주었다. 정말 놀라운 변화였다.

그래서 특정 종교 이야기를 담은 이 특별한 그림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글은 쓴 분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었다. 단지 불교 이야기이기에 이 종교의 열렬한 신도가 아닐까 짐작해 볼 따름이다.
그림을 그린이는 이미 알고 있는 분이다. 여러 그림책에서 만나 그림에 반했기에 믿음이 간다.
그리고 사실적이며 서정적인 그림에 절로 취한다. 

그림 작가는 표지에 불교의 정신을 함축적으로 담아냈다.
동시에 특정 종교에 대한 거리감을 좁혀주는 장치로 우리네 인자한 할아버지 인상을 한 스님과 개구져 보이면서도 귀여운 인상을 주는 친근한 동자승을 전면에 내세웠다. 귀여움으로 대표되는 동물인 토끼까지, 게다가 그림의 톤도 안정적인 파스텔톤이다. 또한 풍성함을 상징하는 계절인 가을, 그 가을을 닮은 색채가 친근함과 더불어 안정감까지 준다.

옛 스님 이야기인데 왜 어린 동자승이 나올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으리라.
나 또한 어린이 그림책이라 동자승을 끼어넣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왜 '동자승'이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게 된다. 이미 앞선 이야기로 그 답을 얻었겠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는 글과 그림을 따로 읽어내야 하는 그림책이다.
이야기는 한 편의 시다. 그렇기에 시를 읽듯 천천히 읊조려야 한다.
작가는 옛날 시님들은 이라고 하며 매번 새 연을 시작한다.
4행으로 하나의 연을 이루며 '~요, ~고'라는 각운도 맞춘다.
시를 천천히 읊은 후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 한 장면 한 장면 다시 본다.

표지 느낌은 앞서 말한 대로이다. 그 이후 책의 첫 페이지를 보면 작은 산 속 정경이 담겨 있다.
어스름이 지나가고 이제 막 해가 솟으려고 하는 찰나의 그림. 산 속 절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드디어 해가 솟아 어느새 환해진 세상. 깊은 산 속의 고요함을 뚫고 쟁기질을 시작하는 한 스님의 뒷 모습이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보는 구도로 펼쳐져 있다. 

스님은 오늘 씨앗을 심고 있다.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동자승은 그런 스님을 지켜본다. 
씨앗 심기를 마친 스님은 깨진 바가지를 꿰맨다. 역시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동자승도 그런 스님을 닮은 미소를 띄고 앉아 있다.
그 다음은 글씨 연습이다. 묵판에 한자가 아닌 한글 자음 쓰기 연습을 한다. 스님이 동자승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다.
한글 쓰기 연습을 마친 스님은 바랑(가방)을 메고 나와 땅 위를 기어다니고 있는 개미를 지켜보며 동자승과 이야기를 나눈다.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동자승도 알아 들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역시나 입가의 미소는 여전하다.

스님은 길을 떠나며 계속 발 아래를 가리키며 동자승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 
이제 동자승은 스님과 헤어질 시간이다. 아쉬운 듯 동자승은 스님의 뒷 모습을 바라본다. 스님은 산을 내려간다. 마을 어귀부터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하며 걷는다. 염불 소리에 풀을 뜯던 소도 눈을 스님쪽으로 돌린다.

바람에 날려온 풀씨가 스님 옷에 붙어 있다. 여전히 넉넉한 얼굴의 스님은 단지 그 풀씨를 바라볼 뿐이다.
마을 장에 들른 후 스님은 물고기(잉어로 보인다)를 한 마리 냇가에 풀어준다. 불교 용어로 '방생'을 하는 것이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일을 하던 농부도 소 달구지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스님은 발길을 절로 향한다.
그새 해는 저물고 어두워진 산길을 스님 홀로 걸어간다. 저 멀리 절에서 새어 나오는 풀빛이 보이고, 그 아래 바위 위에 서서 스님이 돌아오기를 동자승이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서있다.

늦은 밤 동자승은 스님의 품에 안겨 편안히 잠이 든다. 조용한 산 속 절간에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만이 그 적막함을 달래줄 뿐이다. 이렇게 스님의 하루 일과가 끝난다.

글과 그림을 따로 읽어야 한다고 해서 둘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서로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로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둘을 따로따로 한 번 더 보아야 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시와 그림을 동시에 보면 그림은 그저 시화에 그치고 만다. 그림이 없는 시만 읽는다면 시적 감흥을 느끼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시 없는 그림만 놓고 보면 그림은 스님의 일과를 담아 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리'에 머물고 만다. 이 둘의 적절한 조화가 이 특별한 그림책을 '서정성'으로 극대화 시켰다.

개인적으로 글(시) 보다는 그림을 더 놓치 샀다. 아무래도 친숙한 작가의 그림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종교적 반감을 줄여주는 작가의 의도된 장치들은 그림을 굳이 읽어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이에 비해 글에 해당하는 시는 사실 진부적이라는 인상을 떨칠 수 없다.

특정 종교 옹호자는 아니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종교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기에 이 특별한 그림책을 종교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저 '그림책'으로만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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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이 이름 석자를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연히 모 방송프로그램을 보게 되었고, 빼어난 말솜씨로 좌중을 홀리는 한 인물을 알게 되었다.
그를 소개하는 자막에 각종문제연구소장이라 되어 있어 먼저 자막을 읽은 남편이 크게 웃었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또 다시 모 프로그램을 스치며 보게 되었다.
뽀글 파마 머리, 작고 뚱뚱한 체형, 동글동글한 얼굴, 하지만 재치넘치는 말솜씨.
단지 재미있는 것이 아닌 말 속에 지식과 정보가 가득했고, 그것을 듣는 이에게 쉽고 편하게 들리도록 하는 재주를 가진 인물에 귀가 먼저 멈춰서더니 눈도 함께 고정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란 자막이 스친다.
각종문제보다 좀 더 부드러운 말로 바꾼모양이다. 다시금 웃음이 난다.

웃음이 난 이유는 간단하다.
이 세상에는 말 그대로 여러 문제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 많은 문제들을 연구하는 곳의 소장이라고 하니 참 머리가 복잡할 듯 하다.
그러고보니 헤어스타일과 아주 잘 어울리는 직함이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그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연구하는지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
그에게는 문화심리학박사라는 직함이 하나 더 있다.
물론 이 말 앞에는 여가문화학이라는 말이 따라 다닌다.
여가문화라...세상에 이런 학문이 있었단 말인가?
이 질문에 이르게 되면 한 인물에 대해 파헤치고 싶어진다.

그렇게 스치며 만난 한 사람, 김정운을 파헤쳐 보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이 책이다.
그의 책.
그의 화려한 입담을 글로 어떻게 풀어놓았을지 더 기대가 되었다.
또한 심리학 박사인 만큼 최근에 개인적으로 심리학에 관심이 많기에 여러가지로 도움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가져 보았다.

제일 먼저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고 외치는 사람을 과연 얼만큼 신뢰할 수 있을까 싶다.
그저 성공이란 유행코드에 맞게 수려한 입담으로 가볍게 책을 집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순간, 대단히 어리석은 기우였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김정운은 그의 학문에 매우 충실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학문적 이론을 바탕으로 그의 주장을 아주 재미나면서도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여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근거부터 제시하고 인간 김정운의 이야기를 곁들어 심리학이란 학문이 그리고 심리학에 뿌리를 둔 여가학에 대해 강한 어조로 말한다. 그렇게 그는 노는 만큼, 성공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야기 중 내가 가장 눈여겨 읽은 부분의 글이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놀이의 주된 기능은 ’카타르시스’다.  즉 부정적인 감정을 정화시켜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준다는 뜻이다. (중략) 부정적인 경험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소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적인 상처로 오래 남기 때문이다.
페이지 :

위 글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어려운 이론을 쉽게 풀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는 말에 저자 스스로도 동의하며, 본인의 강점을 살려 강연은 물론 방송진행과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은 그저 성공하려면 놀아야 된다는 단순 논리를 펴는 것이 아니다.
놀이가 무엇인지, 진정한 놀이는 무엇인지 뿌리부터 파헤쳐 보임으로써 일반 독자는 물론 학문적 이론을 구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그의 주장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사실에 절로 수긍하게 만든다.

분명한 사실은 문화심리학자의 본연의 자세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너무도 재미나게 이야기를 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인간 김정운에서 문화심리학박사 김정운에 이르는 과정도 곁들여 놓았다.
아마도 그의 예가 가장 쉽고 편하게 와닿는 예라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이렇듯 어렵게 풀어가지 않는다. 언제나 쉽고 재미나게 풀어낸다.

인간 김정운에 대해 궁금한 분, 여가학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분, 여러가지문제로 고민이 많은 분, 재미난 심리학 책을 찾는 분 등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