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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충격...매혹...중독"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


[북데일리]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는 ‘섣불리 시작해서는 안 될’ 무서운 독이다.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전작을 읽지 않으면 병이 나고야 마는 ‘중독성’이 있는 데다, 각종 관련 사이트들을 밤새 떠돌게 되는 ‘폐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라사와 나오키를 읽는다. 기꺼이 그 중독성에 빠져들기를 원하고, 폐인이 되기를 자처한다. 결말을 둘러싼 악성루머에 득달같은 리플을 다는, 새로 나온 <몬스터>의 특별판이 소장하고 싶어 밤잠 설치는 당신이라면 이미 ‘우라사와 나오키 폐인’이다.
데즈카 오사무가 일본인들의 정신적 지주라면, 우라사와 나오키는 동시대 현대인들의 ‘친구’다. 정교한 스토리텔링 아래 흐르는 뜨거운 인간애는 독자들의 눈과 심장을 멎게 만든다. <파인애플아미> <야와라!> <해피!> <20세기 소년> <몬스터> <마스터키튼> 만화잡지 점프에 연재중인 <플루토>까지. 작품목록만으로 만화광들을 열광케 하는 우라사와 나오키는 21세기가 연구해야 할 가장 흥미로운 대중 아이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자료는 전무하다 시피 ‘빈곤’하다. 북데일리는 이런 목마름을 충족시키고자 ‘우라사와 나오키 전문가’ 4인을 초청, 특별 대담을 개최했다.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최초의 우라사와 나오키 대담이다. 신작 <플루토>를 펴낸 서울문화사의 편집기자 김동주씨, 만화평론가 박석환씨, 북데일리 시민기자 원호성씨, ‘20세기 소년’ 카페 운영진 유자경씨가 참석해 우라사와 나오키를 논했다. 12월 6일 저녁7시에 진행된 ‘우라사와 나오키’ 특별 대담을 지상중계 한다.

왜, 우라사와 나오키인가

박석환 : 카페 운영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20세기 소년>은 어떤 느낌이었는지요. 저는 73년생인데 이 작품에서 동시대적인 교감이랄까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과학엑스포 같은 설정들이 특히 그렇죠. 저보다 한참 연배가 아래인 것 같은데 그런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유자경 : 사실 나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저희 카페만 봐도 독자층이 무척 다양하거든요. 초등학생, 유치원생도 있어요. 제일 어린 친구가 6살인데 부모님을 통해서 <20세기 소년>을 읽었다고 해요. 정팅까지 들어와서 캐릭터가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데 모두들 충격 받았죠. 초등학생 회원도 많은데 내용을 거의 이해하고 이어요. 존 레넌 노래를 포함해 만화 속에 나오는 올드팝을 다 좋아한다고 해요. 심지어 카페 들어와서 비틀즈 팬이 됐다는 초등학생도 있고. 연령대가 어린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작품 속 시대를 상상하고 공감하는 것 같아요.

김동주 : 어릴 때부터 만화광이었던 저에게 우라사와 나오키는 아주 특별한 존재였어요. 만화적으로는 <해피!>를 가장 좋아하지만 만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해준 건 <몬스터>에요. 대단히 영화적인 작품이었어요. 아주 다른 형식의 코믹스라는 느낌을 받았죠.

원호성 : 우라사와 나오키를 처음 본 건 고등학교 때였어요. <몬스터><마스터키튼>을 처음 봤고 <20세기 소년>에서 완전히 빠졌죠. <20세기 소년>을 보면 2014년으로 넘어가면서 칸나 옆방의 만화가들이 친구한테 참배 하러 가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 컷 하나 하나가 너무나 영화적 인거에요. 만화도 이렇게 영화처럼 컷을 나눌 수 있구나 그런 충격을 받았죠 . 우라사와 나오키의 주인공들은 다른 만화와 다르게 한 번도 안 망가져요.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방식이라 그런 점이 다른 것 같아요. 이런 만화는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가 없죠.

박석환 : 이야기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은 있지만 장르가 만화이기 때문에 그림을 이야기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형화 된 이야기는 규칙적인 운동 같은 거예요. 예를 들어 아빠 없는 아이는 엄마를 지켜야 하니까 싸움을 잘해야 한다는 식이죠. 우라사와 나오키는 이런 동일한 구조를 쓰면서도 콘셉트 자체가 독특한 게 특징 이예요. 기존의 장르 만화가 갖고 있는 율동적 부분들을 살짝 비트는 재미랄까.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제시하고 독자는 그 안에서 ‘스스로’ 답을 찾게 되는데 그 방식이 참 절묘하죠. 이야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서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사실도 경험하는 듯 한 느낌을 받아요. 다만, 너무 소재주의를 좇는 면은 비판받아야 할 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작품 경향의 변화

원호성 :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세계는 크게 <야와라!><해피!>, <20세기 소년><몬스터>, <파인애플 아미><마스터키튼>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파인애플 아미> <마스터키튼>은 역사와 전쟁이야기,<야와라!> <해피!>는 전형적인 트렌디 드라마, 몬스터 이후는 묵시록적인 분위기가 강하죠. 초기작은 캐릭터가 상당히 동글동글한 반면 최근작들은 각이 많이 살아 있어요. 초기작 <파인애플 아미>의 경우 등장인물들의 키가 굉장히 작아요. 그림면에서는 초기작들의 캐릭터가 작다는 게 특징이죠. 영화에서 인물의 심리상태에 따라 컷을 나누는 것처럼 <20세기 소년>부터는 과감한 클로즈업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점인 것 같아요.

박석환 :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은 주로 사회부적응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권력에 집착하는 의사들에게 반기를 드는 <몬스터>의 덴마, <플루토>의 게지히트 형사는 모두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성격적 결함을 갖고 있어요. 특이 한 점은 캐릭터들을 부적응한 상태로 끝까지 내버려둔다는 거예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시킨다거나 그런 게 없어요. 부적응상태에서 시작해 부적응 상태에서 끝나요. 부적응의 상태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런 걸 말하고 싶기 때문이죠. 인물들은 여전히 부적응의 상태로 존재하지만 새로운 세계와 가치관을 성립하게 됩니다. 그런 점은 미디어에서 사회를 부정하는 결말을 내리는 경우가 희박하다는 것과 닮았죠. 만화가 갖는 한계점이라고도 할 수 있고. 특히 만화는 저 연령층이 접하는 문화라 그런 면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아톰>과의 기이한 만남 <플루토>

김동주 : <플루토>는 ‘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의 <아톰> 에피소드 중 ‘지상최대의 로봇’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만든 작품입니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을 읽으면서 만화에 빠졌다고 해요. 스스로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어떤 식으로든 그걸 해결해 보려고 한 것 같아요. 우라사와 나오키가 데즈카 오사무 위원회에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제안했고,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생각에 위원회도 공감해 만들어지게 된 것이 <플루토>죠.

박석환 : <플루토>를 논하려면 아톰에 대해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톰은 핵원자로 만들어진 존재에요. 아톰은 핵 피해를 갖고 있던 일본의 전후세대에게 평화를 위해 핵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를 전해준 작품입니다. 자신들이 패잔병의 나라고, 군대도 없지만 어떤 목적에 의해 핵개발에 참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직언’을 한 작품이죠. 아톰이라는 존재를 통해 일본이 피해망상에 젖어 있을 필다 그런 의도를 드러내고 싶었던 거죠. 아톰은 매우 특별한 추앙의 대상입니다. 데즈카 오사무는 선구자적인 존재가 됐죠. 어떤 사상가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그런 반열에 오른 인물이에요. 일본 전체를 안아주었던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아톰을 우라사와 나오키가 다시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북핵 문제로 고조되어 있는 일본인들에게 <플루토>를 통해 다시 위안을 주려고 한 거죠. 일본인들은 다시 아톰 같은 존재가 나타나길 바래왔으니까요. 핵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존재가 아톰이니까.

유자경 : 일본인들에게 데즈카 오사무의 존재는 정말 대단합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에요. 중학교를 일본에서 다녔는데 겐이치로라는 영어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분이 데즈카 오사무를 정말 좋아했어요. <아톰>부터 시작해서 그의 작품은 모두 외웠죠. 수업시간마다 “너희가 읽어야 할 작품은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 밖에 없어. 그걸 읽으면 인생공부 다 한 거야”라고 말씀 하셨죠. “나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아톰은 일본인들에게 종교다” “아톰을 보면 힘이 생기고 살아 날 용기가 생긴다”는 말까지. 정말 대단한 열성팬이었죠.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데즈카 오사무는 거의 신앙이에요.

박석환 : 데즈카 오사무는 사상가죠. 우라사와 나오키가 그의 작품을 하겠다 그 말은 “나도 이젠 그런 위치에 서보겠다”는 일종의 선언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만화를 넘어선 하나의 철학체계를 만들어보겠다는 뜻이에요. 한편으로 이것을 우려하게 되는 이유는 이야기가 뒤로 가면 갈수록 “우리도 핵을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에요. “무기를 만들 필요가 없어” 라는 말을 하면서 무기가 없음으로서 일어나는 폐해를 그리고 있거든요. 아톰을 통해 말하려는 것은 핵개발의 당위성이에요. 작품으로서만 보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텍스트가 미치는 파급력을 본다면 진지하게 논의 될 부분입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가능성

원호성 : <플루토>를 쓴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소재가 다 떨어졌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충격적인 소재들을 너무 많이 써왔기 때문에 팬으로서는 작가가 스스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를 할 수밖에 없어요. <마스터 키튼><몬스터>로 냉전시대를 그렸는데 계속 그렇게 쓸 수는 없고 <몬스터>와 <20세기 소년>을 읽으면 정말 이보다 더 충격적인 소재가 있을 수 있을 까.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플루토> 후에는 <해피!>나 <야와라!> 같은 작품으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죠.

박석환 :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들은 미스터리 스릴러물로 구별 할 수 있는데 그런 장르적 경향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의 가장 큰 약점은 종수를 많이 갖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걸 늘려가야 하는 것이 숙제이기도 하죠.

김동주 : 우라사와 나오키는 한 작품이 끝나갈 때 쯤 꼭 다른 작품을 동시에 시작해요. 전작의 여운이 남아있을 때 그 안에서 새로운 창작을 하죠.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점점 작품을 내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고 <플루토> 같은 경우는 그 속도가 최고라고 할 정도로 천천히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작품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아요. 미국에 대한 화살을 극명하게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플루토>는 기대가 큰 작품입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우라사와 나오키는 일본 내에서 권당 가격이 1만원을 호가하는 <호화판>이 10만부 이상 팔리는 인기 작가입니다. 한국에서는 마니아 적인 기질이 높은 작가로 알려져 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상당히 대중적인 작가예요. 그에게 거는 가능성은 여전히 큽니다.

박석환 : 전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가 중에서는 최고죠. 그가 안고 있는 숙제도 있지만 여러모로 기대를 하게 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