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전까지는 무슨 느낌의 책일지 전혀 가늠이 안 됐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책은 처음이었으니까. 주인공이 회사를 관둔다는 이야기를 하는 책인가?라는 의문을 가진 채 책을 펼쳐보았다. (어차피 제목과 그로 인한 내 추리는 늘 따로국밥이었으니 내용에 대해 거의 생각을 안 하고 책을 펼쳐봤다는 것이 맞는 말일테지만, 어쨌든.) 

글은 쉽게 금방 금방 읽히기 때문에 굉장히 빠르게 읽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책을 덮고 나니 뭔가 찡한 것이 올라왔다. 마음도 밝아지는 것 같았다. 후련하고 개운한 느낌도 들고. '다행이다.'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문장도 떠올랐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는 말하자면 '치유계' 소설, 혹은 '사이다' 소설이다. 주인공이 치유를 받으면서 그 치유의 느낌이 읽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지니까 치유계 소설, 또한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쏟아내는 주인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으니까 사이다 소설. 

승강장에서 눈을 감은 채 몸을 흔들거려 선로에 떨어질 뻔한 위기도 겪기도 하고, 회사 옥상을 둘러싼 높은 펜스의 바깥으로 나가는 문의 자물쇠가 열려 있기를 바라며 옥상에 올라가 점심을 혼자 먹는 남자가 이 책의 주인공 '아오야마 다카시'다. 회사에 다니는 것이 너무나도 버거워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을 항상 준비하고 있는 남자. '9월 26일'의 이야기가 책의 첫 시작이었는데, 처음부터 아오야마는 회사의 버거움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월급은 제자리걸음.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상사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직원에게는 조금의 서비스도 없으면서 서비스라는 이름의 잔업만이 늘어간다. 토요일 출근은 당연지사. 일요일에 죽은 듯이 자고 있다가 요란한 휴대전화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뜬다. (8쪽)

이번 달은 벌써 2주 동안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이 지경이 되자 잠이 오는지도,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다. 최근 반년 동안 몸 상태는 쭉 최악이다. 녹초가 되어 간신히 집에 도착해도 몇 시간 뒤에 또 회사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싣는다. 그런 현실에 찌부러질 것 같다. (9쪽)

9월 26일의 이야기만 읽어본다면 '이 남자 굉장히 위험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멘탈로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피폐해진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저 얼른 또 일주일이 지나기만을 바란다. 사실 그렇게나 힘이 들면 누군가를 부여잡고 울기라도 하겠건만, 주인공은 그렇게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회사를 그만둔다거나 전문의를 만나 상의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외롭게 고립되어 있는 듯한 주인공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더군다나 위에서 쉬지 않고 내리 누르며 막말을 일삼는 상사는 속된말로 죽빵을 한대 날려 주고 싶을만큼 얄밉기 그지 없었고 말이다.

그런 아오야마에게 야마모토라는 동창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아오야마의 주변을 맴돌면서 '마치 연애하는 것'만큼이나 신경을 써 주고, 같이 밥 먹고,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줬다. 처음에는 굉장히 불편했지만 자꾸 만날수록 둘 사이에는 유대감이 생겼고, 야마모토가 자신의 동창이 아님이 밝혀지고 나서도 둘은 여전히 친구로 지내게 됐다. 그렇게 아오야마는 내 미소는 어떨까. 나도 조금은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게 되었을까. (49쪽) 라든가 월요일 아침에는 죽고 싶어진다, 이런 생각과도 슬슬 졸업해야 한다. (72쪽) 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인 마음의 변화를 맞이하게 됐고 말이다.

사실 한 사람의 마음은 곁에서 자신을 지켜봐주는 한 사람의 따뜻한 온기만으로도 쉽게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쁜 생각을 갖고 있을 때 그러지 않을 수 있도록 신경을 다른데로 돌려주고, 곁에서 쉼없이 체크하며 귀찮아도 함께 있어주려 노력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하지만 소설이니 아오야마에게 시련이 또 다가오고, 예전보다 더 많은 괄시를 받게 되어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아오야마는 다시 죽음을 준비하고 만다. 다행히도, 제목이 스포를 하고 있듯 결국 아오야마는 죽지 않고 사표를 던짐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를 향해 달려간다. 그 와중에 아오야마가 완전히 마음을 고쳐먹고 자신을 굉장히 갈구던 상사에게 사표를 척 내밀면서 이제까지 못했던 말들, 상사가 인격모독까지 하면서 말을 막 내뱉었음에도 참고 넘어갔던 이야기들을 조목조목 해 가면서 자신을 어필하는 부분은 단연 소설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다.

내 인생을 댁이 이러쿵저러쿵 하지 마! 내 인생은 댁을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딴 회사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야. 내 인생은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있는 거라고! 패배자, 패배자. 대체 뭐에 졌다는 거지. 인생의 승패는 남이 결정하는 건가요? 인생은 승패로 나누는 건가요? 그럼 어디부터 승리고 어디부터 패배인데요?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죠. 나는 이 회사에 있어도 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만둡니다. 단지 그 뿐이에요. (197쪽)

아오야마는 자신을 붙잡아준 야마모토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안 후로는 단단하게 변했다. (소설의 가장 큰 반전이라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하면 되는 거 아니냐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비슷한 순위의 팀이라도 전혀 점수를 내지 못한 선수가 팀을 옮기자마자 대활약을 펼치는 경우도 있잖아. 그 팀이 선수에게 잘 맞았기 때문이야. 다르게 말하면 이전 팀이 그 선수와는 맞지 않았던 거지. 사람과 마찬가지로 직장에도 궁합이 있어. 이직하려면 분명 위험도 따르지만, 현재 상황을 바꾸기 어렵다면 이직도 효과 있는 방법이야. (101쪽) 라는 야마모토의 말처럼, 조금이라도 마음 편한 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다. 물론 정직원인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요즘같은 세상에 많이 아깝기는 하지만, 아오야마의 상사와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는 것은 나같아도 사표를 냈을 것 같으니 그의 선택이 백번 옳다고 생각한다.

사회라는 곳은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챙기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나를 잃지 않도록' 좀 더 세심하게 나를 신경써야 하는 곳이다. 싫은 소리를 듣고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탄성이 좋은 성격이라든지, 혹은 그런 소리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수 있는 강한 멘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사회에서 버티기란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사회 생활은 녹록치 않다.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어른들 중 유일한 회사원이었던 성동일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늘 집 앞에 내놓은 하얀 연탄을 발로 차는 행위는 비단 그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씬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회사 생활에서 버티기란 녹록치 않다.

그렇다고 소설 속 주인공처럼 회사를 척 그만 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니던가. 그러니 녹록치 않은 삶에 한 줄기 숨 쉴 공간쯤은 내어 두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마저 마련할 수 없다면 나도 어떡해야 하는지 답은 잘 안 나오지만, 그래도 모두들 숨 쉴 공간이 한 뼘쯤은 존재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그 공간에서 숨 쉬면서 모두들 어딘가로 숨어버린 '진짜 나'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이 바람이 터무니 없다고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