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봄을 맞이하여 그리고 결혼 시즌을 맞이하여,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이적의 '다행이다'라는 가사 중 일부이다. 사실 프러포즈 곡으로도 결혼식 축가(신랑이 불러주는) 로도 많이 불리는 '다행이다'의 가사 내용은 별 게 아니다. 그저 마주 보며 웃고 만지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그런 사소한 것들이 '다행'이라는 내용. 내용은 별 게 없을지 모르지만 소소하면서도 진심이 담겨 있어 여자들에게 참 인기가 많은 곡이다. 그런데 주니어 책을 서평하면서 왜 이적의 노래 가사 이야기를 꺼내나 궁금해 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은비의 특별한 하루>와 이적의 '다행이다'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상관이 있다. 아주 큰 상관이. (너와 나의 연결 고리?ㅋ)

귀여운 그림이 눈을 사로잡는 <은비의 특별한 하루>는 말 그대로 은비네 가족이 하루동안 겪은 신비한 일을 다뤘다.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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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에 옷이 가득 있어도 입을게 없다며 한숨을 쉬는 엄마와 그를 따라하는 딸 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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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있는 반찬이 가득 있는데도 '고기'가 없다며 먹을 반찬이 없다면서 투덜대는 아빠와 또 그를 따라하는 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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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처럼 방 한 가득 장난감이지만 가지고 놀 장난감이 없다면서 장난감을 집어 던지는 은비.

<은비의 특별한 하루>는 이렇게 차례차례 가족들의 모습을 한 장씩 그림과 함께 설명해 나간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했던 말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들이자,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더더더!를 외치는 현재의 우리들을 대변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어른인 내가 봐도 뜨끔한 모습들. 아마도 우리들은 풍족함 속에서 빈곤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아 더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하지만, 정작 손에 넣어도 만족스럽지 않고 또 다른 것으로 눈을 돌려버리는 행동들이 말이다. 가진 것에 소홀한 모습들이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 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책을 자세히 보다보면 이렇게 엄마와 아빠와 은비의 머리 위에 먹구름이 조금씩 커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 먹구름은 은비네 가족들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채 불평을 늘어놓을 때마다 커지는 먹구름이다. (책을 넘기기 전에 이 부분을 아이들에게 꼭 짚어줘야 할 포인트인 것 같다.) 

 

그 먹구름은 점차 자라서 온 집안을 뒤덮어 버렸다. 그리곤 "엄마, 아빠! 집 안에 비가 와요!"라는 은비의 말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비는 그치지 않고 집 안에 물을 차곡차곡 채워나갔고, 패닉에 빠진 엄마와 아빠는 얼른 배로 쓸 수 있는 물건과 옷장에서 두터운 옷들을 꺼내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투덜투덜 투덜투덜. 그러자 이번에는 번개가 치고 더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럴때 의지할 곳은 함께 있는 가족뿐 아니던가. 은비네 가족은 의기투합해 아빠가 꺼내온 볼풀장 위에 올라타 엄마가 꺼내온 두터운 옷을 껴입었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다행'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이 옷들이 있으니 따뜻하구나. 정말 다행이야, 다행."

 

 

많은 옷이 있었음에도 옷타령을 했던 엄마와 여러 반찬들 사이에서 반찬투정을 했던 아빠, 그리고 새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하던 은비까지. 세사람은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어서야 지금까지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의 가치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다행이라는 단어를 자주 내뱉게 되는 것 또한 안정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질수록 나은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음이 다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집은 어떻게 됐을까. 물은 잘 퍼냈을까? 아니면 여전히 물 위에서 생활하고 있을까?

이 동화책의 저자 김미나는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두가 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감사는 진짜 행복이 감춰진 보물 상자의 열쇠'라고 이야기 한다. 운동처럼 자꾸 하면 늘고 더 잘할 수 있게 되니, 엄마 아빠부터 가정에서 모범이 되어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그러면 아이들이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크게 되지 않겠냐고.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한 가지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무심코 짜증을 내거나 한다면 집 안에 비가 내릴 수도 있겠구나. 조그마한 것에 감사하는 것까지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집안에 비가 내려 춥고 심심하게 되기 전에 먹구름을 몰아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동화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감사하는 마음은 별 게 아니다. 그저 내가 오늘 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 아니던가.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인데 불구, 조그마한 일에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을 내는 버릇을 고쳐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뀌면 표정부터 바뀐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은비네의 환상적인 모험을 보면서 감사에 대한 개념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은비의특별한하루, 김미나, 소담주니어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 할 때는 눈이 반짝거린다. 자신이 그만큼 좋아하고 아끼는 것이라서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고 들려주고 싶기도 하다는, '빨리 많은 걸 이야기 해주고 싶어'라는 의미의 눈 반짝임이다. 그렇다고 그 반짝이는 눈을 부담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는 척 할 필요도 없고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듣고만 있는다고 걱정할 필요 또한 없다. 신나게 설명하는 사람의 눈을 맞추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에게는 최고의 리액션일테니까. 나는 <디자이너가 사랑한 백>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많이 전해주고픈 사람'의 눈이 가진 반짝임을 보았다. 이럴 때의 최고의 리액션은 뭐? 그냥 듣는 것. 알지 못하는 이야기에 관한 신선함은 듣고만 있어도 재미가 있는 법이라니까. 

세상엔 많은 백(BAG)이 있다. 종류도 색상도 크기도 브랜드도. 가방이 패션의 일부분으로 생각되며 일명 명품이라 불리는 것들이 유행한 것은 채 몇 년이 되지 않는다. 그 전엔 그저 무언가를 담아 들고 다니는 것, 그 정도가 가방의 정의 정도랄까. 애초에 책 위에 도시락을 놓고 책보자기로 싸서 둘둘 말아다녔을 때도, 모든 학생들이 천편일률적인 예의 그 책가방을 가지고 다녔을 때도 가방은 딱 그 정도였다. 무언가를 휴대하기 위해 담아놓는 공간. 하지만 산업이 발전하면서, 해외의 생활 방식들이 전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일명 명품이라는 것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몸에 걸치고 들고 신고 쓰는 모든 것들이 패션으로 포함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너도나도 명품을 하나씩 가지기 위해 애를 쓰던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심지어 가방 하나가 700만원을 훌쩍 호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명품들을 보면 지레 겁부터 먹게 된다. 월급이 그 정도가 아닌 이상에야 가방에 저 정도의 지출을 하는 것이 말도 안되잖아. 하지만 저자 석정혜는 어렸을 적부터 명품을 가까이 접해왔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명품을 대하는 태도가 나와는 사뭇 달랐다.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가방들은 그녀가 사랑하는 가방들 중 자신에게 오브제가 되었던 것들만을 추려낸 것이라 그런지, 각각의 가방에 얽힌 사연도 제각각이었다.

 

두서 없는 이야기라고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세상 끝에 살고 싶은 섬 하나>라는 이 책은, 어떤 뚜렷한 주제가 있는 이야기들이라기보다는, 그저 있었던 일들을 저자의 입을 통해 듣는 이야기일 뿐이라서 말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나라 '미크로네시아'. 저자는 그 '미크로네시아'라는 작은 섬에서 살면서 있었던 일들을 기록했다. 조용하디 조용한 그 작은 섬에서 일어났던, 많이 밋밋하고 심심하고 평온했던 그런 일들을 말이다.

 

처음 들어보는 나라답게 미크로네시아 추크 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여유롭다. 저자가 표현한 바다의 색깔만큼이나 맑으면서도 신비롭다. 하지만 그러한 섬에 8년째 살고 있으면서 저자는 여전히 이방인의 경계에 서 있다. 선뜻 그들의 일상에 들어가지도 그렇다고 그들과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살지도 않은, 그런 어정쩡한 위치에서 말이다. 그가 섬으로 넘어오게 된 계기는 일 때문이었으나, 지금은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더 어색할 만큼 섬에 익숙한 생활을 하고 있기도 한데, 그는 책의 처음 시작부터 이방인이었다. 한국에서도 미크로네시아에서도.

 

하늘과 바다의 구별이 모호한 것처럼 지난 기억과 오늘의 현실이 혼재돼 시간의 흐름이 모호하다. 네가 죽고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것도 모호하다. (44쪽)

무언가에 속해 있지 않는 삶이라는 것은 일상을 붕 뜬 채 생활하게 만들고, 약간의 불안감도 동반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건 소속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을 곁에 두느냐 아니냐의 차이인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자는 미크로네시아에서 믿고 의지하던 동료를 잃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글 속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마음들은, 어느 곳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는 삶이란 외로움과 그리움을 동반한 아주 쓸쓸한 것이 아닐까 막연히 상상하게 했다.

 

그래도 미크로네시아에는 무뚝뚝하지만 곁을 내주는 베네딕과 안쏘 등의 인물들이 옆에 있었다. 요란스럽게 티를 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위로가 전혀 되지 않는 것도 아닌, 함께 있으면 그저 하루가 지나감에 있어 안도하게 되는 순간들을 겪으면서 말이다. 특히나 베네딕은 책의 이야기들이 진행되어 갈수록 저자에게 나름 깊숙히 관여한다. 그리고 그것은 저자의 마음을 곁에 둘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고, 그로 인해 드디어 저자는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마음을 부여잡고 그것을 곁에 둔 채로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루는 노을을 보면서 슬펐다가 하루는 노을을 보며 기뻤다가. 늘 똑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는 자연 앞에서 홀로 여러가지 감정을 꺼내게 되는 것이 진짜 살아있는 것이지 않을까. 노을이 지는가보다..하며 지나치는 무심한 것을 살아있다고 할 수 없으니까.

 

ㅡ 나 자신을 잊고 살면 제대로 사는 거야?

ㅡ 네 자신을 잊은 후 세상을 통해 다시 너를 찾을 수만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266쪽)

 

베네딕이라는 인물이 진짜로 존재했던 인물인지 아니면 가상의 인물인지 책을 읽어나가면서 굉장히 혼란스러워 지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그가 내뱉었던 이야기들은 분명 저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이야기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마라. 네가 빛을 발하고자 한다면 너만의 빛을 밝히면 된다. 너의 빛이 세상에 의미가 있다면 언젠가는 세상 사람들이 너의 빛에 공명할 거다. 세상은, 우주는, 그렇게 빛을 내는 것이다. (285쪽)

 

결국 이 책은 마음을 곁에 둔 채 그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는 삶이 진정한 최선임을 깨닫는 저자의 글이다. 마음을 곁에 두는 법을 아주 천천히 다시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글이기도 하고 말이다. 위태롭게 경계에 서 있음이 아프기만 할 때 손 내밀어 줄 단 한 사람만 있다면 그것이 살아갈 의미와 구원이 될 수 있음을 저자는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는 듯도 하다. 저자는 경계에서 마음을 찾아 곁에 두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 볼 생각이라며 책을 끝맺었다.

 

힘들게 마음을 곁에 두었다. 이제는 그 마음을 믿고 나아갈 차례다. 똑같이 마음을 곁에 두지 못해 힘든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곁에 둔 선배로서 전하는 이야기들은, 무심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인터파크도서 신간리뷰단을 통해 제공된 도서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끝에살고싶은섬하나, 김도헌, 이병률,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