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저자)
평소 책을 읽고 난 후 아무생각 없이 다음엔 뭘 읽어볼까? 하는 생각만으로 인터넷을 뒤져보곤 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 아~~~~~~ "라는 한탄 말고는 다른 말도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안타까움과 한심함 그리고 밀려오는 한숨뿐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한숨만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안타까움에 한숨한번, 왜 이럴까? 하며 한숨, 뭐 좀 밝은 빛이라도 없나? 하는 한숨, 정말 이럴 수 밖에 없나? 하는 한숨 한숨 한숨...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을 밀쳐내고 진실을 감추려는 사람에게 휘둘려 진실을 보지 않고 오히려 거짓으로만 눈길을 주고 있는 상황에 가슴 한켠에 눌려있는 울분이 계속해서 뿜어져 나와 책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주인공 강인호처럼 담배라도 한대 피울 수 있다면 책을 덮고 한대 피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방이 온통 하얗고 어두운 시야의 음침한 안개가 낀 무진의 날씨처럼 읽는 내내 내 마음도 안개낀 길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진에서 일어난 농아 학교 성폭행 사건은 실로 들추면 들출 수록 그 악마적 경향은 나를 충분히 아연케하였으며, 그네들이 주장하는 주장또한 피해자들을 두번죽이고 나의 분노를 더욱 돋게하였다. 그만큼 이 소설은 독자들의 집중력을 높여주고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이것이 단지 소설이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너무 집중해서 읽는 나머지 책을 두손으로 꼭 쥐어 책이 구겨질 정도였으니 할말이 없다.
진실은 이미 우리 앞에 있는데 정의는 아직 멀리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정능력이 떨어지는 연못을 어떻게 해야하나? 우리 사회가 약자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그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피해자와 가해자가 확실한 상황인데, 피해자만 더 피해를 보고 가해자는 유유히 그들의 삶에 아무영향없이 살아가는 현 실태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뭐 이런 일이 다있나? 하는 생각만이 내 뒷통수를 묵직하게 잡아매고 있는 듯 하다.
책은 독자들에게 진실과 현실 사이에 갈등하는 주인공을 통해 질문하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이 강인호라면, 서유진이라면 이라는 말을 작가가 끊임없이 하고 있는 듯 하다. 어린 피해자인 농아들을 버리고 강인호처럼 현실을 위해 뒤돌아서 돌아왔겠는가? 아니면 서유진처럼 자신의 정의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밝은 미래를 위해 그 자리에 피켓을 들고 서있겠는가? 당신의 선택은 어떠했을 것인가? 참 어려운 선택이다.
나 자신이 살아오면서 이런 불의와 정의 사이를 오갔던 갈등과 정의와 현실을 오가는 갈등을 얼마나 했을까? 그리고 그 갈등에서 승리자는 항상 누구였던가? 돌이켜보면 대충 타협하고 살아온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만큼은 결말이 타협하지 말기를... 제발 이 책에서만큼은 현실처럼 불의가 덮어지고 가진자들의 횡포에 휘둘리지 말기를 기원하고 바랐지만, 여지없이 현실적인 이야기에 안타까움만 쌓였지만, 마지막 그 농아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었다.
작중에 현실과 타협할 수 밖에 없었던 검사와 판사와 형사, 변호사들의 입장에서도 몇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데... 작중 서유진의 말처럼 뭐 크게 잘못된 것도 없는데 형사는 수사를 조금 늦게한 것이고 검사는 자신의 임기가 얼마 남아있지 않을 뿐이고, 변호사는 판사시절 정의를 위해 애써왔던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라 돈이 없어 자신의 은퇴를 위해 딱한번 전관예우라는 것을 이용할 뿐이고, 판사또한 나름의 이유가 있을뿐인데, 이런 것들이 모여 왜 이런 결말이 나와야 하는지 또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 사회에 과연 정의는 있는 것인가? 과연 약자들에게 법은 얼마나 공평한가? 말못하고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농아와 재단 이사장의 인권은 과연 동등한가? 새삼 질문하고 싶다.
이 책은 근간 들어서 가장 기억이 많이 남을 좋은 소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너무 안타깝다.
슬프다 현실이... 과연 진실과 정의는 우리사회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내 생각은 비관적이다.비단 이러한 문제말고 미디어에서 나오는 다른 복잡한 문제들을 보면 그리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또 한숨만 나온다.. 후~
28쪽
그 '처리'라는 것 속에 이런 댓가성 뇌물도 포함되는지 아내는 알고 있을까? 긴 복도를 걸으며 그는 과연 이곳이 그가 있을 곳인지를 자신에게 물었다.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다고 젊은 강인호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무진에 아파트를 얻느라 큰돈을 지출했고 여기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것은 '작은 것 다섯 장'을 내는 것만큼이나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늙은 강인호가 중얼거렸다. 성급한 결정이 아니라 외길이었다고, 젊지도 늙지도 않은 강인호가 말했다. 계승할 왕관과 물려받을 영토가 없는 한, 모두들 이렇게 그러려니, 하며 먹고산다고 늙은 강인호가 단정을 지었다.
: 내면의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야 하는 늙은 강인호, 눈꼴이시어 불의를 못참고 발끈하는 젊은 강인호.
131쪽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 나라 아닌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그지 같을 줄은 몰랐어. 우리 많이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것 같아. 교육청, 시청, 다 얽혔어. 무진여고 무진고, 아니면 초등학교 아니면 처조카 아니면 무사모, 아니면 영광제일교회... 인호야, 글쎄 사십억이야, 사십억! 그 인간들이 우리 세금 일년에 사십억 가져다가 그런 짓을 한 거야. 예산 감시하는 시의회에 진정하러 가려고 남자 간사 보냈더니 허탕치고 왔어. 시의원들 몇명이 성폭행으로 성추행으로 입건된 상황이래. 것두 한 놈은 엘리베이터걸을 추행한 혐의야, 엘리베이터 안에서... 너무 코미디 아니니? 우리 여기서 딸 키우고 살아야 하는 거지? 이 발정난 나라에서, 응?"
: 서유진의 날카로운 비판... 발정난 나라... 뭐 극적 구성이지만 .. 나름 동감이 가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165쪽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 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 진실에 대한 저의 소견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가 진실에대해서 얼만큼 공평한가? 스스로 생각해본다.
246쪽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은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의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었다.
이 일련의 사태는 서유진에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자신의 흠집을 가지기 위해 남에게 상처를 주는 부류의 인간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들이 남에게 가하는 폭력은 무차별적이고 잔인했다. 원칙, 도덕, 양심의 소리 같은 것은 이 무진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쓰레기통에서 분리수거되어 변칙, 이득, 그렇고 그런 세상의 이치 등으로 재활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 비단 무진에서의 상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봐야겠다. 가진자들의 횡포, 그들의 진실을 감추려는 몸짓이 가증스럽다. 그들에의해 감춰졌을 수만은 진실들과 이 책의 내용들이 어우러져 가슴에 울분으로 뭉쳐 박동이 빨라지는걸 느낀다.
255쪽
" 제 말을 좀 들어봐요. 서간사는 법정에서 정의 같은 게 건져질 거라고 생각해요? 전관예우가 뭔지 알아요? 황변호사, 서울 강남에 사무실 한 채와 집기 일체를 약속받고 왔어요. 그거 얼마나 거금인 줄 아시잖아요. 그 사람 무진의 수재였고, 바보가 아닌 담에야 저 인간들이 성폭행한 거, 농아들 유린한 거 모를 것 같아요? 천만에! 황변호사도 고민했을 거고, 그 나름의 사회정의를 위해 농아들 몇을 희생시키는 게 이 고장의 발전을 위해, 말하자면 대의를 위해 옳다고 판단했을겁니다. 판사? 그 사람들 서로서로 대학동기, 선후배, 고시동기, 처삼촌, 고등학교 동창의 사돈, 사위의 은사예요. 이번 사건 맡은 검사? 무진에서 임기 육개월 남았어요. 이번 사건 물고늘어지다가 행여 누군가의 심기라도 건드리면 이번에는 서울로 가서 부인과 아이들과 합칠 계획을 망치겠죠. 그 사람들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점수, 점수, 점수, 경쟁, 경쟁, 경쟁 속에서 남을 떨어뜨리고 여기까지 왔어요. 일점 때문에 친구는 낭인이 되고 자신은 판검사가 되었단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정신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아들 몇명때문에 처삼촌과 대학 동창 사돈과 사위의 은사와 장인의 후배와 얼굴을 붉혀가며 그 정의라는 거, 진실이라는 거 되찾아줄 것 같아요? 그 사람들에게 진정 학원 이사장과 장애아의 인권이 같을 줄 알아요?"
:작중 장형사가 하는 대사지만, 현실에서 튀어나온 장형사가 앞에서 말하는 것처럼 너무 현실성있는 말들이다. 가슴속 울분을 부채질하는 말이다.
-중략-
"세상 같은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 현실과 타협하기 싫은 서유진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