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에 가려진 X의 존재

 

X의 살인을 막아라! 정체 모를 인물인 X의 또 다른 살인을 막기 위해 스타일스 저택에 온 푸아로, X의 정체를 알고자 하는 헤이스팅스, 그리고 살인을 계속하고자 하는 X. 이 셋의 사투가 책의 주요 스토리를 구성한다. 『커튼』(공보경 옮김, 황금가지, 2004)의 저자는 애거서 크리스티이다. 추리소설을 웬만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작가이고, 추리 소설에 큰 취미가 없더라도 대부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래서 오히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식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요즘엔 워낙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추리소설 작가가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스타일이 어떠하든지 추리소설의 꽃은 내용의 흥미성, 즉 반전적 결말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끝을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추리소설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커튼’은 이러한 추리소설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는 책이다.

‘커튼’에서 결말의 끈을 쥐고 있는 인물은 당연히 의문의 존재 X이다. 이 책의 주요 반전은 X라는 인물의 정체뿐 아니라 바로 X의 살인 도구에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도구라고는 보통 망치, 칼, 총 등이다. 하지만 X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도구를 이용해 살인을 주도한다. 이 도구는 단연 X의 사악함과 잔인함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X가 사용하는 이 도구는 그 어느 살인 도구보다도 더욱 우리의 허를 찌르는 것이며, 사악한 방법이라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애거서 크리스티가 인간의 심리적 본질을 잘 파악하여 그 내용을 소설에 녹여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X를 막기 위해 푸아로는 결국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 부분이 ‘커튼’의 가장 큰 반전을 담당하고 있다.

이 책에서 또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스타일스 저택의 어두운 분위기이다. 책을 읽다보면 크리스티가 살인이 일어나는 우울한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두운, 무언지 모를 미묘한 이 책의 분위기는 책을 읽는 동안에 오래된 집에서 나는 듯한 칙칙하고 쾌쾌한 냄새가 느껴지게 한다. 마치 ‘커튼’이 처져 어두컴컴한 방 안에 홀로 있는 느낌처럼 말이다. 이는 ‘커튼’이라는 책의 제목과 잘 부합하는 부분이다. 또한 X의 존재가 누군지 알리지 않은 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 또한 책의 제목과 상응하는 부분이다. X의 존재가 마치 ‘커튼’에 가려져 있어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이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 더 불안함을 느끼게 하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는 스타일스 저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데 책의 뒷부분에 무게를 실고 있다. 추리소설의 특징상 책의 무게중심이 뒤쪽에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반전뿐만 아니라 소설의 주요 내용들이 모두 뒤쪽에 포진되어 있어서 독자들이 약간의 허무함과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챕터에서 푸아로가 헤이스팅스에게 쓰는 편지는 이 책의 모든 줄거리를 요약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부분은 책에서 약간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커튼’은 독창적이거나 새로운 스타일로 독자들을 유혹하는 부류는 아니다. 그러나 고전적이고 기본적인 방식으로 담담하게 그 스토리를 펼쳐나감으로써 추리소설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추리소설을 이제 막 읽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새로운 방식의 추리소설에서 고전적 스타일로 다시 돌아가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