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거나 또라이거나

 

20대의 청춘자서전

 

 책을 보자마자 왠지 모르게 격하게 공감할것 같은 무언의 느낌을 받았다.우선 제목부터가 신선했다. 역시 아무렇게나 제목을 붙일것 같지않은 20대 청춘다운 발상이었다. 제목답게 32명의 발랄하고 기발한 청춘들의 이야기가 한가득 실려있어 책장을 넘길때마다 열정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었다. 20대, 피어오르고 있는 꽃봉오리라고 표현할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기다. 그 무엇을 해도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용납되는 시기, 설사 실수를 하더라도 "그 나이니까 할 수 있는거 아냐?"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나이. 정말 하고싶은 일이기 때문에 비록 무모해보일지더라도 부딪혀 볼 수 있는 용기.그게 바로 20대였다.

 특히, 대학생시기는 비록 돈은 없지만 시간은 넘쳐흐르는 황금시기이다. 즉,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이왕 하는거 제대로 해보자라는 굳은 결심이 필요하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안일한 태도는 남들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고만고만한 삶에서 머무를 뿐이다.
 이 책은 단순히 스펙을 마구잡이식으로 쌓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방향을 따라 스토리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청춘의 본분이라고 말한다. 책을 펴낸 '대학내일 20대연구소'는 그 어떤 매체보다 20대시절을 깊이 연구하는 곳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준다.그들의 이야기에 때로는 공감하기도 하며, 신선한 발상에 강한 자극을 느끼기도 했다. 서른 두 명, 어느 누구 하나 동일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명확했고, 마치 상아탑을 쌓아올리듯 차곡차곡 자기 일에 매진했다. 남이보면 정말이지 덕후거나 또라이라 불릴정도로.

 총 4장에 걸친 그들의 인생 파노라마를 넘기다보면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것 같다. 제 1장. 결핍을 넘어서는 혁명같은 일들, 제 2장. 소중한 어릴 적 꿈을 따라서, 제 3장. 일상으로부터의 패기 넘치는 탈출, 제 4장. 우연한 기회를 필연으로. 마지막으로 책장을 넘기면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실천'이었다. 막연한 발상은 곧 하나의 프로젝트가 되었고, 그들이 실현하고 있는 꿈이 되었다. 단순히 꿈을 그린 게 아니라, 직접 도화지에 펼쳐놓고 색을 칠했기 때문에 더 빛날 수 있었다.  20대 청춘이 들려주는 열정 가득한 이야기, 그들의 용기와 패기를 이 책을 통해 직접 느껴보는건 어떨까.

덕후거나또라이거나, 대학내일

소년은 늙지 않는다

 

기발한 9개의 단편소설모음집

 

 김경욱의 열 세 번째 책, 그러나 그는 열세번째 ‘첫’ 책이라 일컫는다. 그만큼 매번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게 소설의 본질이다. 이 책에는 무려 9개의 소설이 각기 다른 개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경욱의 필체는 기발하고 유머가 가득하다. 때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소설을 보며 상상력의 지평을 넓힐수도 있다. 더군다나, 9개의 소설 속 주인공은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 이런 종류의 인간이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로 괴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소설에 펼쳐지는 사회는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어나지 못할 법 한 상황도 아닌지라 더 섬뜩하다. 이를테면, ‘인생의 아름다워’ 챕터에는 자살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자살 면허를 취득한 사람만이 자살할 수 있다. ‘지구공정’ 에서는 지구를 방사능에 오염되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별로 그린다. 미래 공상과학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라도 치부해버리기에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래서 가상의 현실과 말도 안되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번 소설에서 김경욱 작가가 보여줄 독특한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1장- 스프레이, 옆집 고양이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친 그는 어느 날 택배소포를 가로채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실수라고 여기기엔 다분히 고의적인 그의 행동과 강박적 심리가 결국엔 불운을 가져온다. 2장- 개의 맛, 나라를 찾는데 모든 것을 바쳤던 그 시절을 자랑삼아 말하는 이들의 어르신 찾기 여정. 3장- 빅브라더,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는 형을 묘사하는 동생의 서사시. 4장- 소년은 늙지 않는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빙하기를 배경으로 한 환상속에 갇힌 소년이야기. 5장- 인생은 아름다워, 자살면허가 있어야 시도라도 할 수 있는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를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 6장- 승강기, 어느날 승강기 교체비 항목을 발견한 주인공이 균형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승강기를 타게되는 해프닝. 7장- 아홉 번째 아이, 실종된 아이와 김 상사 그리고 경찰의 수사일지, 8장- 염소의 주사위, 주인공의 동생이 염소에게 죽은 후, 복수를 감행하지만 법은 결국 억울함을 더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인간의 유한함 앞에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 외치는 쓴소리. 9장- 지구공정,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를 멀리서 지켜보는 상상 소설. 어느 것 하나 비슷한 소재가 없어서 읽는 내내 다음 단편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새 세상을 다양한 각도로 보고있는 저자의 시선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캐릭터에 몰입하게 된다.

 

소년은늙지않는다, 김경욱

런던의 안식월

 

런던에서 느껴지는 향수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무엇보다 제목과 표지가 참 마음에 들었다. 런던과 안식월이라는 조합은 맨 처음 편안함을 가져다 주었고, 파랑색으로 중앙에 그려진 향수병은 런던에서의 끌림을 뜻하는 것 같았다. 향수의 향에 매혹되듯이 호기심을 안고 첫 장을 열었다. 런던은 지난 겨울, 유럽 배낭여행으로 다녀온 첫 도시이기도 하다. 우중충한 날씨에 때로는 비가오지만, 그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쿨하게 우산없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왠지모를 신선함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꼈던 곳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알고있는 추억의 장소가 나와 괜히 반가웠다.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 옥스퍼드 역. 주인공이 가는 장소마다 지나가버린 런던에서의 추억이 새롭게 피어올랐다.

 

런던을 떠올리면, 그 때 나만이 가지고있는 추억을 떠올리듯이 주인공 유진에게도 런던은 잊지못할 장소이다. 사랑하는 연인, 인혜와 3년간 유학생 시절을 보낸 곳이기에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그런 그가 안식월을 내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나기 위한 이별 여행으로 런던에 오지만 결국 그는 인혜를 다시 보진 못한다. 유진이 친구 데런에게 인혜와의 추억을 이야이야기할 때마다 짐짓 그들의 관계를 추측할 뿐이다. 인혜는 유학생시절 유진과 사랑하는 관계였지만, 지금은 유부녀이다. 다시 만난다면, 명실공히 불륜관계가 될 수 있는 그런 사이. 그래서 마지막 장을 읽는 내내 인혜가 유진과 다시 재회할 수 있을지 조바심이 났다.

 

 유진의 친구, 데런은 게이이다. 그리고 데런의 친구 첸도 게이이자 티베트 인권 운동가이다. 게이와 티베트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가 이 소설의 한 부분을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한 여자를 그리는 사랑소설이라고만 보기에는 어려웠다. 수면위로 떠올라야 하지만, 애써 무시하고자 덮어버린 무거운 주제들이 소설에 나와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소설에는 ‘향수’가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유진이 인헤를 위해 페티그레인 향을 선물하고, 이 향을 맡을때마다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데런은 향수사업을 새롭게 시작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유진과 데런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첫 향수에 들어간 나쁜 향이 무엇인지 안 궁금해?“ "알고 싶지 않아. 그것이 무엇이든 아무도 모를테고 모르는게 좋을 테니까. 보도 자료에도 없고 노트에도 안 나오는 미지의 향으로 남겨 주자고. 어차피 세상 사람들은 베이스, 미들, 톱 노트조차 구분 못하는걸. 그저 뿌리고 기분 좋아지면 되는거. 그게 좋은 향수 아니겠어.”

사랑, 추억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묘한 단어가 페티그레인 향수에 잘 녹아든 것 같은 소설이었다. 문득 페티그레인 향수가 어떤 향일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음 날, 나도 모르게 향수 가게를 찾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