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해마다 찾게되는 세계문학상 수상작품은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당연히 올해의 대상작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생소한 작가에 생소한 제목이어서 다른 어느때보다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번이 첫 소설인데 세계문학상을, 그것도 대상을 수상했다. 이전에 꾸준히 글을 써온 작가도 아닌듯했다. 캐나다에서 살고있는 교포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자전소설을 썼고 그 책이 이제 내 손에도 쥐어졌다. 작가 박완서님이 생각나는 시작이다.
소설을 알게된 시작은 이렇게 새롭기 그지없는데 내용은 그리 상큼하지가 못했다. 줄거리를 보면서부터 무거움을 느꼈다. 피하고 싶은데 그러지 않는게 좋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결혼해서 딸 하나를 두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가정주부인 주인공은 교통사고가 난 후 아픈 몸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의 오랜 상처를 되돌아보게 된다. 아주 어려서부터 겪었던일, 그 안에서 느낀 슬픔과 상처등을 덮어두었다가 다시 들추어내 마주하는 것이다. 무척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너무도 아픈 일이다.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것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일이 무척 섬세한 감성과 문장으로 진행된다.
사는곳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낯선듯 하면서도 여자이고 주부이며 한국인이라는 닮은점도 있어 공감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너무 오랜시간동안 진부하게 사용되는 소재인 사랑처럼 가정과 가족,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의 이야기도 닳고 닳았는데도 모두에게 와닿는 것만 같다. 나와 가까운 혹은 비슷한 누군가의 생소한 생활을 엿보다가 주인공이 자신의 자라온 과거를 돌아보는 부분에선 내것이 아닌데도 내것인양 익숙해진다. 술먹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에 매맞는 엄마, 안봐도 뻔한 아이들의 공포.
이제 나도 어느정도는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해왔다. 결혼하지 않았고 당연히 아이도 없지만 분명 10년 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걸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전에 뼈저리게 다른것을 느끼게 됐다. 마냥 절절하고 애틋할것만 같은 가족애가, 피를 나눴다는 사실에서 오는 애정을 넘어 가련한 인간으로서 연민까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의 반대쪽을 정면으로 부딪혔다. 남이아닌 가족이어서 더욱 아프고 사랑한만큼 되돌아오는 배신감이 느껴진다는걸 알았을때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머리로 알고있던것과 직접 체감한것은 간극이 너무 컸다. 그랬기때문에 이 책의 주인공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온전히 같은 이야기가 아니지만 주인공을 위로하고 또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만큼 내게도 읽는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읽기도 힘든데 쓰기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이 안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조금 개운하기도 하다. 나아지기 위한, 살아가기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로야는 페르시아어로 꿈, 이상 등을 뜻하는 말이라 한다. 주인공부부는 딸에게 그 단어를 이름으로 주었다. 희망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결코 그런 이름을 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