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을 접할때마다 내가 중국에 대해 정말 아는게 없구나 실감하게된다. 책을 쓴 러자라는 사람은 중국의 예능방송에도 나오며 많은 인기를 얻은 사람이라고 한다. 방송일로 우리나라에도 왔었다는데 내겐 그저 처음보는 사람이다. 작가 소개가 적혀있는 곳에 보면 여러영역에서 무후무한 명예와 성공을 거두었다고 쓰여있다. 방송인인가 싶었는데 보니 시작은 강연하고 책을 쓰는 것이었다. 색채심리학의 창시자로 스타강사라고 하는데 능력은 몰라도 끼 하나만큼은 정말 남부럽지 않은 사람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이 책을 자아성찰을 도와주는 책으로 이해했고 그런 내용을 기대했다. 제목도 딱 그런 느낌을 주고 있지 않나. 표지에 실린 저자의 민머리도 스님을 연상하게해서 그런 기대감을 더욱 높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서문을 보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고 했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으로서의 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먼저 자신의 경험과 살아온 지난날을 통해 어떻게 단단해지고 자신을 찾아갔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신이 먼저 몸소 보여주지 않으면 남들도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며 말이다. 이것을 보면 분명 의도는 내 기대와 맞는듯하다. 차례를 봐도 그랬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와는 어긋났다고 해야겠다. 내가 너무도 점잖고 삶에 통달한듯한 사람의 간결하고 묵직한 말들을 예상하고 있었던걸까. 스타강사라면 그의 말과 지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고 유용했다는 뜻일텐데 심하게 솔직한 그의 경험담과 생각들은 그렇게 높게 와닿지가 못했다. 그가 강연한다는 색채심리학이 어떤것인지 그 알맹이를 엿볼 기회도 없었다. 그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해온 그의 과거를 봤을 뿐이다. 그를 연예인 혹은 그에 버금가는 인기인으로 바라보고 동경 혹은 호감을 갖고 있었다면 글의 인상이 달라졌을까 잠시 생각해보게 됐다.

  가르침이나 교훈을 얻어가려는 기대로서의 무게감은 충족되지 않았지만 역으로 보면 그래서 볼만한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고 집이 부자여서 든든한 지원을 받은것도 아니며 보란듯이 내세울 학력이나 화려한 인맥이 있었던것도 아니다. 그저 그때그때 자신의 꿈을 찾았고 이를 이루기위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뛰었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행로를 바꾸면서 차근차근 공부하고 행동해 나간 결과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앞뒤 재고 또 생각하느라 행동력이 약한 내겐 그의 왕성한 행동력이 크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실존하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나처럼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크게 보고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책을 읽을 이유가 된다. 그래서 기대와 달라도 싫지 않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참 음험하다. 사후경직이 진행중인 시체를 눈앞에 두고 불쾌하다고만 느낄뿐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 남자가 있다. 그는 무섭게 쏟아지는 비를 보고 반긴다. 비가 모든 흔적을 지워줄 것이다. 그는 시체를 유기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흔적이 남아서는 안된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시체가 잘 옮겨져야하고 발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모든 가능성을 따져보며 신중하게 실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이 또한 심상치가 않다. 시체를 마주하는게 두번째라고 했다. 그래서 떨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자기 자신조차 냉철하게 바라본다.

  그는 현재 잘나가는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이다. 지난 밤의 일을 말끔하게 씻어내버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다는듯이 행동한다. 이 능청스러움을 보면 그가 승률높은 변호사인게 놀랍지는 않다. 다만 그가 잘나가는 변호사인데는 다른 의미도 있다. 어떤 죄이건 그는 집행유예를 받아내는 무적과 같은 능력을 보였다. 때문에 검찰은 당연히 싫어했고 원한도 쌓여갔으며 반대로 죄를 지은 악인들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돈 많은 나쁜놈에게서 비싼 수임료를 받는것으로도 유명했다. 눈부신 능력을 오직 돈을 위해 사용하는것만 같은 이 변호사가 자청해서 국선을 맡았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보니 국선변호사로 일하는것이 어렵고 보람은 있으나 돈은 안된다고 하는 내용이 나왔었다. 쉽게 이해가 됐다. 양심과 진실여부를 떠나 돈이 있으면 누구라도 능력있는 변호사를 선임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변호사를 누구나 구할 수 있는건 아니기때문에 사회제도에 기댈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형편은 쉽게 짐작이 된다. 서럽게도 그런 사람들의 경우 억울할때가 많기도 하다. 장애 아들이 하나 있는 엄마가 남편의 보험금을 노리고 살해했다는 혐의를 썼다.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된 이 사건에 그 악명높은 미코시바가 나섰다. 힘없는 엄마의 돈안되는 국선변호사로 스스로 말이다. 내가봐도 이상하다 못해 실소가 나온다.

  이 이상한 행보와 그가 새벽에 유기한 시체의 발견이후 상황은 각각 진행되면서 초점이 미코시바로 모아진다. 더불어 머리좋은 나쁜놈같은 미코시바의 과거도 펼쳐진다. 그 기억에서 그가 첫번째로 마주한 시체도 등장한다. 현재의 모습도 참 인상적이지만 기억 속 과거의 그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짓을 했다. 하지만 그의 과거를 모를때와 알고 난 후의 그는 다르게 비춰진다. 그 경계에 속죄라는 단어가 있다. 그저 잘못을 빌고 또 비는것으로 그칠것이 아니라 죽을때까지 타인을 구하라는 말을 받아들인 그는 기꺼이 행동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그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법조계로 들어섰다. 가장 바른 길을 수호하지만 동시에 옳지않은 수많은 길을 마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전쟁터안에서 그는 눈물짓지않고 벌벌 떨지도 않고 싸워나가며 속죄의 길을 걸어간다.

  최근 히포크라테스 시리즈로 이름이 나기 시작한 작가의 책이라고해서 더 궁금했다. 줄거리도 흥미로웠지만 읽어보니 전개도 빠른편이고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살아있어 드라마를 보는듯 생동감이 있었다. 조서가 나오고 재판이야기가 나오는것도 재미있었다. 작가가 과거 이쪽 분야에서 일을 했었나 이력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생각할 것을 독자에게 던져주면서도 이야기가 치우치거나 과하지 않았던게 가장 좋았다. 이 작가의 또 다른 책을 보게되면 그땐 좀더 반가워할 수 있을것같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