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있는 문학상의 수상작은 작가가 누구인지, 어떤 내용의 책인지 살피지 않아도 신뢰를 준다. 일본소설의 경우 그런 나오키상이 그렇다. 때문에 어떤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출간되면 과거의 수상이력을 꼭 띠지에 넣기도 한다. 이번에 만난 소설 <달의 영휴>는 작년에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뛰어난 구성과 절제된 문장력이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내게는 제목도 눈길을 끌었기때문에 다른 어느때보다도 이번 수상작에 흥미가 생겼다.

  오사나이는 대학시절 만난 동향 후배와 결혼해 딸을 한명 낳았다. 아내의 강력한 의지로 이름을 루리라고 지었다. 아내는 결코 남편을 귀찮게하는 법이 없어서 오사나이는 작은일에도 시시콜콜 남편에게 묻곤했던 어머니와 비교하며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아내는 가정일과 육아 모든일을 거뜬하게 해냈고 결혼과 출산 및 육아로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한적이 없었다. 오사나이는 모든것이 다 잘 되어간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딸이 일곱살이 된 가을 균열이 생겼다. 아이가 열이 오르며 아팠다. 병원에서는 환절기 감기로 진단했고 아내는 병원의 진단에 신뢰를 갖고 있었다. 열은 내렸다 오르기를 반복했다. 일주일이나 앓고 난 후 딸은 나았고 아내에게 이상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난데없이 봉제인형에 이름을 붙이고 엄마를 다른 사람 쳐다보듯 달라진 눈빛으로 본다. 하지만 오사나이에겐 아내의 걱정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다. 매일같이 붙어있는 엄마가 아이에게서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데 왜 아빠들은 그말을 무시할까. 이해못하면 해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할텐데 하루에 한시간도 아이를 안보면서 대체 뭘안다고 엄마의 감을 귀찮아하는걸까. 읽으면서도 참 답답했다. 그 후에도 아이는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라이터를 알아보고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오래전 노래를 흥얼거려 엄마를 불안하게 하더니 급기야 가출을 감행해 잡혀왔다. 내눈에도 심각한데 아빠라는 오사나이는 끝까지 헤아리지 못했다.

  글의 전체를 놓고보면 오사나이가 겪은 일은 알맹이라고 할 수 없다. 오사나이는 그저 스치는 어느 단계에 등장하는 사람정도이다. 하지만 비교적 시작부분에 등장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아빠의 무심함에 너무 열을 내며 읽어서인지 어디서든 언급은 하고싶었다. 딸의 환생이라는 같은 이름의 아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두시간동안 그는 과거를 곱씹고 또 곱씹으며 겨우 다른 생각을 해본다. 옮긴이는 오사나이의 이런 무력하고 존재감이 옅은 모습이 강렬한 러브스토리와 대조된다고 말했다. 그런 구조로 볼 수 있겠구나 싶어진다. 이런 사람도 나름의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

  달은 우리눈에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한없이 얇게 가늘어지다가 다시 점점 동그랗게 변해간다. 하지만 우리는 다들 안다. 그저 잠시 가려져서 그런 것이고 실상은 언제나 한결같이 지구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이 사실을 놓고보면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몇번이고 다시 태어나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내가 그 감정을 다 공감하지 못할뿐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이런 사랑이야기를 보면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는지 멍해진다. 이 책도 그런 느낌을 선사해주었다. 그래서 다른 세상 이야기로써 즐겁게 읽은것으로 만족한다.

   이 책으로 처음 알았다. 묵자라는 사람이 있었고 묵가라는 학파가 있었다는 것을. 사마천의 사기를 아직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는데 책을 보니 사기 열전편의 끝부분에 묵자에 대한 언급이 간단하게 실려있다고 한다. 군사와 정치에 능했고 절약을 강조했던 사람이라고. 하지만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한것은 묵자의 소소한 위상이 아니라 가려져 있던 묵가의 큰 인기였다. 한비자는 세상의 유명한 학문은 유가와 묵가이다 라고 해다 한다. 수백년에 걸쳐 많은 수의 추종자를 거느린 학파였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몰랐을수가 있을까 얼떨떨했다.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유가나 도가같은 사상은 쉽게 접하지 않는가. 이제껏 어디서도 묵가에 대해 접한적이 없었다는게 좀 충격적이었다.

  아직 논어를 잘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읽었을때 틀리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동양철학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앞섰다. 내게는 오히려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당시에 유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로서 서로 비판해왔던 사상이 있었다니 놀라움 다음으로 호기심이 생겼다. 묵자는 유가의 무엇을 왜 비판했을까. 그 비판의 답으로 그는 무엇을 내세웠을까. 또한 가장 궁금했던 것, 묵가가 이렇게까지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이유도 책을 어서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유가와 묵가는 사람과 세상을 보고 대하는 방식의 근본부터 차이가 있어보였다. 공자님 말씀에서 중심이 되는 단어라면 당연히 인이다. 예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효도와 충심도 무척 중요하다. 그 자체로 보면 나무랄데가 없다. 그런데 묵가는 이 주장의 근본을 다른곳에서 시작한다. 즉 사람에 대한 애정은 같지만 묵자는 그 대상을 모든 사람으로 대폭 넓혔다. 여기에는 핏줄이나 신분고하가 상관없었다. 나를 사랑하듯 타인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데에 귀족과 천민이 다르지 않고 남과 가족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 들으면 거부감 없이 들리지만 이대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별로 없다. 하물며 왕이 있던 신분사회에서 그런 생각이 누구에게나 신선하다 박수받을 수 있었을까. 묵가의 사상은 평등하고 넓은 시선을 바탕으로 한다. 때문에 지배층에게는 달가울 수 없는 소리였다. 하층민의 두터운 사랑과 지지를 받은 묵가가 사라져간 이유이다.

  굳이 어느쪽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지을 필요는 없다. 어느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것은 세상에 별로 없고 그것을 끊임없이 세우고 끌어내려 다시 고쳐세우는것이 사람의 역사였다. 그저 책을 따라가며 묵가와 유가의 공방을 보고있으니 문득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가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논어를 볼때는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그간의 짧은 경험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짜맞추기도 했다. 그런데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묵가의 주장을 들으니 그또한 맞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까지도 크게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칭송받는 유학이 묵가를 알았을때와 몰랐을때 다른 인상으로 다가와 스스로에게 웃음이 났다. 묵자의 소리를 단단히 기억하고 나서 어느때에 다시 한번 논어를 봐야겠다 생각했다.

   어느샌가 내심 기다리게 된 최강왕 시리즈의 4번째 책이다. 사실 나는 동물이나 곤충등에 별로 관심이 없다. 벌레는 특히나 싫어하고 지금도 혼자서는 잠자리나 개구리도 못잡는다. 물론 여름에 흔히 보이는 모기도 그냥 맨손으로는 죽이지 못한다. 어릴땐 곤충의 사진이 크게 확대되거나 자세하게 실려있으면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 단지 책속의 그림이라는걸 알아도 당당히 손대지 못할만큼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동물은 동물원에 가지않으면 쉽게 접하지 못하니까 괜찮았지만 곤충은 동물에 비하면 평소에도 다양하게 보게되는 편이어서 더 싫어했다. 그런 성격으로 보면 이 최강왕 시리즈는 최악이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기다리게 됐다.

  처음 접한 곤충편에 이어 공룡편을 지나 위험생물편이 나왔다. 이전까지는 이름 그대로 가장 강한 녀석을 가려내기위해 시합을 하는 형식이었지만 이번부터는 승패를 가리지 않고 소개만 한다. 뭔가 하나의 즐거움이 사라진 느낌이 들기는 했다. 평소 사람들이 왜그렇게 사소한것 하나에도 내기를 하나 싶을때가 있었는데 조금 이해가 됐다. 나와는 상관없는 승패인데다 어디까지나 가상인데도 재미를 느꼈다니 당혹스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본문을 보기전에 다음편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다음에도 이번책처럼 분류를 해서 소개하는 형식일것같았다.

  아쉬운건 의외로 잠깐이었다. 워낙 다양하고 신기한 생물들이 줄지어서 나오기 때문인데 벌이나 거미, 악어처럼 알고있는 생물의 비중이 생각보다 적었다. 내가 그만큼 많이 모른다는 뜻인걸까. 이 책을 보고있으면 신기하다고 느끼며 알게되는 부분이 꼭 하나 이상씩은 생긴다. 이번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한 내용들이 많았다. 외형에 놀라고 능력에 놀라며 생명체가 어디까지 변해갈 수 있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온갖 독이나 뛰어난 감각 및 신체능력과 비교하면 사람은 얼마나 약한 생물인가. 그런 점에서 사람이 가장 신기한 생물같기도 하다.

  책에 소개된 동물중에 평생을 가도 만나지 못할 것이 많다. 모험같은것을 즐길 마음이 없는 나같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현재 같은 지구에서 살고있어도 다른 차원의 세계에 살고있는 생물인듯 마주하게 되기 때문에 천진난만하게 신기하다며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제목은 위험생물이지만 소개된 동물이 모두 뛰어난 공격력을 자랑하는것은 아님을 알아차리게 됐다. 저마다 가진 뛰어난 점을 공격에 쓰는 생물이 있고 반대로 방어에 쓰는 생물도 있었다. 이런 부분을 생각하니 그림 속 생물의 생존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방식은 다르지만 다들 치열하게 살고있다는 생각이 겨우 들었다. 언젠가 조카와 함께 책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부분도 함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