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상징적이고 내용의 많은 부분을 표현하는 표지이다. 테미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으로 정의, 법칙, 질서, 율법을 관장한다. 흔히 법정앞에서 볼 수 있는데 두 눈을 가리고 한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든 모습을 하고 있다. 저울은 공정한 판단을 의미하고, 칼은 허구와 거짓으로부터 단호하게 사실을 잘라냄을 의미한다고 한다. 시대에 따라 칼이 없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는데 이는 이 여신의 정의가 강압이 아닌 일반적 동의에 기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테미스가 아니라 그녀의 검이다. 허구와 거짓을 가차없이 잘라내는 정의의 검. 무력이 아니라 일반적 동의를 바탕으로 사실을 지켜내는 검. 가장 어려운건 일반적 동의가 아닐까.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일본 작가라면 나카야마 시치리라고 하고싶다. 그의 작품이 재미있다는 입소문도 타고있고 작품의 수도 많아 잊혀지기전에 새로운 책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 이번책은 전에 나왔던 책에 등장했던 형사 와타세를 주인공으로 세운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그의 비교적 형사 새내기 시절을 다루고 있다. 그의 파트너 형사는 범인 잡기로는 소문난 나루미이다. 실력있고 범죄자에 대해 가차없는데다 수사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부부가 살해된 사건에 출동한 나루미와 와타세는 현장에서 발견한 사실을 회의에서 밝히지 않고 단독으로 조사한 끝에 용의자를 추려내는데 성공한다. 증거가 빈약하고 용의자 본인도 범죄를 부인했지만 나루미는 그가 범인이라고 굳게 믿는다. 다른 책에서도 본적이 있는 강압적인 조사가 이어진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압박을 가해 범죄사실을 인정하게 만드는 나루미와 이 과정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동조하지 않을 수 없는 와타세가 그려진다. 결국 용의자는 범인이 되었고 감옥에서 자살한다. 시간이 지나 신입딱지를 뗀 와타세는 최근 발생한 사건에서 5년전의 그 일이 떠오르고 결국 범인에게서 그 일의 진범 또한 자신임을 자백받는다.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충격, 굳이 그 실수를 밝혀내는 와타세가 못마땅한 조직 구성원들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와타세의 무거운 고민이 시작된다.

 

  와타세의 마음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인에게 경찰이나 검사같은 사람들은 동등한 대결이 불가능한 힘과 권력을 가진 대상이 된다. 와타세는 이를 인지하고 인식하기 때문에 그 권력을 휘둘러 죄없는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나라는 불완전한 인간과 내 직업이 가진 힘을 제대로 분리할 수 있기때문에 실책도 무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와타세의 주변 사람들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의 권력을 한몸처럼 받아들이고 있는것 같다.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고 죽었음에도 그 일을 실수라고 말한다. 좀 더 열심히 나쁜사람들을 잡아들이면 된다고 한다. 외부로 알려지는 것이 가져올 피해를 상정하고 와타세에게 민폐끼치지 말라고 한다.

 

  와타세는 그런 조직의 일원이다. 그의 생각과 반응은 지극히 당연하고 일반적이다. 누구라도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에 의해 질타받고 책임을 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싫은 다른 관계자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잘못에 대한 책임은 물론,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지적받는것조차 몹시 싫어한다. 권력과 권위를 항상 휘감고 다니다 그것을 자신이라고 인식하며 살아가는 법조계 사람들은 오죽 하겠는가. 현재 누리고 있는것을 다 내려놓고 질타를 받을 각오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쉽지 않은 일을 타인에게 강요할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와타세를 이해하면서도 그를 막으려는 쪽의 생각도 이해가 됐다. 마음은 손해보기 싫고 비판받기 싫다. 하지만 양심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속삭인다. 테미스의 검은 기꺼이 양심을 따라가야 한다. 그 어떤 마음이라고 해도 양심만큼은 대부분의 사람이 같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일반적 동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신입시절에 이런일을 겪었다니 와타세 형사도 참 힘들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려 24년이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많이 썼을까. 그 고생이 애틋해서 정이 가는 인물이다. 묵직하고 한결같은 사람이라 앞으로가 기대된다.

  마이클 로보텀이 돌아왔다. 작년에 <미안하다고 말해>로 처음 만난 작가인데 그때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작가였다. 이전 출간작들이 재미있다는 입소문도 타고 있었기때문에 처음부터 기대감과 호감을 품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읽은건 고작 한권이었지만 나도 이제 마이클 로보텀이라는 작가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독자중의 한사람이 되었다. 제목을 보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 마이클 로보텀이어서 기뻤다. 이번엔 제목이 다소 이전과 다른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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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아주 충실하게 표현해낸 표지이다. 분명 저 제목의 문장을 내뱉을 사람이 그리 좋지 않을텐데 표지를 보는 우리 모두가 공범인듯한 느낌을 준다. 더불어 지극히 사적인 저런 모습마저 보여지고 있는 저 여자가 걱정스럽고 안됐다는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다른 어느때보다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눈길을 휘어잡는다. 나도 모르게 저 여자의 구슬픈 사연을 제멋대로 상상하게 된다. 동시에 음침하게 여자를 지켜보는 인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도 슬쩍 생겨나는걸 느낀다. 설마 피해자일것같은 여자가 아니라 지켜보는 인간쪽에 집중하게 되는건 아니겠지 중얼거리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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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잘 꾸려나가던 가정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거액의 도박빚을 지고 사라진 후로 마나의 일상은 깨져버렸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건사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다. 가장 큰 문제는 남편의 계좌에 전혀 손을 댈 수 없다는 점이다. 남편이 실종됐지만 법은 기한을 정해두고 그때가 지나야 인정해준다고 한다. 때문에 돈을 꺼내 쓸수도 없고 자동이체를 해지할 수도 없으며 사망신고조차 불가능했다. 집안의 물건을 팔고 자기 몸까지 팔아가며 애쓰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아이들도 엇나가기만 한다. 마나는 남편이 사망했을거라는 증거를 찾으려다 자신의 선물로 준비된 앨범을 발견한다. 그 안에는 그녀가 지나쳐온 인연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부정의 감정들이다. 그러다 이젠 주변에서 사람이 죽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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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자기 감정이 진심이면 그것이 모든 행동을 정당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구석이 있는것 같다. 비판을 못받아들이고 자기반성도 없으며 당연히 변할 생각도 없다. 상대방이 아무리 싫어하고 치를 떨어도 소용없다. 이미 상대는 안중에도 없고 내 감정 내 기분만이 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재가 더 끼어든다. 줄거리를 볼때도 상상하지 못한 전개여서 이야기가 갈수록 혼란스럽고 긴박해진다. 내 안에서 그동안 사건을 해결해온 조 올로클린은 다소 나약하고 온화하다. 이런 일에 끼어든다는게 마냥 신기하고 통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는 이미지의 사람이다. 똑똑하지만 환자인 조에게 괜찮을까 싶지만 이번만큼은 그가 그런 사람이어서 한결 필요하고 어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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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읽은 책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겨우 두권 읽고 비교하는게 민망하기는 하지만 한결 재미있게 읽어 만족감이 컸다. 시리즈의 책이 많지 않아 아쉽지만 잊을때면 지금처럼 한권씩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