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사람을 등장시켜 무척 인간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책이 또 나왔다. 이전 작품들이 나오던 것에 비해 새책 나온 기간이 많이 짧아 또, 벌써 라고 느낀것이다. 하지만 반갑기도 했다. 지금까지 본 책들이 정겹고 사랑스러웠기때문에 그런 글을 또 볼 수 있는게 좋았다. 제목이 슬픈 느낌이어서 조금 놀랐다. 가슴 두근거리고 긴장감이 드는 스릴러나 추리소설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별은 아마도 이 세상과의 작별이 아닐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리해야하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포함될 것이고. 이번엔 눈물 콧물 아주 쏙 빼려나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안타까운데도 아름다운 이야기여서 좋았고 납득이 됐다.
주인공에겐 아들 테드가 있고 손자 노아가 있다. 아내는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아내를 보내고 많이 힘들어했지만 그에겐 아직 노아가 있었다. 자신을 닮아 숫자를 이해하고 우주를 사랑하는 기특한 아이이다. 그는 손자에게 낚시하는 법이나 낯선곳에서 집을 찾아오는 방법등 많은 것을 가르쳤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의 기억 속 세상이 나날이 작아져간다. 그것을 그는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것이 슬프다. 하나도 놓고싶지 않은 소중한 추억들이 사라져간다. 때로 잊은줄도 모르고 잊어버리기도 한다. 더 많은 것을 잃기전에 준비를 해야한다.
나는 아직 가까이에서 기억에 문제가 생긴 사람을 본적이 없다. 하지만 무섭기는 하다. 우리가 치매라고 흔히 부르는 알츠하이머 병은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많은 슬픔을 준다. 하지만 책 속의 삼대는 의연한 모습을 부여주었다. 할아버지의 병을 인정하기. 아직 어린 노아가 할아버지와 대화하는게 무척 보기 좋았다. 노아는 할아버지가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작별을 준비해야 한다는걸 이해한다. 작별이 힘들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할아버지가 힘들어할까 배려하고 위로한다. 서로에게 솔직해질수록 둘은 할아버지와 손자가 아니라 서로를 깊이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같았다.
몸보다 기억이 먼저 하늘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은 점점 허물어져가는 자신의 기억 속 광장에서 죽은 아내와 만나고 아들과의 기억도 떠올린다. 즉 할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이자 가족이야기이다. 평생 쭉 함께 살아온 아내를 위해 정원을 가꾸고 싸우게 만들었던 서로의 차이를 말한다. 그런것 모두가 사랑으로 귀결되는 대화가 나로서는 신기하고 감탄이 나온다. 아내를 만나 얼마나 사랑했는지, 지난날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야기하고 아들과 손자이야기도 한다. 노아가 얼마나 대견하고 똑똑하며 사랑스러운지 아들 테드가 어느새 커버렸고 어려서 못해준게 얼마나 아쉬운지 대화하는데 지극히 평범하고 순탄해서 의식 속 대화라는걸 깜빡 할 정도였다. 그만큼 할아버지가 지난 인생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 것 같았다. 만약 나도 기억을 잃어간다면 똑같을것 같다. 사소했던 기억이 더이상 사소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원래 출간할 계획이 없던 원고라고 한다. 그래서 이전의 두꺼운 소설과는 다르지만 정답고 예쁜 이야기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나도 이 책만큼은 되도록 천천히 읽었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가족이 너무 아파하지 말고 이렇게 작별을 받아들이고 감싸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