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친 살인마가 등장하고 범인을 잡는 천재적인 형사가 등장하는 책이 엄청나게 많다. 약간의 변화만 있을뿐 기본적으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잔인함을 자랑하는건 똑같다. 그래서 이 책이 조금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여기에도 미친놈이 등장하기는 한다. 성이 앤젤이어서 더 우습다. 그의 상대는 아내다. 두사람의 심리전을 보며 따라가는게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겉보기엔 일방적인 싸움같지만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게 형체가 없어서 그런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이 중요한 요소였기때문에 이야기가 성립됐다.
이 책은 주인공 그레이스의 시선을 따라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그녀에겐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 밀리가 있다. 그녀의 부모님은 자녀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 아니었기때문에 마흔 넘어 아이가 생긴걸 알고 얼어붙었다. 그레이스는 필사적으로 매달려 여동생을 낳게 만들었고 약속대로 동생의 양육자가 되었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동생은 엄마같은 언니의 보호아래 잘 커나갔다. 그레이스는 밀리를 위해 대학도 포기하고 직장을 구했고 쉬는날은 동생과 함께했다. 그리고 어느날, 공원에서 잭을 만났다. 남들은 불편해하는 여동생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즐겁게 함께 춤을 춰준 남자이다. 그레이스는 그런 잭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잭은 언뜻 보기에도 모든것이 완벽해 보이는 남자이다. 잘생긴 외모는 사람들이 힐끗거리게 만들었고 행동에는 여유가 있었다. 직업 또한 변호사였고 그는 특히 여성인권을 보호하는 변호사로 유명했다. 남자에게 매맞는 여성들을 위해 변호했고 한번도 재판에서 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밀리에게 맞춰 공원에서 춤을 췄고 그레이스와 사귀기 시작하더니 결혼까지 했다. 누가봐도 부족함이 없는 그는 그레이스에게 밀리와 함께 살 거라는 말을 함으로써 청혼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의 변신은 결혼식날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니, 가식을 벗기 시작했다고 해야겠다.
밀리를 원하지 않았던 부모 대신 엄마처럼 밀리를 키운 그레이스에게 잭의 손길은 구원과도 같다. 밀리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동생이 가끔 버겁기도 해서 때로는 동생이 남들과 같이 평범한 아이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잭을 만나고 결혼하면서 인생이 바뀔거라는 기대에 부푼다. 모든면에서 믿을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동반자가 생긴 것이다. 밀리까지 껴안아주는 남자가 생겼다. 하지만 그레이스의 기대는 결혼과 함께 신속하게 깨진다. 잭은 여성의 공포를 즐기고 사랑하는 괴물이었다. 그는 밀리를 원했다. 밀리가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집으로 오기전에 잭에게서 벗어나야한다. 밀리를 이런 괴물의 손에 둘 수 없다.
철저하게 겉과 속이 다른 이중생활, 가두려는 잭과 탈출하려는 그레이스의 심리전이 피를 튀기지 않고도 긴장감있게 진행됐다. 세상에 저런 미친 인간이 있다는것이 같은 여자로서 보면 참 화가난다. 결말이 다소 허술하게 느껴져서 약간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아쉬움과 동시에 뜻밖의 지원군이 드러난게 괜히 기쁘기도 했다. 너무 안좋았던 상황이어서 서로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자매애가 한결 애틋하게 느껴졌다. 자매가 없는 내겐 이야기와는 별개로 부럽게 다가왔다. 이 더운 날에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해준 기특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