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샌가 피로풀기도 쉽지않은 나이가 됐다. 마음만은 그러길 원하지 않는데 자꾸만 비교를 하게된다. 앞자리 숫자가 다르던 나이였던 과거의 나 자신과. 그때는 지금보다 더 잘먹고 소화도 잘됐고 하루쯤은 잠을 안자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괜찮다. 하루라도 잠을 안자거나 적게 자면 그 여파가 며칠이고 계속된다. 이제까진 나이탓을 했다. 나이가 먹으니까, 나도 늙어가니까 어쩔 수 없는것인가보다 했다. 쉽게 쌓이고 잘 풀리지 않는 피곤함이 손쉽게 노화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책이 눈길을 끌었다. 왜 아무리 쉬어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 걸까. 이 문장이 갈수록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만큼 책의 제목도 솔깃하다. 흥미로운건 그 원인을 뇌에서 찾고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피곤함을 몸의 문제로만 생각했지 뇌의 문제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일본인 저자는 현재 미국에서 멘탈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예일대 의과대학에서 뇌과학을 연구했고 지금도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끊임없이 뇌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데 특히 그는 현대인의 피로가 뇌의 공회전때문이라는 이론에 주목했다.

 

  용어가 참신하다고 할까. 기계도 아닌 뇌가 공회전을 한다니 표현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는 깨어있는 시간의 30~50% 가량을 멍한 상태로 보내고 그동안 과거의 경험이나 상상, 무언가에 대한 생각등을 한다. 이 상태일때 뇌의 전전두엽과 후방대상피질이 활성화되는데 이 부위를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창의력과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에너지를 과하게 낭비한다는 단점이 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피곤해지는 결과를 불러온다. 이를 뇌의 공회전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않고 멍때리는 시간 동안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것이 너무 과해져 항상 피곤한 상태가 된다니 좀 놀라웠다.

 

  과도한 뇌의 공회전 상태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세운게 마인드풀니스이다. 뭔가 봤더니 전부터 보아온 명상이다. 마음챙김이라는 용어로도 접했던 것이다. 방법이 몇가지 있지만 핵심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고 알아차리기이다. 걸음을 걸을때도, 밥을 먹을때에도 지금 하고 있는 행위 자체에 세세하게 집중해서 수시로 몰려드는 잡다한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명상책과 다른점이라면 이런 방법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으며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소개한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와서 읽기에 지루하지도 않았다는게 좋았다.

 

  새삼 뇌가 얼마나 중요하고 절대적인 장기인지를 느꼈다. 뇌가 과하게 에너지 소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몸이 그렇게 피곤에 시달리고 생활의 질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니. 그런데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몸의 문제로만 여긴다니 허탈한 느낌이기도 했다. 꾸준한 명상이 뇌의 구조를 바꾼다는건 언제봐도 참 신기한 일이다. 단기간에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할 이유는 된다고 생각했다. 관심은 있지만 습관으로 자리잡지는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습관이 되도록 노력해봐야겠다.

  작가 제인 하퍼는 첫 소설로 이 책을 썼다. 그 전에 기자로 일한 경력이 있어 글을 어느정도 썼을거라고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첫 소설을 완성했다는건 간단하게 생각할 일은 아닐 것이다. 거기다 그녀는 데뷔소설인 이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출간 전부터 빅토리아 문학상 수상, 영화화 확정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26개국으로 판권이 계약되고 연이어 다수의 문학상에 수상되는등 반응이 뜨거웠다. 이렇게까지 주목받은 책을 처음부터 썼으니 작가로서도 부담스럽겠다 싶지만 독자로서 어떤 책일까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제목만큼이나 무미건조하게 보이는 얼굴을 한 남자의 얼굴에서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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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에런 포크는 뉴스를 통해 친구가 죽었음을 알게 된다. 단순한 사고나 질병이 아니었다. 일가족이 갓난아기를 빼고는 모두 총살로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은 그 집안의 가장이었던 친구 루크가 가족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있었다. 루크의 아버지는 에런에게 장례식에 오라는 편지를 보낸다. 그는 친구의 마지막임을 알면서도 그곳에 가고싶지 않았다. 편지 이전에 루크의 아버지와 한 전화에서도 일을 핑계대며 가지 못한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편지를 받고나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루크는 거짓말을 했어. 너도 거짓말을 했지. 장례식에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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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농사를 짓고 농장을 운영한 아저씨의 서툰 글씨인듯 묘사됐지만 한 줄의 편지는 에런을 움직였고 나를 감탄시켰다. 너무 간결하고 강렬하면서 궁금함을 불러 일으키는 편지가 아닌가. 이것으로 에런이 과거에 루크와 함께 뭔가 거짓말을 했고 그 이유가 된 일이 그리 좋은일이 아니라는걸 짐작할 수 있게됐다. 결국 에런은 도망치듯 벗어났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몇몇 사람들의 눈길을 받으며 한쪽 구석에 자리잡은 에런은 장례식 말미에 등장하는 루크의 사진속에서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걸 보고 놀란다. 그리고 십대 청소년이던 어느날 각자의 여자친구들을 포함해 넷이 함께 찍은 사진까지 공개되는걸 보고 당혹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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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의도로 저 사진을 골랐는지 알 수 없는 에런은 한시라도 빨리 이자리를 벗어나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 엄마가 된 친구를 만나고 이어 루크의 부모님과도 만나게 된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말에 집으로 찾아가고 거기서 그는 루크가족의 비극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에런은 마음이 불편하지만 차마 거절할수도 없어 자신이 할 수 있는만큼만 하겠다고 말하고 사건에 다가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일을 조사하고 다니는 그를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과거 에런의 여자친구였고 사진 속 4명중 한명이었으며 익사한 엘리 디컨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나 더 불쾌해했고 폭력적이었다. 모두가 엘리의 죽음에 에런이 관여되어있다고, 에런이 죽였다고 생각했다. 에런은 그 일과 관련한 기억도 이제와서는 의심스럽다. 그는 사건담당자와 함께 마을 사람들의 위협속에서 루크 가족의 일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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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마을은 어디나 다 비슷한걸까. 아니 그 이전에 사람은 다 똑같다고 해야할까.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에서도 외부와 거의 단절되다시피 한 작은 시골마을의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언행을 보인다. 당연히 학교 교장과 같은 외부인의 눈에는 끔찍하다. 거기다 지금 책 속의 마을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여자아이가 익사할 정도의 강물이 바닥까지 바싹 말라버렸다. 마을 경제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굳이 이런일이 아니어도 어떻게 저런곳에서 살까 하는 생각을 몇번은 했었다. 너무도 안좋은 환경과 거기에 지친 사람들, 자신에게 악의를 가진 이들 속에서 마음의 부담까지 갖고있는 에런은 결국 휴가까지 써가면서 버틴다. 결국 어디서도 알 수 없을것같던 사건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뭔가 주인공에게 묘한 정이 들게하는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를 만날 수 있는 두번째 책이 예정되어 있다는 걸 알고 반가운 마음부터 들었다. 지금은 그저 그 책을 빨리 만나고싶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있는 작가 시즈쿠이 슈스케의 새로운 책 <립맨>은 <범인을 고한다> 2탄이라고 한다. 워낙 반응이 좋았던 작가여서 항상 궁금했는데 작품을 읽게된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능하면 전작이라는 범인을 고한다 먼저 읽고싶은데 여의치가 않았다. 내용상 이책만 읽어도 전혀 지장이 없다는게 참 다행이었다. 드디어 나도 시즈쿠이 슈스케의 책을 한권은 읽어보는구나 싶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두툼한 두께마저도 그저 반가웠다.

 

  제목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표지에 한글로 쓰인 립맨 아래 RIP MAN이라고 쓰여있다. 그 아래엔 범죄 사업이라고도 쓰여있다. 하...... 한숨이 나온다. 참 웃기는 조합이 아닌가. 범죄를 사업으로 여긴다니, 남이 어떻게 되건 상관없이 돈만 뜯어내면 된다는 생각이 너무 훤히 드러난다. 비즈니스라는 그럴듯한 단어아래 죄책감은 깊숙히 가라앉아 버린다. 오히려 이 단어와 만난탓에 크라임이라는 말이 이 사업은 위험하니까 각별히 조심하고 만전을 기해야한다 라는 뉘앙스를 풍기게 됐다. 현실에서도 이미 이런 집단이 있으니 황당한 상상력이라고 할수만은 없지만 대놓고 문자로 쓰인걸 보니 역시 기가 막힌다. 이런 짓을 기획하고 실현시키는 남자 아와노가 있다. 그는 rest in peace 라는 말을 사용해서 립맨으로 불리게 됐다. 이 말이 악당의 입에서 나오니 참 다르게 들린다.

 

  시작은 보이스피싱 사기로 시작한다. 평범한 일생을 보내던 도모키는 학창시절부터 착실하게 공부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겨진 보험금으로 대학공부를 마쳤다. 그는 취업을 해서 착실하게 돈을 벌고 살아가는 앞날을 상상했지만 취업을 확정지었던 회사 미나토당이 내부고발로 유통기한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위험해졌다. 회사는 대대적으로 인원을 감축하고 매장의 규모도 축소했다. 사장이 바뀌었으며 당연히 입사예정이던 사람들을 채용할 수 없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했다. 도모키는 입사취소를 결정했고 직장없이 졸업하는 신세가 됐다. 자신과 다르게 공부에 뜻이 없다며 밖으로 나돌던 동생처럼 밑바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에서 일하던 그에게 동생이 있던 조직의 간부였던 샤모토가 와서 보이스피싱 일을 권유했다.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있었고 그런일은 꿈에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도모키였지만 결국 돈앞에서 마음이 움직이고 말았다. 그는 동생과 함께 철저하게 분업화된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보이스피싱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이 사업은 첫장에 바로 경찰에게 소탕되고 만다. 쩐주로 의심되는 강사 아와노는 샤모토에게 rest in peace 라고 말하고 도모키는 이 말에 불안을 느끼고 동생과 함께 잠시 자리를 비운 덕분에 경찰의 포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바로 돌아온 도모키를 찾아온 아와노는 유괴사업을 하자고 말한다. 이 책에서 아와노는 정체만큼이나 속을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내가 보기에 그만큼이나 도덕관념이나 가치관도 제대로 박혀있지 않는 인간같았다. 유괴를 사업화할 생각을 하다니 어이없지 않나...... 도모키는 역시 범죄에 발을 들이고 싶어하지 않지만 아와노의 노련한 설명과 설득앞에서 흔들린다. 그리고 이번에도 돈이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참 진부하면서도 이해가 되는 씁쓸한 장면이었다.

 

  가볍게 성공한 첫번째 유괴에 이어 두번째 유괴 사건으로 경찰수사가 시작되고 <범인에게 고한다>에서 활약했다던 마키시마 형사가 이 일에 투입된다. 서로의 목적을 위해 경찰측과 범인측, 피해자측의 머리싸움이 볼만했다. 어느쪽으로 눈을 돌려도 긴장감이 흘러서 책이 쑥쑥 넘어간다. 사건이 일단락돼고 립맨과 마키시마의 이야기가 적어도 한번은 더 나올것같아 내심 기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단한 분량은 아니지만 경찰 내부의 권력관계를 그린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작가의 책을 처음만났고 재미있게 읽었기때문에 만족스러웠다. 온갖 지혜를 다한 끝에 잡힐 립맨을 꼭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