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역사를 볼때 지금 누리는 평온한 생활이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님을, 그래서 내가 얼마나 좋은 시기에 태어난 행운아인지를 겨우 깨닫게 된다. 내가 태어난 시기는 그저 잘 먹고 잘 살기위해 온 국민이 치열하게 공부하고 일하는 때였다. 이제는 그 이상을 누리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기록들에서 전쟁이 생각보다 그리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걸 알게된다. 마치 영화 속의 이야기같은 일이 우리 부모님, 조부모님 세대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걸 지금도 실감나지 않아 그저 놀라는 마음으로 본다. 너무 사랑스러운 표지사진을 가진 이 책에도 전쟁이 드러워져있다. 그 시기를 꿋꿋하고 정의롭게 지나온 동물원장 부부의 이야기이다.
처음 책을 받고 후루룩 넘기다가 도중에 눈에 들어오던 부분을 읽은 기억이 오래 남는다. 독일군이 동물원에왔고 안토니나는 그들이 아들을 지목하는걸 본다. 하얗게 질리는 아들에게선 이미 생명력이 빠져나가는것만 같았고 이어지는 총성에 그녀는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독일군은 아이가 들고있던 닭을 쏘았고 재미있어하며 죽은 닭을 들고 떠난다. 기를 쓰고 참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친다. 안토니나는 아들에게 속삭인다. 넌 엄마의 영웅이야. 정말 용감했다, 우리 아들.
제대로 읽기 전에 우연히 본 일부분이지만 나는 이 부분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안토니나의 의문대로 나도 궁금했다. 정말 아이를 쏠 생각이었을까. 아무리 자국민이 아니라고 해도 아이에게 그런 충격을 줄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재미있다는 말을 웃으면서 내뱉을 수 있는걸까. 안토니나는 그 후 아기를 안고있던 자신에게 독일군이 친절하게 앉으라고 권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 권유가 진심이었다면 진정한 악은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악을 악으로 판단하는 과정조차 생략되었던 것은 아닐까.
독일의 공격으로 폴란드는 너무도 손쉽게 무너졌다. 얀 자빈스키와 안토니나 자빈스키 부부는 동물을 매우 사랑했고 동물원을 운영하는 일에 행복을 느꼈다. 사람과 동물이 서로 어울려 좋은 영향을 끼치는 관계를 믿었다. 도심 안에서 동물들에게 저마다의 구역을 정해주고 세심하게 살피며 자신들의 왕국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동물원은 그들의 집이면서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닥친 독일군으로 인해 부부의 보금자리는 파괴됐다. 믿었던 나라는 독일군을 물리치지 못했고 살기위해 피신해야했다. 안토니나가 아직 어린 아들을 데리고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이나 미사일의 공격에서 불안해하는 모습들이 안타까웠다. 맹수들을 자식처럼 아끼고 살피는게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런 동물조차 무참히 죽어간것은 불쌍했다.
독일이 유대인에게 유독 가혹했던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책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에게만 잔인했던것이 아니다. 모두가 피난을 떠날때 동물을 차마 버릴 수 없던 부부는 동물원에 남기로 결정한다. 사람에게 그리도 끔찍했던 독일이 멸종된 동물을 복원하겠다는 원대한 포부아래 동물에게 그리도 헌신적이고 애지중지 했다는게 얼마나 황당한지 모르겠다. 동물원을 운영하는 부부에게 독일군과의 접촉은 불가피했다. 그런데도 그들이 유대인들을 도운 일화는 감동이라는 말로 부족했다. 감추기 위해, 들키지 않기 위해 동물이 있는 곳에 숨기고 부르는것조차 동물을 부르듯 해야하는 그 상황이 무섭지 않았을까. 하지만 안토니나는 그들을 목숨 빼고는 모두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눈부신 인정을 가진 사람이라는걸 절로 느낄 수 있었다. 옳기때문에 무섭고 버거워도 필사적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자빈스키 부부의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이름없는 영웅이었을 수 있었던 이들을 알게되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