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부터 너무 소탈하게 나간다.
이거 너무 파격적인데?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머리를 퍼뜩 스친 생각이었다.
요즘 시대엔 절간의 스님도 밥만 먹고 살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인데
그것도 따스한 밥 한 그릇이 아니라 거친 밥이란다.
책을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이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책을 쓴 이승환 작가는 농민신문사에서 기자로 오랫동안 몸담고 있다.
처음부터 이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책으로 쓴 건 아니고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잡지<전원 생활>
코너 한지면에 <무늬가 있는 삶>이란 코너를 만들어 글을 쓰면서부터였다.
하나둘 글이 모아질 때 동료가 책으로 한번 만들어보라는 권유를 하였지만 처음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가 결국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나는 책을 잡으면 제일 먼저 유심히 보는 부분이 책을 쓴 저자이고
책을 쓴 저자가 어떤 경험과 경력이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고 책의 내용과 저자와의 이력이 관계가 있나 싶어서.
또 하나는 목차를 유심히 본다.
목차를 보면 책이 어떤 내용인지 어느 정도 감이 온다.
책에 따라 발행된 날짜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지만 다만 전문서적이나 기술서적일 경우
발행된 날짜는 무시하지 못한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니 이름 석 자만 봐도 알만한 사람도 있고, 유명인이나 나의 짧은 지식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지나온 삶이 호락호락하진 않아 보인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를 했을 작가도 사람 보는 눈엔 대단한 혜안을 지녔을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이들을 인터뷰어로 선택했으니 말이다.
제일 첫 장 이야기는 지금은 이미 작고한 한국 사진계의 전설 같은 故 최민식 님이다.
그가 쓴 <낮은데로 임하는 사진> 이란 책을 읽고 짧은 리뷰를 블로그에 올린 바도 있지만,
'자갈치 아지매' 하면 떠오르는 사진가가 아마도 최민식 님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그것도 흑백사진으로만 찍어왔던 사진가.
그가 사진가의 길로 들어선 건 우연에서 시작한다.
비를 피하고자 우연히 들어선 책방에서 발견한 미국의 사진가 '스타이켄'의 사진집 <인간가족> 을
보고 그는 적잖은 충격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우연에서 시작하여 운명이 되어버린 사진가의 길.
책 한 권이 그를 최고의 사진가로 만들었던 것이다.
작가와 인터뷰에 동행했던 사진기자에게 술 한잔 따라주며 했던 말이 가슴에 깊이 남는다.
"너무 배가 불러도 안 되고 그렇다고 돈 없이도 안 되고....., 우야 됐던 무거운 카메라 가방
메고 돌아다니는 사진쟁이들은 몸이 재산이니 건강 하나만큼은 단디 챙겨두게."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나 한 번은 보았을 판화 작품.
판화가 이철수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이름처럼 우리들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기영아 놀~자. 철수야 놀~자.
얼굴도 그렇고 지금 그의 직업은 농부인데 모든 것이 이름처럼 참 순수해 보인다.
농사짓는 판화가.
그의 판화 작업은 농한기인 겨울에만 한다고 한다.
농번기인 봄부터 가을은 농사일에만 집중하는 듯 보인다.
두 가지 일을 열심히 하는 요즘 말로 하면 투잡(two job)이다.
그의 작품을 오랜 시간 봐왔던 사람이라면 느꼈을 변화가 있다.
지금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자연과 여러 가지 추상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처음부터 이런 작품을 했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 작품을 보면 민중적이고 투쟁적인 판화 작품을 많이 한 것 같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80년대 격동기였다. 군부정권에 맞서는 항쟁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던
그야말로 투쟁의 시대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작가들은 그 시대에 글이나 예술적 표현으로 항거하였다.
그의 작품이 변화를 맞이한 때는 귀농하고부터였다.
보이는 시각적 풍경이 그의 작품까지 바꾸게 하였던 것일까?
그렇지만 그의 작품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수수하면서 서민적이고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거부감 없는 표현들은 변함이 없다.
주제는 바뀌었지만 시대정신은 살아있는 작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봄이 되면 그는 리어카에 비료포대를 싣고 낑낑거리며 논, 밭으로 향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 나도 한번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
이 詩는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을 것이고 어쩌면 공감도 했을 시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인데. 안도현 시인은 이 시 때문에
재미난 일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연탄재 시인으로 유명인사가 되었고
연탄 관련 행사가 있을 때에는 단골손님으로 초청을 받았다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요즘도 그렇다. 어느 유명 연예인이 방송에서 그 무엇을 유행시키거나 인기를 얻으면 그것과
연관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불러 다니기 일쑤다. 한마디로 뜨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작품 중에 "애기똥풀" 이야기도 재미가 있다.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을 모르고 살았다는.
그러고도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하냐. 이런 내용인데 재미가 있다.
시인 본인을 두고 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가만 생각하니 우리들도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관심이 있었나 싶다.
시골살이 했어도 곡식으로 알고 있는 식물 외 식물들은 모두가 똑같은 그냥 잡초이듯
그 하나하나 이름은 잘 모른다. 골치 아픈 잡초들만 이름을 알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생명력이 질기다 하여 붙여진 이름처럼 보이는 "질경이 "
논농사에 지겹도록 벼 사이에서 자라는 "피 "라는 놈도 있고, 지방 사투리로 붙여진 이름들도 다양하다.
작가도 말했듯이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헷갈리고, 산수유와 생강나무가 구별이 안 가듯
시골 촌놈인 나도 헷갈리는 야생화가 부지기수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들처럼 그놈이 그놈 같다.
이 책에서는 유독 농사짓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다.
풀무원을 만든 故 원경선 씨를 비롯하여 경북 봉화 마을에서 시를 쓰며 농사를 짓던 故 전우익 옹.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유기농 농법을 실천했던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 파란 눈의 서양 사람 한 분이 눈에 뜨인다.
그것도 신부, 주교의 책임을 맡고 있는 두봉 주교.
프랑스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이 막 끝난 시점인 1953년경에 한국으로 왔다.
본명은 R. 뒤퐁. 한국의 어느 신부님께서 "두견새가 우는 봉우리 "라는 뜻에 두봉(杜峰)으로
이름을 지어주셨단다.
두봉 주교는 한국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삶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다.
경북 안동에서 안동 카톨릭교 교구장으로 부임되시면서 당시 군사정권시절이었는데
안동 카톨릭교가 정부에게 탄압을 받아 그들을 사주한 누명으로 추방까지 당할 위기에
놓이기도 하였다.
농사를 지으면서 특히 유기농법으로 환경을 지키는 지킴이도 하고 있다.
경기도 작은 땅에 텃밭을 이구며 신앙인으로서 본임을 충실히 하면서 작은 농민으로 사시다가
다시 경북 의성으로 옮겨 그곳에 계신다고 한다.
안동이 영원한 고향으로 생각하고 한국을 영원한 조국으로 생각하며 한국농업을 걱정하며
신앙인으로서 더불어 살고 있는 두봉 주교. 밀짚모자가 제법 잘 어울리는 파란 눈을 가진
환경수호자 같으시다.
나도 환경에 많은 관심이 있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냥 길에 휴지 버리지 않고, 산과 들에 이유 없이 자연을 해치지 않겠다는
그 마음으로만 함께 한다,
내가 만일 농사를 짓는다면 나는 이런 분들처럼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텃밭만 일군다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취미로 하는 소일거리가 아닌 농사를
업으로 삼는 농업(農業)을 한다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으며, 지금도 몸소 실천하는 농업인도 많아지고 있다.
개인의 경제적 이익 보다 먼 미래 이 땅과 이 강산에서 살아갈 후손의 미래까지 생각하는
그들의 실천적 환경보호주의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가을빛에 일렁이는 벼 이삭이 생각났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그들의 겸허한 마음을 닮아가고 싶다.
거친 밥 한 그릇이 주는 지혜는 기대 이상이다.
자기 맡은 일에 충실하며 자리행(自利行)에서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하는 그것이 바로
거친 밥 한 그릇에 담긴 지혜였다.
책에 소개된 사람들 모두가 그러하다.
水流元在海 , 月落不離天
"물은 흘러도 본디 바다 안이고,
달은 져도 하늘을 떠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