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 & 플레이어’는 크리켓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2차대전 이전의 영국 정상급 크리켓 경기에서는 선수들을 ‘젠틀맨’과 ‘플레이어’로 구분했는데, ‘젠틀맨’은 보수 없이 경기에 참가하는 유한계급의 아마추어 선수를 일컫는 말이고, 플레이어는 보수를 받고 뛰는 직업 선수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드이 이 소설은 체스게임의 말을 빌려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전혀 다른 2가지 유형의 학교가 등장한다. 소위 최고의 사립명문인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와 이에 비해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서니뱅크파크 종합학교” 를 배경으로 명문 사립학교를 동경하는 주인공의 심리적인 방황과 반항하는 행동을 나타내 주고 있다.

영국의 상류층 아이들만 다니는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의 교문앞에는 큼직하게 “무단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위용을 자랑하고 하류층 자녀들에겐 선망과 동경, 질투의 대상이다. 어찌보면 넘을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을 그들은 무너뜨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완벽할 것만 같은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에서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많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러한 사건들을 통해 그들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주요 줄거리

영국 명문 사립학교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의 수위로 일하는 존 스나이드는 줄리아 스나이드 라는 딸이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져 프랑스에서 다른 남자와 부유하게 살고 있다. 줄리아의 아버지는 복권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며, 항상 술에 취해 생활하는 사람이고, 젊은 여자와 동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줄리아는 명문 사립학교와는 전혀 다른 “서니뱅크파크 종합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그런 그녀에게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는 또다른 동경의 대상이면서 한편으로는 증오의 대상이 된다. 줄리아는 자신의 또다른 이름인 “줄리언 핀치백”으로 살아간다. 세인트오즈월드 학생의 교복을 입고, 그 학교에서 종종 생활하는 등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기대하면서..... 그러던 중 그녀는 리언이라는 세인트오즈월드 학생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어긋나간 생활을 이어간다. 소위 세상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생활을 이어간다. 어느날 이 둘은 세인트오즈월드 학교에 무단으로 들어가 사고를 당한다. 학교내 높은 건물에 침입했다가 보안경보가 울리는 바람에 둘은 도망을 치는 과정에서 리언은 추락사 하고 만다. 이 장면을 로이스트레이틀리 선생님이 어렴풋이 보고 있었고 이때 그녀는 리언이 추락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 사고 이후 학교 수위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자살을 하게 된다. 핀치백이 자살한 수위 존 스나이드의 딸이라고 어렴풋이 추측했던 스트레이틀리는 그녀에게 혹시 핀치백을 알고 있는지 묻는다. 그때 그녀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어쩌면 나는 그날 붙잡히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직은 질서가 이곳을 지배하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세인트오즈월드의 신화를 가슴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어서, 무엇보다 오 년을 그림자처럼 살던 내가 마침내 가운데로 나오고 싶어서.

세인트오즈월드와 나의 오랜 싸움에서 늘 킹의 역할을 맡은 사람은 교장이 아니라 스트레이틀리였다. 스트레이틀리라는 킹은 동작은 굼떴지만 강력한 적이었다. 그렇지만 폰도 잘만 하면 킹을 거꾸러뜨릴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킹의 몰락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모순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나는 그의 파멸을 바라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의 존중과 인정을 원했다.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투명인간으로, 낡아서 삐거덕거리는 세인트오즈월드의 유령으로 지내왔기에 마침내 그가 나를 보아주고-알아봐주고-인정해주기를 바랐다. 꼭 승리가 아니더라도, 비기기만 해도 좋았다.“ - 본문 중에서 -

그녀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따라 프랑스로 가게 된다. 프랑스에서 그녀는 변신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다던 친어머니가 동생을 갖게 되고 그녀는 또다시 관심 밖으로 멀어지게 된다. 새 아버지를 모함에 빠뜨려 파멸로 몰고 가고 그녀의 친어머니와 동생도 죽게 된다.

15년이 경과후 그녀는 이제 다시 세인트오즈월드에 “미스 데어”라는 이름을 갖고 교사로 돌아온다. 그녀의 마음속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는 다음과 같이 존재한다.

“세인트오즈월드는 내게 아편 같은 존재였고 나는 세인트오즈월드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밤낮으로 세인트오즈월드를 열망했지만 형편없는 대체물을 발견했을 뿐이다” - 본문 중에서 -

이제 그녀는 어린시절 감히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이곳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을 파멸시키기 위에 자신의 신분을 위조해서 되돌아온 것이다.

“지난 십오 년 동안 내가 배운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살인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 그랬다. 살인은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아무 의미 없고 임의로 넘나들 수 있는 경계일 뿐이었다. 마치 땅 위에 그어놓은 선처럼,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로 향하는 진입로에 보초를 서듯 우뚝 버티고 서 있는 ‘무단출입 금지’ 팻말처럼.” -본문중에서

가을학기가 시작되면서 세인트오즈월드에는 신임 교사 다섯 명이 이 학교에 부임한다. 그녀와 함께 컴퓨터 교사 미크, 지리 교사 이지, 영어 교사 킨, 체육 교사 라이트 가 부임하게 된다. 여기에는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온. 곧 100학기째를 맞이하는 라틴어 교사 로이 스트레이틀리가 있다. 학생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덕망 있는 교사이며, 인간 심리를 제대로 꿰뚫고 있으며 뛰어난 기억력과 통찰력을 지닌 이곳의 실질적인 킹인 것이다. 하지만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그는 심기가 불편하다. 학기 첫날부터 오랫동안 쓰던 자신의 사무실을 독일어학과에 넘겨주게 되고. 자신이 아끼던 만년필을 분실하고, 출석부가 사라지는 등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또 자신의 반 학생인 앤더튼풀릿이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로 땅콩 알레르기로 인해 갑작스레 교실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연이어 세인트오즈월드에서는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 수위가 학생들에게 몰래 담배를 팔아온 사실이 발각되어 기사로 터져 학교가 곤란에 처하게 되고, 동료 교사의 불륜 스캔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 스트레이틀리 선생님반의 학생 나이트가 어느날 실종되는가 하면, 이 학교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수석교사 비숍이 아이들과의 동성애 스캔들로 곤혹을 치른다.

스트레이틀리는 최근 세인트오즈월드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누군가 의도적으로 사건들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곳 "세인트오즈월드를 결국은 파괴하고자 한다" 라고 생각한다.

이젠 그녀는 세인트오즈월드의 심장인 스트레이틀리를 겨냥한다. 그들 무너뜨림으로써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것을 이루는 것으로 여기고 그를 만나 모든 것을 밝힌다. 하지만 그녀는 스트레이틀리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구급대에 그의 위치를 알려 구원해주고 만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세인트오즈월드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녀는 왜 세인트오즈월드를 무너뜨리려 한 것일까 ?

비극적인 행동으로 인해 그 무엇인가를 파괴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며, 단지 자신이 생각하는 그 무엇인가에 우연히 들어와 있는 존재들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녀가 아홉 살때부터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의 수위를 맡고 있던 아버지의 비참함에서 생긴 것은 아닌지 모른다. 수이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아버지는 어찌보면 인간다운 대접보다는 멸시와 동정의 대상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망가져 가는 모습과 그리고 학생들의 멸시를 견뎌야만 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자신이 똑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고 늘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잘못보다는 모든 것을 주변 환경에서 이유를 찾고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다.

“세인트오즈월드가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리언을 죽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세인트오즈월드의 관료주의와 자긍심, 맹목성과 오만이 리언과 아버지를 죽였다. 고래가 플랑크톤을 삼키듯 이무 생각 없이 그들을 삼킨 것이다. 십 오년이 지난 지금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세인트오즈월드가 극복한 위기“ 목록에 나열된 이을들일 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세인트오즈월드는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보상해야 할 것이다.” - 본문중에서 -

최근 세계 각국에서는 학교에서의 무차별적인 공격(총기 난사 사건 등)으로 인해 홍역을 앓고 있다. 그것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보다는 관련 없는 대중을 대상을 상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 내면에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자신이 불합리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피해망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저자 조안 해리스는 자신이 교직생활을 하면서 한번쯤은 생각해본 일들을 모아 이 소설에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저자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현대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이소설은 체스 형식을 빌려 왔다고 한다. ‘킹’은 스트레이틀리를 상징하는 말로, 그리고 ‘폰’은 또다른 주인공을 상징하는 말로 등장하며, 여기서 ‘폰’은 체스에서 가장 약한 말이지만, 체스판을 끝까지 전진한 이후에는 더 강한 말로 바뀔 수 있는 유일한 말이라고 한다. 각 장의 제목을 체스에서 등장하는 말 이름으로 하고, 비숍, 나이트 등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을 체스 말에서 따온 것 역시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글은 조선일보에서 진행한 이벤트를 통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본인이 2012. 3.11일 작성한 리뷰를 옮겨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