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현직 판사 도진기님이 추리소설 중.단편 7편을 담은 “순서의 문제”와 장편 “나를 아는 남자”를 동시에 출간했다. "순서의 문제"는 모범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는 주인공 “진구”를 통해 저자가 직업을 통해 연마한 추리논리를 담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을 중퇴, 그리고 직업은 대리운전, 뚜렷한 목표으식 없이 반은 백수의 생활을 하는 주인공은 어느날 대리운전을 도중 의문의 전화 심부름을 통해 사건을 추론해 나가는 것으로부터 전개된다. 주인공 진구는 성실과는 동떨어진 사람이다. 전문 추리탐정도 아니다. 현대인이 시각으로 보면 우리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평범한 백수라 할 수 있다. 작가 도진기님은 현대인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진구를 통해 어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진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자신의 재능이 뭍혀 버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학창시절에 수학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학생이었으나 집안 사정으로 인해 그 재능이 사장되어 버렸고, 그로 인해 자신의 목표를 잃어 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진구에게도 해미라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생활력이나 모범적인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은근히 끌리는 매력을 발견하고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사건들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와 통상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면에서 현직 법조인으로 있으면서 겪은 경험이나 감각을 글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한다. 전체적으로 소설 전반에 깔려 있는 논리적인 추론은 긴장감을 지속시켜주고 있으며, 결론에 도달하기 직전에 반전을 꾀하고 있어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선하거나 정의로운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 주인공은 선과 악의 중간정도에 위치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범죄를 목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이익이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탐정 선이나 사회정의를 추구하는데 반해 진구는 사건의 진실을 통해 돈을 챙기는 악한 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이기심을 표현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여하튼 진구는 사건을 추론하고 풀어나가는데 동물적인 감각을 보인다.

 

이 글의 단편 중  “순서의 문제”는 대리운전 도중 알게 된 한 사람으로부터 원주에서 전화통화를 대신 해주는 조건으로 50만원의 사례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시작된다. 직감적으로 그 내면에는 사연(사건)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주변 할머니를 통해 의붓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이 죽음이 상속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을 안다. 그의 친어머니는 의붓 아버지에 의해 살해되었고, 의붓 아버지는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내막은 이렇다. 의붓 아버지에 의해 어머니가 죽음을 당했다면 결국 자신은 유산상속을 받지 못하고 만다. 결국 의붓 아버지가 살해(자살)당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는 살아 있어야만 한다. 원주에서 전화를 하도록 한 것은 결국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것을 믿도록 만드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모든 추론을 마친 후 법의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결정을 하게 도니다. 사례금(돈)을 요구하고 사건에 대해 함구해 버린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의붓 아버지 또한 당연한 죽음으로 간주하게 되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 무엇과 타협하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주인공은 법의 정의와는 다른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소설 전반에 깔려 있는 논리적인 전개는 사실 리얼리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주인공 진구는 결코 영웅이 아니며, 오히려 문제아다. 저자는 왜 주인공을 이렇게 설정한 것일까? 대부분의 탐정 추리소설의 형태를 탈피해보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별볼일 없는 사람을 통해 쾌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고 손에 잡은 시간부터 단숨에 결론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것은 연속되는 스릴감과 읽는 동안 내 스스로 탐정이 되어 추론하는 것이 곁들여 졌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나의 상상력까지 더해져 내 추리가 적중한 경우에는 나도 모르게 쾌감을 느꼈다. 저자가 의도한 것도 이것 이었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 거쳐야만 하는 것이 탄생과 죽음이다. 이 중에서 탄생에 비해 죽음은 무엇인가 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뒤돌아 보게 되는 사건이 아닐까 한다. 부모의 죽음을 어떻게 받이 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살아온 사람마다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임에는 틀림 없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 분들에 의해서 였지만 이젠 나의 손으로 그 분들을 떠나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토록 강하게 묶여 있었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정신분석학자인 벨기엘 출신 저자 리디아 플램(Lydia Flem)은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부모님의 유산들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느끼는 감정들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준 사람들, 우리의 창조자들, 우리의 첫 번째 증인들을 땅 속에 묻어야 한다. 그들을 무덤에 누이면서 우리는 자신의 어린시절도 함께 묻는다 - 본문 중에서 -

가족의 죽음은 고통과 슬픔, 분노, 뒤엉킴, 망연자실 같은 감정의 형태로 실체를 들어낸다고 한다. 호시피스 운동가이자 의사인 엘리자베스 큐불러 로스에 따르면 죽음은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쳐 죽음을 받아 들인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힘든 과정일 수 밖에 없다. 양 부모를 모두 떠나 보낸다는 것은 어찌보면 이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던 연결고리가 단절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더 이상 이 세상에 나를 존재하게 해 준 그 무엇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행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아버지를 여의고 2년만에 어머니 마저 잃은 뒤 당신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집을 비우는 행위를 통해 느끼는 감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내 부모로서 존재하게 된 과정을 엿볼 수 있는 편지를 통해 두분의 삶을 이해하는 내용을 이 책에 담고 있다. 일생동안 당신들의 소유로 되어 있던 물건들이 어느날 주인을 잃고 모두 자연스럽게 나에게 남겨진 것들 ........

자신에게 남겨진 그들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그 곳에 담겨 있는 추억도, 의미도 천천히 지워나가는 하나의 통과의례를 경험하게 된다. 『비우기는 마음을 가볍게 한다. 이렇게 고백하면 너무 파렴치한가? 물론 우리는 돌아가신 소중한 부모님을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들볶고,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 우리가 귀찮은 사람이나 악몽을 몰아내듯 그들을 비울 차례가 되었다.

- 본문 중에서 -』

저자는 부모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물건마다 담겨 있는 감정을 더 침울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물건들이나,. 더 유쾌한 물건들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 분들의 글씨를 통해 느끼는 감정은 좀더 애려 온다. 그분들의 글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리움이 되살아나고 목소리는 사라지지만 글씨는 남아 그들의 존재를 느끼도록 해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남겨진 물건들은 그 분들이 살아 있을 때는 필요에 의해 존재했고, 한때는 너무도 소중한 물건이었겠지만 그분들의 존재하지 않는 시점에서는 그 가치가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는지 잠시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그 분들의 물건들을 이젠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해 준다. 자신이 그렇게 할 권리가 있는지 조차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가장 적합한 이들에게 전달해 주는 행위를 통해 그 것은 단순히 물건을 전달해 주는 행위를 넘어 진짜로 전달된 것은 자신감, 안정, 신뢰라고 한다.

그리고 이젠 저자는 그분들의 750여통의 편지를 정리하게 된다. 편지는 타임머신처럼 그들의 과거속으로 슬쩍 들어가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을 느끼고 감동받는 증인이 되에 해 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히고 건강이 악화되는 등 그들의 젊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런 여건속에서도 서로의 사랑을 키워온 그들만의 시간을 담고 있다. 처음 만나게 된 과정과 고난, 희망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낳았다는 사실도 담고 있다. 그들이 주고 받은 편지는 단순히 러브레터를 뛰어 넘어 그들의 역사이면서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마디로 역사의 증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그 분들의 편지를 읽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이 모든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마음이 가벼워 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분들은 이미 오래전에 자식에 대한 서운함, 미움 등을 모두 용서하고 한 없이 그리워만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글로 정리하고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모든 방향에서 기억을 돌이켜 보고, 잊었던 감정들, 감각들을 더시 경험해야 한다. 폭풍이 불어와 우리를 뒤흔들어 놓고, 우리는 예민해 진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을 다시 쓰면서 내 마음대로 바꿔 놓고 싶었다. 내 부모를 변형시키고, 새로운 조합을, 다른 반응을, 다른 성격과 다른 환경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들의 결점을 나 자신의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곳을 무의식은 정원과 같아서 정기적으로 땅을 파 엎어 공기가 통하게 해 주고, 잡초를 뽑아 주고 양분을 더해 줘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작년말에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였다.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그분의 죽음은 지금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으로 남아 있다. 아직은 쉽게 그분을 떨쳐내기가 쉽지가 않는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그 분의 유품들을 정리하면서 느꼈던 후회와 자책 그리고 그리움이 곳곳에서 느껴지고 사무치는 것이었다. 이별을 위한 의식을 치뤘다고는 하지만 그 의식행위가 마음을 편하게 놓아주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포로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는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반드시 겪어야 하는 부모님들과의 이별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한다. 자식으로서 느끼는 것과 이제 혼자 남으신 아버지의 감정을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 분의 고통은 아마 이보다 엄청한 크기로 느껴질 것이리라. 이미 부모님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그 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직 부모님들이 모두 생존해 사람들에게는 그 분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이 글은 다음에서 주과한 이벤트를 통해 펜타그램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