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뿐 아니라 국내에도 많은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는 추리스릴러장르의 신기원을 개척한 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생각거리(사회적 문제나 인간내면의 심리등)를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추리스리럴 소설이 갖추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스펙은 다 장착하고 있지만 왠지 그의 작품을 접하면 단순하게 추리스리럴계열의 작품으로만 한정 짓기에 석연치 않은 점들이 내러티브 전반에 걸쳐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순한 범인 색출을 위한 절차적이고 결과론적인 포멧보다 작품을 끌어가는 힘의 비중을, 지금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한번쯤은 겪어 봤고 한번쯤은 고민했을 만한 이슈들를 표나지 않게 그러면서도 강력한 흡인력으로 내러티브를 끌어 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은 항상 정통적인 추리극의 카타르시스와 더불어 사회적 공감대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됩니다. 캐나다의 유명 여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는 소설가는 "독자가 믿을 만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소설가의 소임" 이라고 즉 작가의 이말은 아마도 독자와 작가 그리고 작품이 삼위일체를 이루었을때 가장 설득력 있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작품이 탄생한다는 의미이겠죠. 이러면에서 본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와 그의 작품들이 딱 여기에 해당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흔히들 추리스릴러작품이 사건해결에 그 포커스가 집중되고 사건과 사건을 해결해 나가가는 과정이 주를 이루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여기에 사회성(좀 막연해지는 표현이네요 아마도 사회 공감성이라고 해야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이 적절하게 믹싱되어 속칭 뻔한 스토리 같기도 하지만 독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매력이 있지 않을까 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번 신간인 <매스커레이드 호텔> 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등단 25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작품입니다. 작가 스스로의 변에서도 말했듯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심혈을 기울여서 집필한 작품으로 현대인들의 겉모습과 실 내면의 이격성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작가는 도쿄 시내에서 발생한 서로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세건의 살인사건과 예고된 살인사건을 축으로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가미함으로써 읽는 재미를 배가 시키고 있죠. 특히 호텔이라는 장소적 배경이 이번 작품의 또 다른 핵심으로 설정됩니다. 일반인들에게 호텔이 가지는 뉘양스는 뭔가 좀 특별한 메타포를 전달하고 있죠. 생의 특별한 행사 그러니까 쉽지는 않은 경험과 더불어 한편에서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 이렇듯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그런 형상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번 작품의 주제로 설정한 '가면'이라는 큰 맥락과 정말 딱 맞아 떨어지는 공간적 배경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고된 살인사건의 장소로 지목된 코르데시아도쿄 호텔과 살인사건을 막고자하는 닛타 고스케 형사를 비롯한 경찰, 그리고 호텔리어로써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지켜야 하는 호텔 종사들간의 반목등이 아우러져 내러티브를 한층 신선하게 끌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독자들의 상상력을 한껏 부추키는 암시와 복선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사건종결자 '닛타 고스케' 라는 인물의 매력등이 부가되어 단숨에 작품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그동안 작가는 다양하면서도 실생활과 밀접한 컨셉을 작품속에 반영해왔습니다. 야구나 스키,보드등의 스포츠와 뇌 과학등의 분야등을 통해서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해 왔듯이 이번 작품은 호텔이라는 다소 한정적인 대상이기도 하지만 실생활과 밀접한 공간을 스토리의 장으로 선택함으로서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이미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가면과 호텔는 일맥상통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의 겉모습과 실모습의 이격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상으로 호텔을 선택하여 호텔을 이용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살인사건과 매칭시켜는 스트럭쳐(닛타형사는 그 가면을 벗겨야만 하고 호텔리어 나오미는 그 가면을 최대한 감싸주어야 하는 이중적인 대립구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나라는 생각입니다)가 이번 작품의 묘미로 보이네요. 여기에 사족이지만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45.648055' 등의 숫자가 독자들의 눈을 자극합니다. 물론 다음 살인사건의 장소를 경도와 위도로 표시한 일종의 GPS부호이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고놈의 숫자에 많은 신경을 쓰이게 하여 정작 핵심을 살짝 돌려놓은 미끼같은 역활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작가의 트릭이겠죠. 뭐 사실 이런 트릭들은 그동안 그의 작품에서 수 도 없이 많이 설정되어 있었고 또한 더 작품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이 주목받는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제3세대 사건 종결자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경의 셜록 홈즈, 애거스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등 가공의 작가 대리인들이 등장하지만 이들 사건 해결사들은 오히려 고유명사화 되어 작가보다 더 독자들의 사람을 한몸에 받아왔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속에도 이들과 맞먹는 인기인들이 등장했죠. 가가 교이치로 형사와 갈릴레오 탐정으로 이름난 유가와 마나부 교수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닙니다. 특히 작가는 그 동안 가가형사와 유가와 교수의 특징을 뚜렷하게 확정지어 더욱 더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별칭 갈릴레오탐정으로 활약한 유가와는 CSI 라스베가스 시리즈의 길 그림썸 반장을 연상케 하는 과학적인 검증과 증거를 기반으로 상당히 과학적인 사고에 의한 추리를 그 주전공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가가의 경우는 이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해결사죠. 전공 자체가 사회학으로 인간과 사회전반에 흐르는 인간관계를 기초로한 그의 추리는 다소 엉성하고 비과학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매우 인간적인 메리트를 가진 해결사로 다가옵니다. 물론 가가 역시 탐정의 기본적인 성향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냉철한 이성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판단력에 한치의 사적인 감정 개입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굉장히 인간다운 캐릭터였습니다.
이번에 등장하는 '닛타 고스케' 는 이전의 가가나 유가와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점이 벌써 무터 많은 독자들로 부터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을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학창시절 미국에서 몇년을 지내면서 터득한 상당한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는 수재로 등장합니다. 출발점 자체가 경시청 1수사과 형사로 같은 경찰출신이지만 가가형사보다 스펙 자체가 앞선다고 할 수 있죠. 여기에 특급호텔의 호텔리어를 빰치는 화법과 마스크 자체로 첫작품 부터 여인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스펙에 맞게 자존심과 공명심 또한 하늘을 찌르고 누가봐도 뛰어난 사건 종결자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까칠한 성격은 단점으로 지적되고 까칠한 성격으로 인해 내부의 경쟁자들이 다수 상존하고 있는것 역시 닛타 고스케라는 인물의 특징중 하나이기 합니다. 하지만 향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끌어갈 주인공으로써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나가는 진화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가가와 유가와의 뒤를 이를 훌륭한 해결사 역활을 하리라 믿어지는 점이 높은거죠. 또한 특이할만한 것은 그동안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가와 유가와라는 독립적인 해결사를 중심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구도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등장하는 지방관할서의 중년의 형사 '노세'의 비중이 여타 작품들 속의 조연보다 상당한 무게감을 던져주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아마도 셜록 홈즈-왓슨 박사 내지는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오브리-머투린 콤비를 염두해 둔 포석이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견해도 가져보게 합니다. 작가의 25년을 기념해서 새로운 캐릭터의 발굴과 구도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번 <매스커레이드 호텔> 은 인간의 양면성(일종의 가면이라고 해야겠죠)과 그 양면성이 발현되는 시점에서 보여주는 추악함 그리고 그 추악함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 및 아주 사소한 동기가 마치 나비효과처럼 예상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우리 인간관계사에 대한 전체적인 고민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양면성을 가지 호텔투숙객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면서 언듯 언듯 범인의 꼬리를 보여주는 듯 하지만(아마 책을 읽는 내내 여러번에 걸쳐 범인의 윤곽을 확신하는 독자들이 많을거라 생각되어 집니다) 상당히 독자들의 시선을 혼란스럽게도 합니다. 다소 엉뚱한 곳에서 진범의 윤곽이 들어나고 결국 이 점 역시 가면을 쓴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작가는 사소한 동기부여까지 곁들여 범행의 정당성(물론 범인의 입장에서지만요)을 독자들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작들과 비교해봐도 내러티브의 짜임새가 결코 떨어지지 않는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사족이지만 번역자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을 번역한 양윤옥님이라 작가의 의도가 더 잘 국내 독자들에게 더 잘전달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여하튼 '닛타 고스케'의 처녀 등장과 향후 그의 눈부신 활약상이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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