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내가 그를 죽였다> 라는 작품은 한마디로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범인의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고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기법, 물론 책 마지막에 봉인된 스포일러에 대단한 힌트를 주는듯 하지만 솔직히 많은 대중 독자들이 이 스포일러를 읽더라도 범인의 실체에 대해서 감을 잡기란 상당히 난해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저 처럼 작품을 술렁술렁 읽어서 중요한 키포인트를 제대로 못보고 스쳐갔던지 아니면 이러한 스트럭쳐 자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형적인 부비트랩인지 양측을 놓고 독자 스스로 망설이게 하네요. 전 개인적으로 작가의 의도된 스트럭쳐라는 생각이 깊게 듭니다. 우선 시작부터 강력한 부비트랩을 설치해 놨습니다. 유명한 작가이자 영화제작자의 죽음과 이와 관련된 인물들의 자기 독백을 통해서 작가는 범죄 선상에 오른 용의자를 3명을 압축시켜 놓고 마치 3명 모두가 스스로 '그를 죽였다' 라고 독자들에게 믿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도 단순한 설정이 아닌 꼼꼼히 짜여진 시나리오에 의해 호다카를 죽일 수 밖에 없는 필연성과 사건발생을 재구성하는 치밀함까지 보여줌으로서 사태를 꼬이게 합니다. 이러니 누구나 긴바야시 다카히로, 스루가 나오유키, 유키자사 가오리를 용의선상에 올리는 것이고 이들 중 범인의 정체를 나름 밝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독자들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맨 처음 당연시 되었던 범인의 독백들이 내러티브를 따라 갈수록 '이게 아닌데 뭐야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것지?' 라는 생각을 갖게 하면서 그야말로 사건의 해결은 오리무중으로 칫닫게 되죠. 이때 바로 우리의 해결사인 가가 교이치로가 등장하면서(이번 작품에서는 가가형사가 상당히 늦게 출현합니다. 이 설정도 나름 히가시노 게이고의 연출인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작중의 용의자 독백과 이를 통해 정보를 얻는 독자들 나름대로 사건을 재구성하게 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다가 가가의 출현으로 사건 맥락을 잡게 하면서 왠지 '왜 이제 왔니?' 라는 극중효과를 배가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건의 내막이 서서히 들어나게 됩니다. 물론 가가형사는 독자들의 간지러운 곳을 의도적으로 시원하게 긁어주질 않습니다. 매번 그랬지만 유독 이번 작품은 더 그렇네요. 그리고 후반부엔 애거서 크리스티나 셜록 홈즈의 컨셉트를 차용한 방식, 일단의 용의자를 한데 모아 극적인 심리상태를 끌어올리는 방식을 동원해서 독자들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는 기법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전반적으로 소거법(消去法)을 통한 사건의 해결에 스텝 바이 스텝으로 다가가는 가가형사의 주특기가 뒤늦게 등장하여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나가는 과정과 용의자들의 독백이 교묘하게 어우러져 한층 추리 효과를 극대화 시킨 작품으로 보입니다.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서서히 내막을 들어내는 각 개인의 애증과 악의 그리고 비밀스러운 관계등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들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바로 이러한 점들이 작품을 한층 더 흥미롭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것 같네요. 여기에 "나미오카 준코씨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어요? 이제 더 이상 좋지도 싫지도 않습니까?" 준코를 짝사랑한 스루가 나오유키에 물어보는 말에서 가가형사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다. 근무중 맥주를 권해도 마다하지 않는 점이나 고양이를 사랑하는 점등 이번 작품에도 어김 없이 따뜻한 인간적인을 보여주고 있어 가가 교이치로의 캐릭터를 다시 한번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용의자들의 독백에 의한 사건의 재구성과 부록으로 첨부된 스포일러등 독특한 스트럭쳐를 가지고 있는 이번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매력에 빠져들게 합니다.

내가그를죽였다, 하가시노게이고, 일본소설, 추리스릴러소설

이번 작품 <거짓말 딱 한개만 더> 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5편의 단편소설을 모든 단편집 형태로 출간 되었습니다. 일본 내 뿐만이 아니라 국내에도 이미 상당한 층의 독자을 확보하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동안의 작품 활동을 통해서 추리스릴러장르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할 만큼 폭넓은 소재와 다양한 사건해결 과정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소재거리로 독자들의 마음을 열었다는 점에서 기존 추리소설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잔상들을 남기는 작가였습니다. 매번 그의 작품을 대할수록 이러한 부분들이 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그의 매력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 같네요.

이번 작품은 그 동안 장편소설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거짓말 딱 한개만더' 를 비롯하여 5편의 단편을 엮어 장편에 부담있는 독자들에게 새롭게 선보이는 실험적인 선집으로 비쳐집니다.

 

자신의 꿈을 아이에게서 이루고져 하는 '제2지망' , 아내의 도박벽으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차가운 작렬', 비뚤어진 예술혼의 '거짓말 딱 한개만 더', 동성애를 다룬 '친구의 조언'등 다섯편 모두 다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들입니다. 특히 사회성 짙은 재료를 주제로 선정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다운 단편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친구의 조언' 은 동성애를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한번쯤을 생각해볼 만한 사회적인 문제를 거론했다는 점과 그동안 가가형사 시리즈에서 <졸업> 이후 가가형사와 사적으로 관련된 사건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눈에 띄네요. 여러모로 짧막한 단편들이지만 추리스릴러작품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스펙들은 다 충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단편집은 또 다른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짧막한 스토리로 독자들의 집중도를 높인다는 취지와 더불어 그 동안 사건 해결사의 대명사격이었던 가가 교이치로의 사건해결 스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선 어느 정도 찬사를 보내보지만 추리스릴러의 특징 중 하나인 사전 교감의 극소화라는 면에선 왠지 2%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합니다. 너무 내러티브를 축소화 하다보니 사건의 해결과정과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맛이 떨어질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 그 동안 '인간적인' 해결사인 가가형사의 진면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그래도 다섯편 모두 다 사회성 짙은 플롯을 기반으로 쓰여져서 짧은 글이지만 독자들에게 나름대로의 여흥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 위안으로 다가오네요. 물론 단편이지만 내러티브나 스트럭쳐가 결코 떨어지거나 허술하지 않습니다. 다만 히가시고 게이고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 한 사람으로서 '가가형사' 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점이 못내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거짓말딱한개만더, 히가시노게이고, 단편소설, 추리스릴러소설

존 맥그리거는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너무나 많은 시작> 을 통하여 이미 국내에 어느 정도 알려진 영국 신예작가입니다. 부커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될 만큼 작품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검정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을정도로 신인 작가 치고는 상당한 필력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뭐 이미 존 맥그리거의 전작들을 접해본 독자분들이라면 저의 이런 평에 대해서 수긍하리라 여겨 집니다. 무엇보다 존 맥그리거의 문체는 그 동안 바쁜 일상생활에 젖어 그저 한순간의 괴로움을 잊고자 갈망하는 이들에게 강도 높고 충격적인 내러티브를 선사함으로서 스트레스 해소에 일조를 한 흥행성 높은 엔터테이먼트장르의 소설과 거리가 상당히 먼 작품들이라고 해야할 만큼 조용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스릴러, 추리, 반전, 멜로등의 갖은 화학 조미료로 맛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인공적인 면을 전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아주 밋밋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 일색입니다. 뭐랄까요 화려한 색체와 향기를 머금고 있는 대중적인 꽃이 아니라 산들녁에 홀로피어있는 야생화처럼 은근한 향을 내뿜고 있는 그런 작품이라고 여겨집니다. 환자에게 강력한 진통제나 항생제를 투여해서 질병을 고치는 방법은 결국 내성을 키우게 되고 좀 더 강한 약물을 투여해야 하듯이 바로 지금 우리 주변의 작품들이 아마도 그런 내성을 가진 힘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가져 보게 됩니다.

 

뭐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는 존 맥그리거의 작품들은 하나 같이 항생제나 진통제와는 무관하게 아픔을 스스로 극복해야만 했던 전통적인 방식(약간의 민간요법을 가미해서요^^ 그 민간요법이 바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CCTV로 찍어내는듯한 리얼타임 기법을 동원해서 독자들의 눈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을 취하고 있다고 보여지네요. 그래서 어떤 독자들은 정말 재미없고 따분하고 뭔 소리인지 모를 만큼 느껴지는 잔잔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개들조차도> 도 역시 전작들과 비교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무슨 맛인지 모를 만큼 밋밋한 작품입니다. 그래도 그동안 이런 항의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속어와 육두문자가 난무하고, 중간 중간에 쉼표가 없다면 읽다가 질식사 할 것 같은 끊임없는 단어들의 향연등...(그래서 아마도 전작의 두편의 소설을 대했던 독자들이라면 이거 상당히 황당한 시츄에이션처럼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사람이 변할수 있을까 하고요) 그래도 전작들에 비해선 최대한 맛을 살리기 위한 약념들(속어와 육두문자 그리고 랩같은 진행방식들...)을 뿌려놓았다는 것이 저 개인적인 느낌이네요. 그런데도 이 양반의 필력 어디가겠습니까? 역시 그러한 양념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진짜 맛은 바로 은근한 밋밋함 그 자체인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 동안 등장인물과 그들을 중심으로 한 배경 묘사 부분을 CCTV로 바라보듯이 기술하였다면 이번에는 아예 작정을 한듯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스포츠 라이브방송을 보는듯 하네요. 카메라 한두데가 아닌 여러대를 여러각도에서 다양하게 잡아내어서 입체감을 듬뿍 살렸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마치 공중부양을 한 느낌으로 내러티브가 흘러가는 사태를 요소요소에서 중계하는듯(굳이 보여주지 않고 편집해도 될듯한 뷰들까지 일일이 시청자들에게 흘려 보내고 있어 마치 방송사고를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아주 세밀하게 잡아내고 있다는 점이 강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네요.

 

아무도 관심같지 않는 소외층의 죽음과 그 죽음이 처리되어 지는 일련의 과정 그리고 그 과정들을 무미건조하게 보여주는 내러티브 그리고 마치 랩을 하듯이(진짜 저는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절로 리듬에 맞춰서 읽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이어지는 문장들 하나하나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느껴지게 합니다. 비록 알콜중독등으로 인해 현실세계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외면받은 한 삶의 마침에 대해 뭐 그리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라는 의구심도 들겠지만 존 맥그리거의 손에 새롭게 탄생한 이들의 삶과 죽음은 또 다른 새로은 경지를 여는것 같아 새삼 주변을 둘러보게 하기도 합니다. 여하튼 전반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네요. 작품의 모티브나 스트럭쳐를 끌어가는 다양한 기법들 그리고 내러티브속에 담겨져 있는 그들만의 리그를 수면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어지는 작품입니다. 왠지 이번 작품을 계기로 슬쩍 존 맥그리거의 힘있는 작품이 기대되기도 하네요.    

개들조차도, 존맥그리거, 모던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