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참 묘하다. 얼마 전 <정글만리> 시리즈에 푹 빠져 온통 중국 문화와 한국과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해 고심하고 있던 나를 단 하루 만에 여성 문제를 놓고 뭔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펜까지 들게 만들었다. 책은 말도 많고 산만하기 까지 한 나를 집중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친구이기도 하다.

 

왜 이토록 답답하고 짜증이 났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기분이 그랬다. 짜증나서 미쳐버릴 것 같은 여성의 삶은 뭐가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지 할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1998년에 태어난 녀석이긴 했지만 지금 2013년 10월 역시도 여성의 삶은 어제나 오늘이나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여자는 선, 남자는 악이라는 이분법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역시나 여자는 약자, 남자는 강자라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내 나이 서른네 살 곧 있으면 서른다섯 살이 된다. 친구들 대부분 결혼을 했고, 대부분 아이의 엄마이다. 우리가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아이를 낳은 후 직장을 포기한 친구와 나처럼 워킹 맘을 선택한 친구로 나뉘었다. 그런데 단 한 명도 결혼하고 나서 진정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왜 우리 여성은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없는 걸까? 나 역시도 나도 모르 게 남편에게 의지하는 내 자신을 보며, 사랑받고 사랑하고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예성의 본능을 느낀다. 처녀 때나 지금이나 아이를 둘 낳고도 같은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는 것 역시 그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랑은 나에게 살찌면 강제로 헬스클럽에 넣어 버리고 같이 다니지 않겠다고 웃으며 농담을 던졌지만 난 그 말이 진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여자도 이왕이면 내 남편이 스마트하길 바라듯 남자의 욕구는 그 보다 더 진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자면 난 자유로운 영혼이다. 하루 종일 살림하고 아이만 보고 있을 때는 나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일이 주는 스트레스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남지만 나 자신의 자존감은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와 대등해 지고 당당하게 맞서려면 여자 역시 사회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혜완은 직장을 선택함으로서 아이까지 잃는 고통을 겪었지만 어떻게든 껍질을 깨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영선은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억울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한탄과 남편에 대한 분노로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박 감독이 영선에게 던졌던 돌멩이 같은 말들 역시 ‘집에서 퍼져만 있지 말고, 책을 좀 읽어, 스스로 할 일을 찾아봐. 긴장감을 잃지 말고 살아봐.’ 하지만 소설 속 영선이는 우리의 엄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편과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자신을 그 위치까지 만들어준 아내의 희생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동료와 영선의 모든 일생을 바친 집에서 바람까지 피우고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처구니없게도 그 상황에서 영선은 그 여자에게 새로 산 소파가 더러워질까봐 앉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를 한때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 남자가 다른 여자의 편을 들고 오히려 영선에게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으니 정말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영선이처럼 자해를 하고도 모자라 수면제 삼키고 스스로 세상을 버렸을까? 아니다, 그래도 그건 아니다. 아무리 우리(딸)를 낳고 축제를 해준 사람이 없었다 할지라도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그런 남자들에게 우리의 삶을 다 쏟아 붓기에도 너무도 아까운 우리 스스로의 삶이 너무도 소중하다. 아이도 채워줄 수 없는 남편도, 부모님도 채워 줄 수 없는 삶의 행복은 나의 몫이다. 나 이외의 행복은 잠시 잠깐의 즐거움과 행복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가족은 이 세상 제일의 동반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임이 틀림없다. 혜완이처럼 너무 비딱하게만 굴지 않는다면 남자라고 다 그렇치만은 않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혜완이는 영선이처럼 위선자는 아니다.

 

경혜처럼 연극을 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연극을 하며 살고 있는가! 특히 연예인들을 보면 가면무도회를 보는 듯 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토크쇼에 함께 나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처럼 자신들을 소개해 놓고 하루아침에 이혼소송에 서로를 헐뜯느라 정신이 없다. 무엇이 진실일까? 무엇이 올바른 길일까? 정답은 자기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단지 나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부조리 앞에서 무릎 꿇어야 하는 우리 여성의 슬픔 앞에 잠시 잠깐 방황하고 있다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 뿌리 깊숙이 남아 있는 남아선호사상은 소설의 한 귀퉁이 주제처럼 여자가(엄마) 여자를(딸) 대접해서 좀 더 권리를 회복시켜 줄 생각은 안하고 남자를 낳아서 구박을 면하려는 나약함의 대물림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같은 부류의 한국 여성이다. 큰 딸 하나만 낳고 연애하듯 살자고 신랑과 합의해 놓고 시부모님의 강력한 아들 바람에 못 이겨 결국 아들을 안겨 드렸다. 낳는다고 무조건 아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성별확인 4개월 차에 병원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은 분명 아들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섞여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다 그런 게 삶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 친구에게 했던 말처럼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니까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이다.

 

 

별 거 아니란다.

정말 별거 아니란다.

그런 일은 앞으로도 수없이 일어난단다.

네가 빠져 있는 상황에서 한 발자국만 물러서서 바라보렴.

그러면 너는 알게 된다.

네가 지금 느끼는 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울 일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산다는 것 바보 같은 짓거리들의 반복인 줄을 알게 될 거란다. 자, 이제 울음을 그치고 물러서렴. 그 감정에서 단 한 발자국만 그 밖을 향해서.

 

 

<자작시 - 가시나무를 사랑한 죄>

멀리서 흰꽃 날리며

눈의 여왕의 그윽한 유혹이 나를 속삭입니다.

가만히 다가가 보니

그것은 아름드리 아카시아 나무였습니다.

향기가 하두 좋아

가시가 내 살을 파고드는 줄도 모르고 취해 있었습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아카시아나무의 가시는 잎마다

2센티미터 이상의 가시가 붙여 있다고 합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알아도 참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 번씩 깊숙이 파고드는 가시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나이를 먹으면 나무에 따라 가시가 전혀 없어지거나,

1~2밀리미터로 아주 작아진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가시나무를 사랑한 죄로

참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더 끌어안고

더욱 사랑해야만

가시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꾸 자꾸 알면서도

눈물이 흐릅니다.

자꾸 자꾸 가슴이 아파

웃음이 사라져갑니다.

 

그때까지 참으면 되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면 되는데.....

자꾸 자꾸 마음이 아픕니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제목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생각은 곧 그 사람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사는 대로 자신을 창조하게 된다.  "생각의 자각" 누구나 생각은 한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자각하지 않고, 그냥 그런 생각들로 자신의 인생을 꾸민다면, 과연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 역시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 불안한 미래가 한국 사람들을 점집으로 유혹한다. 누구나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이라는 시간이 30일이 모이면 한달이 되고 천 번이 모이면 인생이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는 미래이다. 카르페디엠 "오늘을 살자!" 잭과 콩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 아침에 자라는 씨앗은 동화책에만 존재한다.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 가지가 자라 줄기를 이루고 잎사귀가 무성하여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우리는 걷고 또 걸어야 한다. 그날 하루 최선을 다하면 미래는 지금보다 분명 밝을 것이다. 

 

오드리 헵번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루를 그냥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사하지 않고 표면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행적을 책을 통해 접할 때마다 내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이 책 속의 나오는 그들의 모든 이야기가 내 가슴을 울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그 무엇보다 소중한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한번쯤은 자신에게 미쳐볼 필요도 있으니까. 한번쯤은 열정을 다해 쏟아내고 또 쏟아내고 더 이상 쏟아낼 것이 없을 정도의 광기를 부려도 아름다우니까! 그게 삶이니까! 그게 살아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책이 좋다.

 

나만의 새장의 갇혀 세상을 보지 못했다면 무미건조한 살을 살고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많은 세상을 많은 배움과 습관을 얻었다. 책은 단연컨대 가장 좋은 친구이다. 무일푼으로 갑부의 꿈을 이룬 록키 아오키의 상상의 힘 역시 책을 통해 접한바 있다. 우리가 가진 두뇌의 무한한 능력은 초능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머릿속으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생생하게  그리면 온몸의 세포가 모두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조절 된다고 앞으로 내 인생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돌아 간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의 뇌는 스폰지와 갚다. 성인의 뇌는 돌덩이 처럼 단단하여 피나는 훈련을 통해 가능하지만 자기 암시법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책을 통한 확신을 얻은 다음부터 램수면 상태의 아이들에게 긍정의 마법을 외치고 있다. 지금 크게 효과 본 것은 없지만 강한 확신이 있다. 분명 내 아이들 무의식 세계가 아름답게 창조되고 있으리라는 것을..... 세상은 내가 어떤 안경을 착용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불평불만이 가득한 선글라스는 이제 던져 버리고 무지갯빛 가득한 안경을 착용해 보길 소망한다.

그때는 온전히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머리 아프고 마음만 어지러울 뿐이었다. 서른에 읽은 <상실의 시대>는 뭔가 다른 느낌의 책이었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나 20년이 지나 이 책을 다시 펼친다면 어떤 향기가 날까? 와타나베처럼 책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은 다음 눈을 감은 채 이 책의 향기를 가슴 속에 담고 싶었다. 책의 향기를 맡으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싶었다.

 

젊은 날의 방황과 반복된 상실의 연속은 성의 혼돈으로 잘 표현되어 있었다. 현대사의 일어난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를 어떻게 리얼하게 표현 할 수 있겠는가! 단지 성행위가 아닌 성을 통한 탈출을 꿈꾸는 강렬한 몸짓이 내 피부에 전달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에겐 비틀거리며 걷던 밤거리가 있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지구 몇 바퀴를 돌고도 남을 정도로 젊은 날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그들처럼 이유도 없이 그냥 걸었다. 걷다보면 술에 취해 울고 있는 아이도 있었고, 한껏 멋을 부리고 남자를 유혹하는 아이도 있었다. 사랑이 떠나가자 다시는 사랑하지 못할 것처럼 웅크리며 주저앉아 좌절하는 아이도 있었다. 어른들 말로 표현하지만 속이 없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돈에 대한 계산도 없는 텅 빈 머리였다. 단지 뜨거운 가슴만 있을 뿐이었다. 때론 너무 뜨거워 나조차 주체하지 못한 날에는 바다를 찾아 떠나버릴 수 있었던 것도 젊은 날의 추억이다. 그때는 그게 무엇이었길래 그토록 심각했던지 그게 전부였다. 그 긴 터널을 지나 지금이라는 시간에 도착해 보니 정말 별것 아닌 일에 울고 웃고 열정을 쏟았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의 절망적인 젊음이 그랬다. 그 터널만 지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게 될 수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참지 못하고 살아 있는 기쁨을 포기해야 했다. 17살인 채로 멈춰버린 기즈키도, 나오코의 언니도, 그리고 결국 나오코 자신마저도 그렇게 멈춰버렸다. 그들은 그 어두운 터널 그 자체로 정지되어 버렸다. 난 절대 강제적인 죽음(자살)으로 해결할 수 있다 믿지 않는다. 누구나 죽지만 자살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까지도 죽이는 행위라 생각한다. 나오코의 남자친구 기즈키 혼자 죽었지만 끊임없이 기즈키의 환청과 자책감으로 더욱 무거워진 삶의 무게를 감당 못하고 나오코 역시 와타나베의 노력과 레이코 여사의 노력에도 허사였기 때문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내게 삶에 대해 묻는다면 주절주절 설교만 늘어놓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난 강한 확신이 있다. ‘죽음보다는 아름답다’ 라는 사실! 그러니까 살아야 한다. 젊음이 주는 고통이 잔인할 정도로 가혹하다 할지라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진한 사랑이 있으니까 아파도 아름다운 것이다. 30대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미친 사랑이 거기에 있으니까 아파도 괜찮다. 아파도 차라리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우리를 살게 만든다. 고통의 밤을 넘어 아침을 반복해서 맞이하는 사이 우리는 나이를 먹을 테니까. 살아 있으니까 아픈 것이다.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사람답게 살면 된다. 이제 그들의 상실까지 빼앗고 싶은 나는 30대 중반이니까! “맘껏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님이 남기신 말이다.

 

 

흥분하고, 울고 그래도 그건 그것대로 좋은 거야.

감정을 밖으로 노출시켜 보이니까.

무서운 건 노출이 안 될 때거든.

그렇게 되면 감정이 몸 속에 쌓이고 점점 굳어 가요.

온갖 감정이 뭉쳐 몸 속에서 죽어가는 거예요.

그 지경이 되면 큰일이죠.

 

 

서둘지 말아야 해요.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일이 얽히고 설켜 있어도

절망적인 기분에 빠지거나 짜증을 부려도

무리하게 잡아당기거나 하면 안 돼요.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서서히 풀어 나가지 않으면요.

할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