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동안 바보로 살아야 했던 멘사 회장의 실화는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한 사람의 인생이 한 마디 말로 바보가 되기도 하고 천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믿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원숭이 IQ는 50이고 침팬지는 65로 알려져 있고 돌고래는 대략 70~90정도로 알려져 있다. 빅터의 인생을 바꿔버린 IQ테스트 결과는 73이었다. 그후 빅터는 오랫동안 돌고래보다 못한 놈 ‘바보 빅터’로 살아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실 빅터의 IQ는 173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무려 17년 동안이나 저능아 취급을 받으며, 성인이 되어서까지 동네 아이들에게 바보라 놀림을 받을 수 있었던 걸까? 로널드 선생의 실수로 173의 숫자가 73으로 불러지면서 스스로도 자신을 바보라 믿었던 것이다. 그 결과 저능아는 일반학교에 다닐 수 없다며 특수학교에 가야 한다는 로널드 선생의 말을 듣고 학교를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정말 무서웠다. 생각이 무섭고, 사람들의 평이 무섭고 그리고 그 기준에 맞춰 내 인생의 틀을 짜고 있는 내가 무서웠다.

 

이 책의 주인공 또 한 사람 로라는 오랫동안 ‘못난이 콤플렉스’에 걸려 무슨 일이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몹쓸병에 걸린 여자아이였다. 그녀 역시 가족들의 잘못된 사랑으로 학습된 부정적인 유전자가 그녀 인생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무슨 일이든 안정적인 것을 택하게 하기 위해 안 된다는 말부터 가르쳐왔다. 아이들은 배우면서 꿈을 찾아 나간다. 그런데 로라의 아버지는 피겨스타가 되겠다고 샀던 스케이트, 테니스도 라켓 몇 번 휘두르지 못하고 그만뒀던 일이며,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배운 피아노며, 이제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에 작가는 아무나 되는 건 줄 아냐고 하면서 재능은 뭐든지 타고 난다며 포기하라고 하셨다. 그런 그녀의 별명은 못난이였다. 늘 하는 일이건 생긴 모양새건 못났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 이제는 스스로도 자신을 못난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훗날 빅터와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자신을 못난이라고 부른 이유가 따로 있었다. 너무 예쁘장하게 생긴 탓에 두 살 때 백화점에서 유괴를 당했던 로라의 부모님은 딸을 그저 평범하게 키우고 싶은 생각에 못난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못난이..... 돈 벌어 성형하고 싶다는 꿈밖에 키우지 못한 딸의 아픈 성장기는 한 마디의 말에서 시작된 것이다.

 

빅터와 로라는 분명 다른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그들에겐 자존감이 없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어쩌면 자기 자신을 빛내는 최고의 비결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성장해 버렸기에 어른이 되어서까지 쓰디쓴 패배의 잔을 마셔야 했는지 모르겠다. 바보와 천재도 73과 173이라는 숫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자신을 얼마만큼 믿느냐의 차이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얼마 전에 읽은 <아이의 사생활>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키워드는 자기믿음 즉 자존감이었다. 특히 여전히 우리 한국 사회는 틀에 박힌 삶, 사람들의 시선과 말을 신경 쓰느라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두리번거리다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스로 내 자신을 얼마만큼 믿느냐에 따라 우리의 정신은 긍정이냐 부정이냐를 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의 힘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고 더 나아가 우리 인생이 만들어 질것이다. 빅터도 처음부터 자신을 천재라 믿었다면 세상을 피해 떠돌이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로라도 자신이 예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인생 전체를 그렇게 우울하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로라가 출현한 오프라 윈프리 역시도 젊은 날의 좌절로 무너져 내렸다면 지상 최고의 쇼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포기의 길을 걷지 않은 사람들이 결국 박수를 받는다. 레이첼 선생의 말처럼 퇴짜 맞고 망신당하더라도 고백하는 것이 좋고, 상처받더라도 사랑하는 것이 좋다. 결국 임종하는 순간에는 우리가 시도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후회로 남을 테니 말이다. 오늘이 지상에서 마지막 날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매일 후회 없는 하루를 살기위한 자양분이었다는 레이첼 선생의 말에 동감했다. 남이 만들어준 바보 빅터, 못난이 로라 표지판이 아닌 내가 직접 만든 표지판을 세워야 한다. 우리도 얼마든지 멋진 삶을 살 수 있다. 잘난 척 하자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당당히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보자는 것이다. 암기왕 잭의 말처럼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로라가 알을 깨고 나와 세상과 부딪혔을 때 유명한 동화 작가가 되었고, 빅터가 알을 깨고 나와 자신을 천재라 믿었을 때 인구 대비 상위 2퍼센트의 IQ를 가진 사람들만이 가입할 수 있다는 국제멘사협회 회장이 되었다.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빅터의 말처럼 자신이 말굽밖에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말굽밖에 되지 못하고, 바보라고 생각하면 진짜 바보가 되는 것이다. 

역시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의 작품이다. <비밀의 화원>보고 홀딱 반했는데 다시 읽는 명작 <소공녀> 아니 <세라 이야기>보고 또 한번 감동을 받았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일본어 번역본의 잘못된 제목인 <소공녀>, <소공자>를 버리고 시공주니어에서 한국어판의 자존심을 걸고 완역본 <세라 이야기>, <세드릭 이야기>를 출간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소공녀'라고 부르지 말자!' 책을 받자마자 이 문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원작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 이야기라 그런지 맛도 좋았다. 역시 서평은 읽자마자 써야 하는 데 시간이 지나 쓰려니 마음이 착잡하다. 다시 읽는 마음으로 글을 정리해야겠다. 그러다보면 세라의 품격 있는 공주의 파워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라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세라의 가장 열렬한 팬 크루 대위는 세라가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엉뚱한 말도 열심히 들어주는 자상한 아버지이다. 세라는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엄마 얼굴도 몰랐고 별로 그립지도 않았다. 엄마의 사랑까지 부족함 없이 채워주는 아버지 때문에 세라는 늘 행복했다. 거기다 세라는 태어날 날 때부터 아름다운 저택에서 살았고, 인도 하인들이 '아가씨'라 부르면서 굽실거리고 무슨 일이든 돌보아 주었다. 그런데 어느 덧 때가 되어 기숙사에 들어가면 안 되는 나이가 되었다. 세라를 맡게 된 민친 선생은 세라 아버지가 부자라는 사실 때문에 온갖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쏟아 내었다. 그런데 조그마한 계집애가 마치 자신이 공주인냥 행동하고 예의를 갖추고 하는 모습을 보자 속으로 얄미워 견딜 수 없었다. 특히 세라는 상상 놀이에 푹빠져 있었는데 친구들 사이에서 세라 이야기는 단연 최고 인기였다. 세라가 부자이면서 고집이 세고 잘난 척하고 친구들을 무시하는 아이였다면 주인공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들 더럽다고 상대해 주지 않은 하녀 베키를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친구들이 뚱뚱하고 멍청하다며 놀리는 어먼가드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도 세라였다. 너무 어린 나이에 학교에 와서 엄마가 없는 외로움에 날마다 우는 통에 선생님도 쩔쩔매는 로티를 달래서 공부시키는 아이도 세라였다. 그래서 로티는 세라를 엄마라고 부른다. 세라에게는 따뜻함, 친절, 상냥함, 즐거운 말, 품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도움과 위로 그리고 유쾌하고 상냥한 웃음이 있었다. 그것은 세라가 부자이기 때문에 갖춘 인성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조물주가 내려준 선물이었다. 공부도 일등, 마음도 일등 거기다 부자라는 사실 때문에 학교의 자랑거리가 되어버린 세라 때문에 라비니아는 심술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세라 아버지가 다이아몬드 광산 사업에 실패한 바람에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버린 세라는 베키처럼 설거지 방 하녀 신세가 되고 만다.

 

세라의 삶은 서서히 바뀌어 간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한순간에 변해 버렸다. 미친 선생의 태도도 크루 대위의 소식을 듣는 순간 변한 바람에 세라는 하루아침에 어린 학생들에게 프랑스 어를 가르치고, 날이 궂으나 맑으나 날마다 멀리까지 걸어서 심부름을 다녀와야 했고, 요리사의 말도 안 되는 구박 때문에 밥도 못 먹는 날이 많았다. 거기다 온갖 허드렛일에 방청소와 정리 정돈까지 해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도 세라는 펜을 놓지 않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홀로 남은 교실에서 예전에 배운 것을 계속 공부했다. 비록 지금은 설거지 방 하녀나 다름없는 처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이라면 가엾은 베키랑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세라는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기 때문에 모두에게 무시당해도 가슴은 아팠지만 그럴수록 더 당당해지려고 애썼고 아무에게도 이런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사주신 에밀리와 대화를 나누었다. 아마도 세라가 그런 생활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무궁한 상상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추한 다락방은 바스티유 감옥이라 상상했고 자신은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 공주, 미친 선생은 악독한 간수, 옆방 비키는 옆 감옥에 갇힌 죄수라 상상했다. 자신은 공주이기 때문에 비록 누더기를 걸치고 있지만 진짜 공주라면 그 어떤 수모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친 선생은 어린아이답지 않은 차분한 눈동자와 도도한 웃음을 머금고 자신을 찬찬히 쳐다보고, 세상을 자기 발 밑에 두고 마음속으로 혼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세라를 보면 몹시 기분이 나빴다. 아무리 심술궂고 가차 없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아도, 오히려 당신은 어리석고 무지비하고 천박하고 한심한 늙은이에다 사리 분별 못하는 사람을 보고 있는 냥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공주라면 반드시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해.'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하인들은 그러한 세라 태도를 보고 자신이 마치 버킹엄 궁전 사람처럼 도도하다며 놀려댔다. 아무리 요리사가 구박해도 툭하면 벌컥 화를 내는데도 한 번도 예의를 갖추지 않는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라 태도 때문에 미친 선생과 하인들은 미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미 힘도 없고 고아에다 가진 것은 몸밖에 없는 아이의 모든 것을 쥐고 있는 민친 선생이면서 왜 세라를 굴복시키지 못한 걸까? 그것은 바로 세라의 강한 정신과 의지 때문이다. 얼마나 멋진가! 자신이 공주라 믿는 믿음 때문에 누더기 옷을 입고도 품위를 유지하는 당당함과 밤마다 홀로 앉아 공부하는 아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살을 에는 추위와 배고픔이었다.

 

그런 와중에 학교 옆에 엄청난 부자로 알려진 인도 신사가 이사를 오게 된다. 우연히 원숭이가 세라가 사는 다락방 안으로 들어와 인도 하인 람다스가 그곳을 방문하게 되면서 엄청난 마법이 시작된다. 인도 신사는 인도 사람이 아니고 인도에서 살다간 온 영국 사람이다. 다이아몬드 광산 사업을 하다 일이 잘못 되는 바람에 재산을 몽땅 날릴 뻔한 충격 때문에 뇌염을 앓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 뒤로 운이 돌아오고 재산을 모두 되찾아 다시 부자가 되었지만 한번 잃은 건강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라는 아버지 상황과 비슷한 인도 신사에게 더욱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그 아저씨를 위해 창문을 열고 행복과 건강을 빌어 주었다. 아무리 벽이나 창문이나 문이 가로막고 있어도 다정한 생각은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전해지고, 아저씨는 왠지 모르게 조금은 마음이 따뜻해지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거라 생각했다. 자신의 처지보다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아이를 어떻게 하느님께서 축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감동 받은 부분이 있는데, 세라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늑대가 뱃속을 물어뜯는 것처럼 아팠다. 이러한 상황에서 4페니 동전을 줍게 되는 데 자신보다 더 비참해 보이는 거지 소녀에게 빵을 사서 나눠준 것이다. 과연 굶주린 이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얼마나 생각할까? 하지만 세라는 자신보다 더 배고파 보이는 거지 소녀에게 5개의 빵을 건네주고 자신은 한 개로 만족해야 했다.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에 꼭 좋은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야. 마치 마법처럼. 늘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텐데.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 세라의 말처럼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세라에게 마법을 선물한 인도 신사는 크루 대위의 친구였다. 세라의 아버지 랄프 크루 대위는 친구에게 배신당했다 생각했지만, 같은 시기에 캐리스퍼드 씨도 뇌염에 걸려 생사를 넘고 있었다. 재산을 모두 되찾은 캐리스퍼드 씨는 친구에게 딸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2년 넘게 찾아 다녔지만 행방을 알수 없어 답답해하고 있던 터였다. 세라는 늘 공주가 되려고 하는 자신의 의지대로 이전보다 더 많은 부자가 되었다. 세라는 고생하고 많은 일을 겪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는 큰 재산을 가진 셈이다. 겉모습까지 공주로 돌아온 세라는 백성들의 배고픈 생활을 알았기에 더욱 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어느 우울 한 날 세라를 다시 만나러 와야겠다. 자신을 공주처럼 대하는 사람은 공주처럼 대우를 받을 것이고, 자신을 헌신짝 취급하듯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지처럼 살아갈 것이다. 

 

 

 

 

* 사람들이 날 모욕할 때는 한 마디도 안 하는 게 좋아. 그냥 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하는 거지. 내가 그러면 민친 선생님은 얼굴이 새파래지고 아멜리아 선생님은 겁에 질리는 것 같아. 다른 아이들도 그렇고. 내가 화를 버럭 내지 않으면, 사람들은 내가 자기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법이야. 화를 참는 건 힘든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화를 참지 못하고 어리석은 말을 뱉고 나서 나중에 후회하거든. 분노만큼 강한 것은 없지만, 나는 그 분노조차 마음속에서 억누를 수 있어. 그렇게 참는 것이 강한거야. 적한테는 대꾸하지 않는 게 좋아. 나도 거의 대꾸를 안해. 에밀리는 나보다도 더 나와 비슷한지도 몰라. 그래서 친구한테조차 대꾸를 안 하는지도 몰라. 모든 것을 가슴 속에만 담아 두고 있는 거야.

 

* "무슨 일이 있어도 한 가지는 바뀌지 않아. 내가 공주라면 누더기를 입었다 해도 마음은 여전히 공주일 거야. 황금 옷을 차려 입었을 때는 공주가 되기 쉽지만,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을 때에도 공주로 지낼 수 있다면 그게 더 훌륭한 일이야. 마리 앙투아네트(프랑스 왕 루이 16세 왕비)는 왕비 자리를 빼앗기고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머리는 하얗게 센 채 검은 옷만 입었고 사람들이 과부라고 부르면서 모욕을 주었어. 하지만 호화로운 궁전에서 화려하게 살 때보다 감옥에 있을 때가 더 왕비다웠어. 나는 그때 모습이 가장 좋아. 성난 군중들의 외침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순간에도 군중들보다 더 강인했어."

 

어릴 적 만화에서 보았던 <피터 팬>을 상상하고 읽기엔 당황스러운 면이 많다. 먼저 제임스 매튜 배리에 대해 언급하자면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 작가라고 한다. 열 명의 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난 배리는 유년 시절 형 데이비드의 죽음으로 심한 충격을 받았는데, 아들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오랫동안 죽은 형의 옷을 입고 흉의 흉내 내며 살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성장에도 영향을 미쳐, 형이 죽던 때 150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던 키가 그 뒤로 한 뼘도 자라지 않았다.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은 그의 바람을 피터 팬이라는 인물로 탄생시킨 것 같다. 그는 결혼 생활 평탄치 못했는데, 간절히 원했던 아이도 생기지 않아 우연히 알게 된 데이비스 부부의 다섯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쏟았다고 한다. 또한 다섯 아이들에게 들려 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피터 팬>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작품 안에 나오는 피터와 마이클의 이름은 다섯 아이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훗날 고아 된 이들 다섯 형제를 입양하여 키울 정도로 아이들의 사랑은 대단했다. 배리와 아이들의 우정이 싹튼 켄싱턴 공원에는 여전히 피터 팬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화 속에서도 피터 팬은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아 재미있게 살기 위해 켄싱턴 공원으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요정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위풍당당 제멋대로 사고뭉치 피터 팬은 요정들과 함께 오른쪽으로 돌아서 두 번째, 그 다음 아림이 올 때까지 똑바로 라는 주소에서 집을 잃은 소년들이 사는 환상의 섬 네버랜드에서 살고 있다. 그곳은 어린아이가 죽으면 혼자 가는 길이 무서울까 봐 길동무가 되어 준다는 소문도 있다. 달링 부인은 창문에 걸려 있는 이상한 그림자를 주워 서랍장에 넣어 놓았는데, 자신의 그림자를 찾으러 왔다가 웬디를 만나 게 된다. 그런데 마침 보모인 나나를 달링 씨가 화가 나서 밖에다 묶어 놓았는데, 그날 밤 피터의 꼬임을 당해 달링 부부의 소중한 아이들 웬디, 조, 마이클은 환상의 섬 네버랜드로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곳곳에 아이들로써는 감당하기 힘든 위험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었는데, 통솔자 피터 팬은 잘난 척 대마왕이라 우쭐대느라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다. 혼자 휙 사라졌다 갑자기 불쑥 나타나고 뭐든지 제멋대로 였다. 심심하면 참지 못하는 성질이라 여기저기 사고 치느라 바쁘고, 또 금방 잊어버려 아이들에게 들려줄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데리고 온 아이들의 이름마저 잊어버릴 정도였다. 얼마나 잘난 척이 심한지 도대체 그 자만심은 어디서 나오는지 건방지기가 하늘을 치솟을 정도였고, 뭐든지 제멋대로 하는 건방진 성격 때문에 사악한 후크 선장의 적이 되고 말았다. 더군다나 피터 팬은 후크의 오른 팔을 잘라 악어에게 던져 준 뒤로 쇠갈고리를 차고 다녀야 했는데, 후크고기를 맛본 악어가 그 뒤로 후크만 따라 다녔던 것이다.

 

무슨 동화가 이러나 하겠지만 너무 순수해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문장도 많다. 갓난아이가 처음으로 웃으면, 그 웃음이 수천 개 조각으로 쪼개져서 이러저리 통통통통 뛰어나니다 요정으로 변하는데, 그러니까 원래는 아이들 수만큼 요정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애들은 얼마나 똑똑한지 세상에 요정이 있다는 것을 안 믿어서 요정들이 하나씩 쓰러져 죽게 된다. 피터 팬의 오른 팔 노릇을 하는 팅커 벨도 피터를 죽이기 위해 후크 선장이 타놓은 독약을 대신 마시다 죽을 위기에 놓이기 되는데, 아이들이 외치는 ‘요정을 믿어요’라는 소리와 함께 되살아나게 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이들이 한숨을 쉴 때마다 어른 한명이 죽는다는 설도 있다. 무거운 가방과 공부의 짓눌림 때문에 웃음기 쫙 빠진 한숨이 오히려 우리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보지 못한 피터는 그 누구보다 환한 미소를 가지고 있다. 아마 피터처럼 갓난아이 때의 첫웃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밉살스러운 행동에도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나보다. 아직도 젖니를 드러내 보이며 깔깔 거리며 웃고 있는 피터가 생각난다. 아무리 제멋대로 사고뭉치 피터지만 칭찬을 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면 꼬끼오 소리를 한바탕을 질러대며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다.

 

동화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별들과의 대화, 인어의 아름다움, 요정의 장난스런 날개 짓, 나무를 깎아 만든 집, 구름위에서 자는 아이들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아이들의 호기심에서 만들어진 예쁜 동화 속 장면이지만, 아이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이 깃들여 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엄마가 나를 버리고 도망갈 것 같은 두려움, 검은 그림자(귀신이나 괴물), 무시무시한 해적, 맹수들의 울음소리는 밤잠을 설치게 한다. 나 역시 어릴 적 같은 상상을 하며 꿈을 꾼 적이 있다. 특히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피터의 꿈은 더욱 더 악몽에 가까웠다. 꿈속에서 불쌍하게 울부짖으면서 몇 시간 동안이나 꿈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의 꿈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아마도 그 꿈들은 피터의 무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 피터에게 그리고 네버랜드의 길 잃은 소년들에게 엄마 역할을 해준 아이가 바로 웬디이다. 밤마다 아이들을 앉혀 놓고 소곤소곤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다들 잘 자고 있는지 한명 한명 들여다보며 이불도 덮어주고, 아이들에게 입힐 새 옷도 만들어 주고,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 아이들을 위해 요리하고 그러면서도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엄마의 사랑을 일깨워준 웬디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다 함께 부모님 품으로 돌아가기로 약속한다. 딱 한 사람 피터 팬만 빼고.....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아이로 살고 싶은 아이들의 소망이 남아있는 거겠지!

 

그런데 가는 길에 문제가 생겨 후크 일당에게 아이들이 납치되고 만다. 여기서 후크와 피터 팬의 최후의 결투가 펼쳐지는 데 잊지 못할 피터 팬의 명장면 칼 솜씨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또한 피터 팬의 재치로 악어 뱃속에서 나는 시계소리를 흉내 내며 맘껏 후크를 조롱하는 장면에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후크도 알고 보면 음악을 사랑하고 꽃을 좋아하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품격을 제일 중요시 여기는 사람으로 명문 이튼 학교의 출신이다. 저 잘난 척 대마왕 꼬맹이 놈만 아니면 좀 더 품격 있는 해적선장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 피터 팬만 나타나면 감정 전선이 엉망진창이었다. 후크가 피터 팬에게 물었다.

“피터 팬, 너는 대체 누구며, 어떤 놈이냐?”

“나는 젊음이요, 기쁨이다. 나는 알을 깨고 나온 작은 새다.”라고 되는대로 막 지껄였지만, 정말 멋진 말이기에 기록하고 싶어 남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다시 부모의 기쁨이 되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 나 역시 동감한다. 비록 우리가 본 네버랜드의 모험들을 하나하나 얘기하자면, 국어사전만큼 두꺼운 책으로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피터 팬은 설명했듯이 기억력이 좋지 못할뿐더러 지금도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그곳에 살았던 아이들은 이제 우리들처럼 평범한 아이들이 됐지만 어른이 된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웬디가 어른이 되었을 때>의 속편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지만, 아이들은 날 수 있는 능력을 차츰 잃어 갔다. 처음에 나나는 소년들이 밤에 날아가지 못하도록 침대 기둥에 발을 묶어 놓았는데 차츰 자신이 날수 있다는 믿음조차 잃어버려 날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피터 팬은 영원히 명랑하고 순수하고 제멋대로인 채로 살아갈 것 이다. 우리도 함께 아이들이 그린 복잡한 마음의 지도를 따라 여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위풍당당 피터 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