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토록 분노하게 만들었던 소설은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세상의 이야기도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있을 수도 아니 있어서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금도 화가 난다. 읽는 내내 미칠 것 같은 두려움에 온몸을 떨게 만들었던 소설이다. 간접 경험으로도 미칠 것 같은 두려움이 쏟아져 내리는데, 그 작고 작은 아이들의 가슴에는 얼마나 커다란 멍이 들었을까? 왜 이토록 세상은 잔인할까? 장애를 가진 것도 서럽고 억울한 아이들을 성노리개 감으로 삼다니..... 그토록 무참히 짓밟고 희열을 느끼다니..... 과연 그들이 짐승일까? 사람일까? 정말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좁은 땅덩어리 광주에서 일어난 실화가 맞을까도 의심되었다. 꽃으르도 때릴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에게 도대체 이게 무슨 광란의 도가니란 말인가? 정말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자욱한 안개로 뒤덮인 무진은 왠지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낯선 땅에 도착한 주인공 강인호는 기간제교사로 임시발령을 받아 그곳에 오게 되었는데, 수화도 모르는 그가 농아인을 가르쳐 보겠다고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는 순전히 사업실패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에게는 일반 교사자격증이 있었기 때문에 아내의 연줄로 자애학원에 들어올 수 있었다. 먼저 이 엄청난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간략하게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자애학원의 설립자는 이사장으로 등록되어 있는 이준범이지만, 실세는 그 쌍둥이 아들 교장 이강석과 행정실장 이강복이었다. 남자들보다 더 얄미운 교사 윤자애는 이준범의 수양딸로 소문에 의하면 오라버니 이강석과 애인사이라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다행히도 대학 한해 선배였던 서유진을 만나게 되는데, 이혼하고 혼자서 애 둘을 키우며 살고 있다던 그녀는 그에게 내민 명함에는 ‘무진 인권운동센터 상근 간사’라는 직함이 씌어 있었다. 강인호 선생은 부임한 첫날 행정실장 이강복에게 ‘학원발전기금’이라는 고상한 명목으로 큰거 다섯 장을 요구받고 나오는 길에 학교가 고요해도 너무 고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깊은 물속에 잠수하듯 자신의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첫수업 민수라는 아이는 그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수화를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연두 말에 의하면 그의 동생이 어제 죽었는데 우리는 누가 그애를 죽였는지 알고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짙은 안개만큼이나 아이러니함뿐이었다. 박선생에게 그 여부에 대해 물어보니 “앞으로 여기 계시면 알게 되겠지만 모든 장애인들 중에서 가장 피해의식이 심한 것이 농인들이에요. 자기네들 외에는 아무도 믿지 못하는 것도 특징이구요. 같은 언어를 쓰는 것을 민족이라고 하면 그들은 수화를 쓰는 이방인, 얼굴 생김새는 같지만 다른 민족이죠. 아시겠어요? 다른 민족이라구요.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거짓말도 그들의 풍습 중 하나지요.”라고 했다. 결론은 아이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거였지만 더욱 이상한 것은 농아인학교에 수화를 할수 있는 선생은 별루 없다는 사실이다.

강선생은 뜻하지 않게 이곳에 왔든 어쨌든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기에 반 아이들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아이들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것이다. 그저 장애가 있군, 하고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세상을 살아갈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결핍된 채 세상에 던져졌고 게다가 대개 가정적 불우마저 겹쳐 있었다. 공지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발톱 없이 태어난 사자, 다리 없이 태어난 사자, 귀먹어 태어난 토끼, 팔 달린 원숭이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건을 알리는 비명소리를 듣게 되는데 아무도 그 소리를 찾거나 물어보는 이가 없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문을 두드려봤지만 침묵뿐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연두가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 장경사가 왔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밤에 기숙사를 무단이탈했다는 이유로 수업을 받지 못하게 하고 기숙사로 돌려보냈던 것이다. 강선생은 걱정스런 마음을 안고 연두를 찾아 기숙사에 들어갔다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덩치 큰 상급생 아이들이 양쪽에서 연두의 어깨를 잡고 한 명은 돌아가는 세탁기통에 연두의 손을 억지로 집어넣고 뒤에서 윤자애는 그 장면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강선생은 너무 화가나 윤자애에게 소리 지르고 나오는데 연두는 그의 손에 계속해서 전화번호를 쓰며 엄마에게 연락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연두에 의해 밝혀진 자애학원 빙하 실태를 이제 낱낱이 보고 하도록 하겠다. 그날 강선생이 들었던 비명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연두였다. 교장이 자신의 옷을 벗기고 화장실 안에서 성폭행 하려다 실패하여 연두는 그 길로 송하섭 생활지도교사의 도움을 받아 성폭력센터에 신고를 했지만 아이를 즉시 병원에 보내거나 격리조지 하지도 않고 다시 성추행한 학교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이었으면 그녀가(작가) 펜을 들지도 않았을 거고 나 역시도 이토록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연두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불행히도 질병으로 장애아가 된 경우로, 지금은 비록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병환으로 어려운 시기에 놓여있지만 행복한 편에 속한다. 교장, 행정실장, 생활지도교사 박보현에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꾸준히 성폭행을 당해온 진유리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중복장애아로 모는 행방불명에다 부는 유리와 같은 중복장애자로 아파서 보호자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정상인 할머니가 계시지만 워낙 연세가 많으셔서 그마저도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이 작고 작은 아이를 묶고 벗기고 때리며 어린 살을 찢어 폭행한 자들은 누구인가! 강선생이 부임한 첫날 동생이 죽어 울고 있었던 민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생활지도자 박보현에게 수시로 폭행과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게 되는데 동생이 죽은 그날도 선생님 집에 끌려가 자신의 엉덩이에 딱딱해진 페니스를 넣었다고 진술했다. 먼저 울면서 나간 민수의 동생도 그러니까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길을 건너버린 동생도 같은 일을 당했을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빙산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짐승도 아닌 사람이 아니 짐승도 이러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도 이 그로데스크 같은 사건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 진실의 소설을 읽으며 나를 더욱 슬프게 하는 사실은 그들이 강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두대에 올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죄를 지으면 당연히 받아야 마땅한 것이 벌 아닌가! 그런데 뭐가 이리 복잡하고 까다로운지..... 심지어 경찰, 검사, 법원, 교회, 학교, 센터, 병원, 시청, 교육청이 슬그머니 발을 빼고 더럽고 파렴치한 인간들을 옹호하고 있으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화가 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짠하고 불쌍해서 눈물이 나왔다. 시청에 신고하면 자기 관할소속이 아니라며 교육청에 보내고, 교육청에 신고하면 조사할 권한이 없다며 시청에 떠넘기고, 경찰에 신고하면 검찰측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며 조사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교회는 얌전한 두 장로님이 그럴 리 없다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대모까지 나서고, 법원은 짐승들의 인맥으로 구성되어 약자는 악도 제대로 한번 써보지 못하고, 성폭력센터는 있으면 뭐하나! 다시 짐승의 손으로 돌려보내는데, 심지어 병원마저 짐승을 옹호하고 위해 말을 바꾸고, 학교는 알면서도 그 모든 사실을 묵인하고 이게 바로 눈먼 자들의 세상 아닌가! 정말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아닌가! 우리는 지금 돈만 있으면 죄까지도 없어져 버리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서유진의 말처럼 “우리 여기서 딸 키우고 살아야 하는 거니? 이 발정난 나라에서, 응?” 나 역시도 그 말에 동감한다. 나 역시 딸을 키우고 있기에 손에 벌벌 떨게 만들었던 부분이다. 정말 짜증나고 그지같은 세상이다.

햇빛을 보고 자라도 모자란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으니 단순히 그들을 장애아로만 보는 그들의 눈이 밉다. 단지 소리만 들을 수 없을 뿐인데 세상은 너무도 잔인하게 그들을 버렸다. 아무리 나와 다르다 할지라도 그 어떤 편견도 시선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인간평등이다. 왜 세상은 착한 사람이 맞고 고문당하고 벌 받고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야 하나? 그럼 이 세상이 빅토르 위고가 말한 지상의 지옥 아닐까? 서유진의 절규처럼 우리의 삶이 그냥 먹고 싸는 것, 돈을 모으고 옷을 사고하는 그 너머의 무엇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결국 짐승들은 가벼운 형벌을 받고 버젓이 학교로 돌아가 선생이 되고, 교장이 되고, 행정실장이 되었다. 그리고 반대로 진실을 외쳤던 강선생을 비롯해 송선생외 많은 선생님들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했다. 슬프다, 소설은 끝이 났지만 우리의 삶은 지옥의 연속이다. 아마 지금도 이와 같은 일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진실일 것이다. 진실을 위해 싸우는 일이 바위에 계란치기라는 슬픈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지만 누군가는 외치기에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만 하다. 비록 우리 자신이 강자 편에 서서 비겁하게 아양을 떨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비록 그것이 바위에 계란치기라 할지라도 약자 편에 서서 함께 외치고 싸우기를 바랄뿐이다.

서유진이 민수에게 이 일을 있기 전과 이 일이 있은 후 가장 변한 게 뭐니라고 물어보니, 민수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도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요.” 귀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 라는 성경구절이 문득 생각났다. 무진을 뒤덮는 자욱한 안개처럼 세상은 온갖 거짓과 위선과 폭력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분명 귀있는 자들은 진실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개는 앞을 가릴 수는 있지만 소리는 막지 못하니까 말이다.

어둠속에서 세 개비의 성냥에 불을 붙인다.

첫 번째 성냥은 너의 얼굴을 보려고

두 번째 성냥은 너의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성냥은 너의 입을 보려고

그리고 오는 송두리째 어둠을

너를 내 품에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서.

- 자끄 프레베르 <밤의 파리>  

감칠맛 나는 그녀의 글을 나는 사랑한다. 때론 싱겁기도 하고 밋밋하기도 하지만 그 맛까지도 그런대로 그럴싸한 맛이 난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점점 산문집이나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글이 좋아진다. ‘만약 그녀마저 이제 없다면 그때 그 시절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살아있는 증거들을 누구에게 들어야 하는 걸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마 언젠가는 6.25나 보릿고개를 겪은 즉 역사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마도 그들의 글일 것이다. 이제 다시는 우리에게 열변을 토하며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야기해주지 못하리라. 훗날 역사소설도 경험자가 쓰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상상됨으로써 쓰이는 날이 올것이다. 지금 이 시간 살아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내가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또 하나의 생각이 있다면, 그녀의 말대로 누구나 나이를 먹든 젊든 간에 가슴속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 그것이 우리 마음의 지상낙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가야 할 그리운 고향이 지금처럼 산업화가 되어 개발 되어버렸다면 우리들은 고향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나도 사실 태어난 곳은 도시지만 어릴 적 잠깐 살았던 정겨운 시골이 늘 그립다. 그곳을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편안해지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의 소유자 비록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영원히 그 기억에서 뗄레야 뗄수 없는 사람 타샤 튜더의 글을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던 부분인데, 정원을 손질하고 땅에 생명을 피워내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흙을 닮은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다시 한번 그녀를 통해 느낀바다. 맨손으로 땅을 일구다 보면 손톱 밑이 흙으로 까맣게 물든다고 한다. 그러다 그녀는 문득 자신의 손을 보며 엉뚱한 상상력을 펼치게 되는데, 며칠만 때묻은 손톱을 간직하면 열 손톱 밑에서 푸릇푸릇 싹이 돋지 않을까. 손톱 밑에 낀 것은 때가 아니라 흙이므로..... 흙은 엄청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바람에 날려 먼지로 내려온 씨앗마저 새싹을 피워내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그녀도 때론 생에 대해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을 토하고 있었다. 80을 코앞에 두고 있는 분이 스스로를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옛날 서울대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지금처럼 어느 대학 어느 과에 들어가야 출세하고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실세주의가 아닌 대학 그 자체가 진리와 자유의 공간이었고 자부심과 긍지였다. 그곳에 만권의 책이 있었고, 그 안에 숨어 잇는 아름다운 문장과 지적 갈증을 축여줄 명강의 그리고 사랑과 온갖 좋은 것들이 넘치는 세상이었다. 그런 그녀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비단을 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무자비하게도 전쟁이 터져 버리는 바람에 비단을 한 뼘도 짜기 전에 무참히 중턱을 잘리고 말았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은 그녀에게 6.25의 경험이 없었다면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거니와 지금도 전쟁 경험을 줄기차게 울궈먹는다고 고백했다. 전쟁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살아남아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이것은 당초 자신이 꿈꾸던 비단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황혼을 맞은 노인들이 지난 인생살이를 돌이키며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언가를 실패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열정을 가지고 과감하게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이나 보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의 삶은 나는 동경한다. 나 역시 그 길이 못 가본 길에 대한 아름다움을 터일 테니까. 홀로 사는 외로움에 빠져 살지 않고 바람처럼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사는 삶과 80세 가까운 나이에 글을 쓸수 있는 쇄하지 않는 정력과 텃밭을 일구며 행복해 하는 그녀가 너무 예뻐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손에서 떠나지 않은 책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동이다. 단연코 직업이 작가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그녀의 책사랑 유전은 책 자체를 끔찍하게 애지중지하던 할아버지의 피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며느리들과 함께 당신들이 읽던 언문책만 배고는 할아버지의 한적을 모조리 물에 불려 먹물을 배고 절구에 찧어 가볍고 튼튼한 함지박을 만들면서 희희낙락하던 할머니의 피가 같이 섞여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버릇은 읽던 페이지에는 반드시 표시가 될 만한 걸 끼워놓지 접지 않을 뿐 아니라 읽다가 기억해 두고 싶은 좋은 문장을 발견했다고 해도 밑줄이라는 걸 쳐본 적은, 절대로라도 좋을만큼 없다고 했다. 나는 그와 반대다. 특히 나는 서평을(거의 책정리 수준) 쓰기 때문에 밑줄을 그어놔야 그때그때의 느낌을 살려 글을 쓸수 있다. 책 읽는 속도보다 글 쓰는 속도가 늦은 편이라 지금도 옆에 정리하지 못한 책이 산처럼 쌓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하고 싶은 부분이나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어김없이 밑줄을 긋고 본다. 신랑 표현에 의하면 마치 고시 공부하는 학생처럼 밑줄을 심하게 긋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밑줄을 그어 놓으면 시간이 흘러도 그 부분만큼은 선명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활자중독이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주위에 읽을 책이 없으면 불안하고, 닥치는 대로 읽고 건지는 것도 있지만 잊어버리는 게 더 많다고 했다. 소설은 읽히기 위해 있는 것이지 꽂아놓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빌려주기도 잘하고 안 돌려줘도 찾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나도 그 정도는 아닐 수도 있지만 심각한 활자중독 환자이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서도 한 글자라도 읽으려고 책을 펼쳐 놓기도 하고, 잠자는 시간을 줄이면서 까지 책을 읽고, 걸어가는 시간이 아까워 책을 읽으면서 걷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심각한 것은 읽을 책이 넘치는데도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헌책방에 가거나 서점에 들려 책을 구경하고 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며 얌전히 책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앞으로 읽고 싶어 읽어야 할 책 목록은 500권 가량이 된다. 그렇다고 책으로 인해 전보다 박식해지거나 달라진 것도 없다. 그냥 그녀의 표현대로 활자중독이고 주변에 책이 없고 책을 읽고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간만에 산문집을 읽었더니 사색이 많아져, 나의 감정을 과다하게 표출했던 것 같다.

    

 

타샤 튜더(1915년8월28일 - 2008년6월18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주니어 고전의 그림 삽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우연히 한비야의 책을 통해 또 한 번 알게 되었고, 지인의 소개로 이 책을 소개받아 정식으로 그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내가 그녀와 접속했을 때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지만 그녀의 책을 읽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 모르는 한 사람을 책을 통해 알게 된 그 한 사람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그녀의 글과 그림을 보고 있으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비밀의 정원도 그렇거니와 그녀가 택한 모든 방식 그리고 삶까지도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이 책은 그녀가 직접 쓴 글로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그녀는 소망을 이루었다. 누구나 바라는 소망이지만 쉽사리 택하지 못한 소망을 그녀는 이루었다. 그것이 파라다이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안락한 도시에 젖어 귀향은 몽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찍이 한적한 시골에 들어가 심지어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곳에서 18세기의 풍경을 만들어 갔다. 그녀는 왠지 옛날 방식에 끌린다고 했다. 마치 전생에 1830년대에 살았던 기분이 들 정도로 지금은 거추장스럽다고 입지도 않은 드레스를 선호하여 직접 만들어 입기도 하고, 마트에 가면 널려 있는 우유를 직접 손으로 염소젖을 짜서 요구르트며, 치즈,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고, 봄이면 수선화 구근과 씨앗을 사서 그 넓은 정원을 나무와 꽃으로 꾸미느라 손이 쉴틈이 없다. 아무도 의지하지 않고 홀로 그 넓은 땅을 맨발로 누비며 자유로이 살수 있었던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의 말대로 행복은 마음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녀는 전혀 불행할 이유가 없었다. 한시도 쉴틈이 없는 그녀에게 달콤한 휴식은 그림 그리기와 인형 만들기 그리고 독서였다. 타샤 튜더는 이야기를 읽을 때 마치 영화처럼 본다고 한다. 모든 것에 움직임과 색이 있다고 했다. 책은 그녀에게 현실감 있게 다가 왔다. 에밀리 디킨슨이 ‘책같이 우리를 머나먼 곳으로 데려가는 프리깃함(소형 구축함)은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사람들이 그녀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그림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적당히 그림을 그리지 않고 젖소의 어느 쪽에서 젖이 나오는지, 말을 탈 때 어느 쪽으로 올라타야 하는지, 어떻게 건초더미를 만드는지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현실감 넘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그림 대부분이 정원에 있는 풍경을 담은 것이라 한다. 그 말을 듣고 그녀의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운지 그림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멋진가! 우리는 늘 누군가를 의지하고 홀로 있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한다. 특히 자녀가 집을 떠나게 되면 엄마들은 낙담하여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상실감이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어떤 신나는 일들을 할 수 있는지 둘러보기를 바란다며, 인생은 보람을 느낄 일을 다 할 수 없을 만큼 짧다고 당부했다. 그러니 혼자 지내는 것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 누구나 달랑 자기 마음만 있는 외톨이들인 것을.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말은,‘혼자 있으면 완전히 내 모습으로 지낼 수가 있다.’였다. 그녀는 고독을 만끽하고 사랑했다. 그녀는 너무 바빠서 평생 두통을 앓아보거나 우울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고독을 사랑한 그녀가 외롭지 않다니 과연 어떤 비결이 숨겨 있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소유하고 있는 그녀는 아마도 너무 바빠서 그럴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것 같다. 자연과의 산책을 끝내고 저녁에 흔들의자에 앉아 카모마일 차 한 잔을 마시고 개똥지빠귀의 고운 노래 소리를 듣는 그녀를 상상해 보시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부러워도 너무 부러웠다. 마치 동화에서 튀어나온 인물처럼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삶이 삽화이고 동화인 것을 어쩌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주부로써 조금 자부심이 생겼다. 당연히 전업주부는 아니지만 어차피 엄마로써 아내로써 나의 평생직업은 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직업을 물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는다고 했다. 다림질, 세탁, 설거지, 요리 같은 집안일이 즐겁고 행복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가장부주라서 무식한 게 아닌데,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데 왜 행복하지 않냐고 구박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말대로 인생은 짧으니 오롯이 즐겨야 한다. 책에 수록된 내용은 아니지만 주부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라고 하니 꼭 이곳에 기록하고 싶다. “스스로의 삶을 즐기고, 독립적으로 살아라”    

http://blog.naver.com/book4u80/50098780095 
그녀의 생활을 살짝 감상하고 싶다면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