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애니메이션으로 보았던 <베르사유의 장미>를 회상하며, 책을 들었는데 읽은 내내 점점 심각해지고 말았다. ‘프랑스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의 이름을 되 내이는 것이 이토록 가슴이 아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무엇이 그녀를 최고의 자리에서 밑바닥으로 추락시켰는가? 떨어지는 층수가 높을수록 충격은 더욱 큰 법이다.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 이 모든 재앙의 불씨는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수백 년 동안 합스부르크가와 부르봉가는 유럽의 패권을 앞에 놓고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등지의 여러 전장에서 계속해서 싸웠다. 그러나 마침내 양편 모두 지쳐버렸다. 그리하여 루이 15세의 외무대신 수아죌과 마리아 테레지아의 고문 카우니츠가 동맹을 맺었다. 그들은 이 동맹이 임시방편으로 끝나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두 왕가가 혈연을 맺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천성적으로 프랑스 왕비보다는 말괄량이의 기질이 다분했다. 그녀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역시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고, 죽는 순간까지 딸에 대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아낌없는 충고에 같은 어머니의 입장으로써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부디 그녀가 돌아와 주길 바랐다.
“부디 네 머리를 훌륭한 독서로 채우도록 하여라. 독서는 다른 그 누구보다도 네게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나는 두 달 전부터 수도원장의 독서 목록을 기다리고 있는데 네가 독서를 게을리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말이나 당나귀 같은 짐승이나 독서하도록 정해진 시간에 딴전을 부리는 법이다. 너는 그림도, 음악도, 춤도 혹은 다른 학문도 제대로 능숙하게 하는 것이 없지 않느냐. 그러니 겨울인 지금 독서를 소홀히 하지 말아라.” 그녀는 어머니의 이러한 충고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신분에 맞는 교양을 쌓기 보다는 화려함과 밤 문화의 노예가 되어 갔다. 백성들이 무거운 세금을 내기 위해 새벽에 일하러 나가는 사이 그녀는 즐거움을 찾고자 교양을 멀리하고, 도박판과 가면 무도회장을 즐겨 찾았다. 하지만 이 모든 허물은 루이 15세라는 엄청난 숲에 가려져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그녀가 프랑스의 주인이 되었을 때, 즉 그녀 자신이 숲이 되었을 때 입출력의 결과는 확실한 법이다. 모든 사람이 환호를 보내고 있을 때 단 한 사람 마리아 테레지아는 우울한 펜을 들어야 했다. “나는 너의 새로운 지위에 찬사를 보내지 않겠다. 그 지위는 값비싼 희생을 지불하고 획득한 것이다. 그리고 네가 좋은 시할아버님의 너그러움과 배려 덕분에 지난 3년간 누려왔던 생활, 너희 국민의 동의와 사랑이 너희 내외에게 가져다준 바로 그 평온하고 더 없는 생활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을 때는 값비싼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국민의 동의와 사랑이 너희에게 그런 생활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은 지금 너희들이 자리한 현재의 지위에 큰 이점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지위를 지켜갈 줄 알고 국왕과 안녕을 위해서 정당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너희 내외는 아직 너무 어리고 짐은 무겁다. 그래서 나는 근심하고 있다. 정말 걱정이 된다..... 내가 너희에게 충고할 수 있는 것은 매사에 너무 서둘지 말라는 것이다. 만사를 자신의 눈으로 자세히 보고 아무것도 변화시키려고 들지 말고 스스로 전개되게 내버려 두어라. 그렇지 않으면 혼돈이 생기고 음모가 끝없이 끼어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딸아, 너희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혼란에 빠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예감은 훗날 딸의 목을 단두대에 올려놓게 된다는 점에서 어머니의 한숨이 어떠하였으리라는 것을 짐작해 본다. 선천적으로 경박하고 쾌할한 성격 탓에 놀기를 좋아하고 자기 멋대로인 그녀를 더욱 부채질한 사람은 바로 남편 루이 16세이다. 루이 16세는 마리 앙투아네트와는 달리 차분하고 독서와 사색을 즐겼지만, 평온만을 지향했기 때문에 루이 16세의 결단이란 남이 하자는 일을 따라할 줄밖에 몰랐다. 아내의 경박하고 여왕으로써의 체통을 지키지 못함을 꾸짖어야 할 왕이 도리어 요란스러운 아내의 취미를 후원해 주고 있었으니 당연히 마리 앙투아네트로써는 남편을 깔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쾌락의 질주는 멈출 줄 모르고 무섭게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녀가 아침에 제일 먼저 눈을 떴을 때 했던 걱정은 도시나 나라의 소식이 아닌 오늘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왕비는 즉위한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아 자신의 금고를 옷과 장식품으로 모두 탕진해야만 했다. 날마다 더 아름답고 값진 새 보석을 사기 위해 사방에 빚을 졌다. 어머니는 이러한 소식을 듣고 딸에게 “너는 대체 언제나 철이 들 테냐?”라고 절망적으로 편지를 썼다. 그런 경박한 행동 때문에 딸이 명망을 잃을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 넓은 그녀의 남편은 아내에게 연금을 두 배로 올려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돈궤는 항상 구멍이 나 있었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딸에게 격정을 좇아 행동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또 경고했다. 우리가 보내는 하루의 모든 시간을 즐거움으로 채울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다음 날은 더 큰 행복을, 더 큰 쾌락을, 더 큰 환락을 끊임없이 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도 결국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 채 허무한만 남을 것이다. 만사가 남을 보이기 위한 삶으로 채워진다면 그 삶은 쭉정이에 불과하다. 그녀는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행복에 잠겨 그 대가로 왕관과 생명을 지불해야만 했다.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에는(백성) 불행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카니발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쾌락의 광란은 급경사를 그리며 치솟아 절정을 이루었다. 유행에 급급한 왕비는 경마장, 오페라 극장, 가장 무도회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동이 트기 전에 귀가하는 적도 없었고, 왕과의 침상도 기피했다. 자포자기한 메르시 대사는 빈에 연거푸 절망적인 보고를 보냈다. “왕비마마께서는 외적인 품위를 완전히 잃으셨습니다.” 마치 악마가 이 젊은 여인을 사로잡은 것처럼 어머니의 그 어떠한 질책도 오빠 오제프 황제의 훈계도 무시했다. 오제프는 절박하게 어머니의 해묵은 교훈, 즉 독서에 몰두하라는 것, 2시간의 독서는 많지 않으며 그 시간은 나머지 22시간을 보다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요제프의 설교집에는 그녀가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심상치 않은 일이 예견된다고 했다. 그녀가 언제까지나 그런 상태로 계속 된다면 혁명은 끔찍할 것이라는 점쟁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러나 10년이 무심히 흐르고 나서야 마리 앙투아네트는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하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볼 수 없는 그녀의 미래를 보고 있는 독자로써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목걸이 사기 사건으로 인해 로앙 추기경이 국외로 추방되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에서 가장 음탕하고, 가장 비열하고, 가장 음흉하고 가장 압제적인 여자라는 악평을 뒤집어써서 어떻게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파리로부터 천둥 같은 함성이 베르사유 정원을 향해서 무섭게 몰려올 때 조차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혁명이 그녀를 이 좁디좁은 로코코의 무대에서 완력으로 거세게 질어내려 세계사라는 위대한 비극의 무대 위에 올려놓았을 때에야 비로소 운명이 자신의 영혼을 강하게 만들었다. 한 나라의 왕비라는 명예 때문이기 보다는, 단두대에 올라가면서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왕자의 왕위 계승 때문이었다. 그녀는 불행해지면 불행해질수록 더욱 품위 있는 왕비가 되어갔다. 왕은 끝내 왕답지 못하게 시대 속에 사라져 갔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보석처럼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고독이 완전해 졌을 때야 비로소 처음으로 어머니가 자주 말해왔던 것에서 그녀는 위안를 얻었다. 난생 처음으로 책을 충혈된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궁정에서 태어나 왕실에서 수 백 개나 되는 방을 소유했던 사람이 이젠 창살이 쳐진 좁은 반은 지하에 묻힌 어두운 방안에 지내게 된 운명이 만들어 낸 대조적인 비극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페르센이라는 순수하고 아름답고 정열적인 사랑을 받는 여인, 그렇게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났다.
개인적으로 놀라운 사실은 그녀의 아들 사건이다. 그녀는 지극적인 희생으로 아들을 프랑스 왕으로 만들기 위해 어두운 감옥에서 조차 포기하지 않고 왕세자를 교양 있는 교육받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은 의도적으로 왕세자를 정신적으로 최하위 교육받지 못한 시민계급에 머물게 할 심산으로 아이를 어머니의 품안에서 빼앗아 갔다. 공안위원회의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어느 날 어린 왕세자가 자위행위를 하다 걸렸는데, 이러한 악습을 누구한테서 배웠는가하고 다그치자(강요에 못 이겨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어머니와 고모가 자기에게 그런 몹쓸 짓을 시켰다고 대답했다. 계속 질문을 퍼붓자 자기를 가끔 잠자리로 불러들였으며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했다고 말하도록 만들었다. 교육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스럽고 한심한 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루이 17세가 되어야 할 왕세자가 그냥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니 그들의 계산처럼 교육받지 못한 최하위 시민 계급에 머물러 어떻게 죽은지 조차 모르는 인생이 되어 버렸다. 교육의 힘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역사적 사실이 이토록 나를 우울하게 만들지 모른 채 이 두꺼운 책을 덮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