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정신과 실습 시간은 약간의 용기와 배짱이 필요하다. 우선 굳건한 철문을 통과하여 폐쇄병동으로 들어간다. 병동에 들어가자마자 몇명이 우리를 둘러싸고 여기저기 만져보거나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쏟아낸다. 당황스럽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어떻게 행동해야할지 혼란스럽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정리를 해준다. 뒤이어 교수님이 들어오시고 회진을 돈다. 특별히 언급할만한 케이스가 있으면 간략하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주시고 몇가지 난해한 질문을 던지신다. 우린 그새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교수님이 나가시고 우린 각자 맡은 환자들과 이야기도 하고 같이 운동도 하며 랍보(rapport)를 형성하려고 애쓴다. 결코 쉽지 않다. 대화 자체가 힘들뿐더러 똑바로 눈을 응시하기도 힘들 때가 있다. 그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초보 의대생에겐 진단은 더더욱 험난하다. 한달간 폐쇄병동 실습을 하며 힘겨웠던 짧은 기억들이다.

 이 책은 신경심리학자인 저자의 임상 기록이다. 그러나 단순한 임상 기록은 아니다. 그저 눈에 띄는 케이스를 나열하고 거기에 저자의 간략한 소견을 담는 여타의 책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서두에 역자가 밝혔듯히 3인칭의 시각으로 환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1인칭의 시점으로 환자를 이해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환자를 깊이 이해하려는 저자의 진솔한 의도가 엿보인다. 흔히 말해서 정상이 아닌 사람들, 그 중에서도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닌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성적인 대화가 안되며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기에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 본인이 의도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론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각 환자들의 사례를 병변에 따라 소개하며 그들의 이상 행동을 보여준다. 거기에 본인이 경험했거나 상상하는 모습을 접목시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워낙 '신경정신학'이 완전히 밝혀진 학문이 아니고 용어 또한 난해하다. 용어 하나하나가 엇비슷하여 헛갈리기가 쉽다. 역자도 번역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을 것이다. 솔직히 몇몇 부분은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그리고 '신경정신학'은 수치나 통계, 또는 그림과 같은 것으로 쉽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기에 이해하기 힘들고 지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난해하고 지루한 학문을 맛깔나게 기술하고 있다. 판타지가 섞여있어 간혹 애매모호 했지만 매끄럽게 잘 넘어가고 있다. 

마음 : 명사. 세상과 체험을 의식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하는 사람의 한 부분. 의식과 생각의 기능.
두뇌 : 명사. 척추동물의 두개골 속에 들어있는 부드러운 신경조직으로 되어 있는 기관. 감각, 이성, 신경활동의 중추 센터로서 기능을 발휘한다.
자아 : 명사. 자기 자신을 남들과 구분하게 해주는 어떤 사람의 본질적 존재. 특별히 내성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p.185

 신경정신과 수업 시간에도 한번 언급이 되었던 부분이고 여전히 머릿속에서 완전히 정립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뇌와 정신의 관계이다. 두뇌, 정신, 마음, 영혼, 자아.. 여전히 완벽하게 구분을 하기 쉽지 않다. 저자 역시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인다. 단순히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의 사례와 저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었다. 유물론, 관념론, 이원론 등을 소개하며 각각의 관점들을 비교하여 신경심리학의 근간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판타지 영화에 나올 법한 텔레포테이션과 복제인간의 이야기를 하며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한다. 복제된 '나'와 원본인 '나'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여기서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우린 모두 잠재적 장애환자이다. 언제 뇌를 다쳐 저자가 기술한 환자가 될지 알 수 없다. 물론 죽기 전까지 뇌를 다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암튼 이 책을 통해 뇌에 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되며,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결과를 바라보며 지금 숨쉬고 살아가는 '나'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두뇌, 자아, 신경심리학

 지물탄트(Simultant) :  simultan(동시성의)과 -ant(사람을 뜻하는 접미사)가 결합된 조어.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바쁜 현대인을 풍자한 신조어
 보헤미안(Bohemian) :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시인이나 예술가

 바삐 살아가는 요즘 시대에 ’느림의 미학’이 유행하고 있다. 정신없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깐의 여유와 휴식을 가지고 천천히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요즘 많아졌다. 그러나 휴대폰은 연신 울려대고 수많은 메일이 스팸메일과 함께 쏟아져내리고 우린 여전히 온라인에 접속해있다. 귀에는 MP3 이어폰으로 노래소리가 흘러들어오고 인스턴트 식품을 씹어대며 나의 시전은 컴퓨터로 향하여 블로그를 관리하고 있다.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고 있는 지물탄트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이다. 문명이 발전하고 놀라운 기술로 인해 우리의 삶이 편리해지고 우리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자유로움을 만끽할려는 디지털 문명을 이룩했는데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디지털 문명 속에서 자유를 잃어버리고 지나친 정보의 과잉에 숨막혀하며 통신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멀티태스킹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사람은 직장 내에서 신임을 받기 마련이다. 어떠한 일이든 척척 해결해나가며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해결하는 것은 비단 슈퍼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직장인들에겐 이러한 멀티태스킹을 요구한다. 나역시 멀티태스킹에 일가견을 있었고 결과 또한 좋아 나름 만족하며 살아왔다. 아무래도 부족한 시간에 많은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멀티태스킹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밀물처럼 쏟아지는 데이터에 묻혀 정신을 못차릴 때가 허다했고 제대로 습득했다고 자부했던 정보마저 뒤죽박죽 엉망이 된 경우도 있다. 그러면 또 시간에 쫓기며 더욱 멀티태스킹에 집중했던 적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참 힘들게도 살았다. 왜 그랬을까? 옆사람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되니까..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수묵화를 배운적이 있다. 그 중 아직도 기억 나는것은 ’여백의 미’다. 그 당시에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는데 무슨 아름다움이 있으리요..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않고 보냈던 달콤한 휴식을 맛보고나서야 그 아름다움을 조금 알 수 있게 되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인들을 보며 떠올리는 단어가 ’빨리빨리’란다. 물론 이런 국민성 때문에 세계 어디에도 이루지 못한 기적의 신화를 창조했었다. 허나 시간이 지나며 하나하나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주변을 되돌아볼려고 할땐 너무 늦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한국에서만 보이는것은 아니다. 전세계가 직면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디지털 통신으로 전세계가 지구촌이 되었지만 엄청난 과잉의 정보 물결에 휩쓸려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실정이다.

 저자는 이제 그만 정지하라고 조언한다. 지쳐있는 디지털 보헤미안들에게 멈추고 절제하라고 이야기한다. 정보라는 마약을 멀리하고 온라인 접속 시간을 줄이라고 한다. 그것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음미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라고 한다. 나의 삶을 되찾고 삶의 즐거움을 회복해야겠다. 비단 게으르게 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통신망에 갇혀서 쉴새없이 움직이며 삶의 주체를 빼앗기지 말고 한발짝 물러서며 나의 삶을 바라보면서 일은 그저 삶을 움직이는 수단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긴장을 푸세요. 여기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료를 올리지도 않습니다. 댓글도 달지 않습니다. 만나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아무도 보지 않습니다. 당신은 혼자입니다.’ p.20



느림, 지물탄트, 보헤미안, 멀티태스킹

 인간의 역사는 발명의 반복으로 인해 번창한 역사이다. 정말 놀랄만한 위대한 발명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편리해졌으며 풍족하고 윤택한 오늘을 살고 있다. 뛰어난 발명가들에 의해 위대한 발명도 있었다만 대부분의 위대한 발명은 생각지도 못했던 우연찮은 곳에서 발견되거나 일상생활을 하다가 떠오르는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트린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아무나 발명한 것은 아니고 탁월한 관찰력과 애정어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세기의 발명품을 탄생시켰다. 

 아담한 사이즈의 책은 표지도 깔끔하고 분량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했다. 지은이가 좀 독특하다. 발명연구단..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많은 발명품들에 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발명품의 역사나 발전과정 뿐만 아니라 발명가들의 삶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연구하는 단체란다. 뭔가 심오하고 진지한 이야기가 전개될것 같았지만 머릿말에서 밝혔듯히 위대한 발명에 얽힌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일상대화에 쓰일 수 있는 화젯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가 강조했듯히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간결하고 친밀한 어투로 가볍게 설명하고 있고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에피소드를 읽으며 높아만 보였던 발명가들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었다.

 변리사인 친구가 있어서 특허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말 획기적인 발명을 하여 큰 돈을 벌 수 있었는데 특허를 내지 않아 특허 신청을 한 다른 사람에게 모두 빼앗긴 경우도 들었고 하나하나 세세하게 다 특허를 내어 나중에 여기저기서 로얄티를 받는 경우도 들었다. 단순히 편의를 위해 발명을 하던 시대는 온데간데 없고 지금은 돈이 결부되어 치열한 특허전쟁을 치루고 있다. 발명하느랴 고생한 댓가를 보상받아야 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는건 왜인지..

 암튼 책에서는 고상하고 어려운 발명품 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의례 사용하고 있는, 현재는 당연히 사용하고 있어서 이것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지 못할 발명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짤막한 이야기로 구성되었고 너무 깊숙히 파고들지 않아 읽기 편하고 흥미진지했다. 마지막에는 서비스로 일본 특유의 톡특한 발명품을 몇가지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에 웃으면서 책을 덮으며 저자가 바랬던 궁금증과 흥미를 제대로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발명, 발명연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