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짜증나는 일에서 벗어난 유쾌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눈물이 날 만큼 웃긴 이야기가 절실했다.
그래서 작가나 제목보다는 순정 반짝 코미디라는 광고문구가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게 어떻게 코미디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읽을수록 속았다는 생각이 점점 짙어진다.
작고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줄 아는 아키노부와 테츠노부 형제의 이야기를 과연 코미디라는 단순함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마미야 형제는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얼뜨기에 기분나쁜 사람들로 비춰지지만 그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금새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알고 보면 정말 나쁜 사람 아무도 없다.” 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도 알고 보면 누구보다 순수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오해하고 비난해도 다른 사람들이 기분나빠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착한 사람들이기에 그들은 오해를 풀 수도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오해하고 경멸하더라도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해주는 형제가 있기에...
“이런 나여도 괜찮아!” 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가면서 우리의 어린 시절을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며 살아가지만, 그들 형제들은 그런 순수함을 가지고 아직도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
어느새 훌쩍 자란 나에게 어릴 때와 같은 그런 순수함이 남아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일상을 함께하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그들은 어린아이같이 많은 것을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으며 살아간다.

단출한 인간관계, 아직 연애경험 한 번 없는 그들이지만 그들은 행복하다. 작은 삶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들은 많은 것을 욕심내며 늘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닌 것에 아쉬워하고 모든 곳에서 주인공이어야만 성이 차는 우리모습보다 더 멋지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알 수 없고 엉뚱한 이야기를 원했기에 너무나 일상적인 이야기에 조금은 실망했다. 예측 불허의 일과 황당함이 필요한 내 마음이 오히려 일상에 더욱 구속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답답함이 느껴졌다. 일상을 벗어나고픈 나에게 일상의 소소함을 찾아 즐기라는 말이 지금은 그렇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것 같다.
좀 더 마음이 쾌청한 날 읽었더라면 좀 더 즐겁게 즐길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법정스님의 마지막 산문집이라 더 많이 눈이 갔다.
이전에 <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를 읽으면서 내 마음에도 고요함이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는 말이 스님의 마지막 말인 듯하여 오히려 가슴이 저린다.

 

 

“언제 어디서 인생을 하직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이 되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언제 어디서나 삶은 어차피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순간들을 뜻있게 살면 된다. 삶이란 순간순간의 존재다” p41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p57

"지금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를 떠나 따로 어디서 찾지 말라.“p116

"죽음이 삶을 받쳐 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 p162
 


내가 과연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면, 열심히 살아 왔다고 생각이 되는 순간에도 씁쓸하게 밀려오는 후회라는 그림자가 늘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꽁꽁 옮아맬 때가 있다.
내 삶에 후회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고 내가 당장 죽음을 맞이한다는 생각조차도 상상할 수 없다. 그러기에 내가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고 남에게 상처주지 말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은 참 쉬운 말이듯 하지만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처럼 가슴속에 기다란 상처가 더운 여름날에 덧나 얼얼한 날에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도대체 후회가 없는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묻고 싶은 그런 날이다...
그럴때면 다시 한번 이 책을 펼쳐본다...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
동화같은 한편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내 삶이 이렇게 지루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펼쳐든다.
이 책을 읽다가 보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패션, 뷰티, 삭막한 일상, 비정상적으로 다이어트에 목숨 거는 여자들.....
하지만 부유한 미국의 일상과는 다르게 지독하게 한국적이라는 것이 다르다면 확연히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서정....
아프리카의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기부금을 보내면서도 에르메스와 같은 명품백에 목숨을 거는 통에 늘 적자의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벽이란 있을 수 없듯이 이서정 그녀 또한 완벽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모순투성이인 우리들의 일상사의 모습들을 잘 보여준다.

그녀는 패션지의 기사로 늘 정신없는 일상에 시달린다.
눈, 코 뜰새없는 생활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우리네 직장인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녀에게 시도때도 없이 밀려드는 아픈 과거를 감추기 위해서 오히려 더욱 일에 매달렸을 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쌍둥이 언니의 성수대교 붕괴로 인한 죽음....
사랑했던 쌍둥이 동생의 죽음으로 가족을 떠나 봉사의 삶을 택한 든든한 정신적 기둥이었던 또다른 쌍둥이 언니의 봉사단으로의 기약없는 떠남....
7년전 이런 모든 아픔을 간직한 서정을 5분 만나고 사라진 맞선남....
이서정은 과거에 짓눌려 과거를 잊기위해 현재를 못살게 군다.
그것이 그녀를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처가 이서정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날 비참하게 바람맞혔던 맞선남 박우진도...
죽이고 싶도록 싫은 마녀같은 선배이자 차장인 박기자도.....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어쩌면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에게 가슴속의 작은 상처를 하나쯤은 안고 살아간다.

“삶은 여전히 풀기 어려운 문제 같다. 그저 답을 찾기 위해 안간함을 쓰고 있는 모두를 안쓰러워 할 뿐,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p330
결국 비참한 과거를 이기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도 없이 혼자 가야만 하기에 더욱 쓸쓸한 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밝은 미래를 꿈꾸며 산다...
비록 과거의 삶에 얽매이고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이 소설처럼 모든 문제가 이렇게 한 순간에 해결되는 날이 오는 것일까?
단순하지만 않는 인생이지만 종국에는 이렇게 단순하게 해결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게 해주는 소설....그것이 소설 <스타일>의 가장 매력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