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일들이 우리들을 살게 만든다는 표어에 맞게 사사로운 그녀의 일상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집어들때만 해도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난 유머러스한 잡담을 한껏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오히려 나는 지금 이런 가벼운 이야기 보다는 무거운 이야기를 원하고 있었음을 이 책을 읽으며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러기에 그녀가 주로 무거운 소재로 소설을 다루었음을 인지하고 그녀의 소설이 아니라 굳이 가벼움을 찾으려한 에세이를 집어들게 된 것을 후회했다.
그래도 읽기는 계속되고 결국 끝을 보겠다는 오기로 책의 마지막장까지 부여잡으며 책과 씨름을 했다

솔직히 이번 글을 보면서 그녀의 작품에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조금은 놀랐다.
물론 가벼움이라는 소재에 맞추려는 그녀의 의도된 모습도 있었겠지만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전의 글들의 심각함을 억지로라도 벗어버리려는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조금은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무엇이 그리 겁날 게 있어? 까짓것 상처밖에 더 받겠냐고. 무엇이 그리 겁날게 있어? 까짓것 상처밖에 더 받겠느냐고. 그리고 인생에 상처도 없으면 뭔 재미로 사냐 말이야.” -p64
 

"삶은 꼭 한 가지 빛깔로만 칠해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p133

"내 맘대로 되는 일 하나도 없다 .그래서 순간순간이 재미있다.“ -p154

“살아 있는 것일수록 불완전하고 상처는 자주 파고들며 생명의 본질이 연한 것이기에 상처는 더 깊다.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 살아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 싫지만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처를 버리기 위해 집착도 버리고 나면 상처가 줄어드는 만큼 그 자리에 들어서는 자유를 맛보기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내리는 신의 특별한 축복이 아닐까도 싶다.” -p171

나의 뇌리에 들어오는 다음의 글귀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벼움에 대해서 쓰겠다는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어쩐지 나에게는 삶에 대한 육중함이 전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육중함도 언젠가는 시간이 흐르면 나에게 가벼움으로 줄어들 수는 있겄만, 아직 나에게는 그런 가벼움을 느끼기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p25

“이 나이까지 살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비슷한 기억을 되풀이하며 어디로 가고 있을 뿐 처음은 없다는 사실 정도이다.” -p179

책을 읽은 후  이 글귀들이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다.
아직은 반쯤밖에 살지 않은 인생이기에 어쩌면 죽음을 기다리는 날보다는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청춘이건만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여전히 남는다.
그리고 또 먼 훗날의 언젠가는 이렇게 지나간 시간을 또 아쉬워하며 안탁까워 할지 모른다는 생각들면서 혼자서 쓴웃음을 짓는다.

이번 책에서는 박완서 작가의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소소한 일상은 특별할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우리 이웃의 모습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였기에 오히려 마음편하게 공감하며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차피 우리네 인생은 반드시 누군가보다 특별하고 화려해야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소소함이나 평범함 속에서 그 의미가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이런 평범함이 어쩌면 떠벌떠벌 자신을 자랑하는 이들의 글과는 다르게 가슴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의 우리정부도 자유화의 물결에 따라 자유무역주의를 택하고 열렬히 지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계속되는 자유경쟁의 확대는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를 가지고 오고 결국 모두에게 해가 되는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흥미롭다.
폐쇄주주의 대표로 여겨지던 소련의 붕괴로 인한 공산주의의 몰락을 보면서 민주주의 추구와 그와 뗄 수 없는 자유주의는 인류가 잘 살아가지 위한 필수적인 도구라는 생각을 이제까지 살면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이에서 세계라는 무대와 맞서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무역을 통한 성공만이 결국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다시 한번 되물은 적도 없다.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라는 책에서 세계의 기아가 존재하는 이유가 결국 선진국들의 자유주의 경제체제 그림자임을 고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쁜 사마리아인으로서 선진국은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개발도상국에게 완전자유체제라는 무거운 굴레를 씌우고 있다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소위 선진국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내가 한 대로 행동하는 것 아니라 내가 이야기 한 대로 행동하라.” 라는 말로 관세철폐 등의 개방를 강요함으로써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을 저해하고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으로 올라올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비난한다. 

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사악한 삼총사들이 주장하는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인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을 하나하나 밝혀 나간다. 그리고 결국 개발도상국들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문화, 부패한 정부, 종교, 국민성, 재정운영의 건정성 등에 기인한 것이기 보다는 신자유주의 체계라는 잘못된 세계의 정치체제와 구조에 있음을 말한다.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완전한 자유 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여섯 살 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성공한 어른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자립을 했기 때무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여섯 살 먹은 그 아이를 일터로 보내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립을 한 것이지,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 다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2장에서 논의한 바처럼 부자 나라들은 자국의 생산자들이 준비를 갖추었을 때에만, 그것도 대개는 점진적으로 무역을 자유화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 -p119

그리고 이제까지의 세계의 경제발전을 이끌어 온 것이 일류경제학자가 아니라 법률가, 공학가... 등등 경제학자와는 무관한 이들에 의해서 발전되어 온 사실 또한 매우 흥미롭다. 우리나라도 또한 이러한 결론에서 벗어나지 않음에 더욱 눈길이 간다. 1960~70년대 가장 경제성장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독재정권 시기였던 박정희정권에서 중화학공업의 성장을 이끌어 간 것도 걸출한 경제학자가 아니라 공학자 오원철이었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로울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눈길을 끌었던 것은 맨 마지막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만든 상파울로 2037년의 시나리오였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암울한 이야기이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기에 더욱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러나 저자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모두가 바람직한 경제적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1946~ 70년대의 희망을 기억하며,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태도를 촉구하고, 그때의 그날이 다시 오기를 기다린다. 
시종일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주장하는 소위 나쁜 사아리아인이라 불리우는 선진국의 행태를 비난했지만 종국에서가서는 그들이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도덕적 윤리심에 마지막 희망을 가진다는 그의 결론이 조금은 황당하긴 하지만 우리가 신봉하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허울의 실태를 바로 알게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