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2007년 나라를 뜨겁게 달군 ‘삼성 비리 폭로’ 사건을 떠올렸다.
이건희 회장은 상상도 못할 비자금을 착복했고, 집행유예의 선고만을 받고 풀려났다.
그리고 지금은 버젓이 사퇴한 삼성의 회장 자리를 다시 꿰차고 앉아있다.
좀도둑이 1억만 훔쳐도 징역살이를 하는 세상이지만 소위 황제라 불리는 회장님에게는 몇조원 정도 탈세와 각종비리를 저질러 착복했다고 해도 법의 잣대는 비껴간다.
그러기에 작가가 말하는 우리사회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라는 말을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여 왔다.
아르헨티나나 멕시코처럼 부유했던 나라도 하루아침에 망할 수 있다는 말들을 쏟아내며 우리나라도 하루 아침에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말로 오히려 이러한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다졌고, 하루 아침에 실업자로 내쫓기는 IMF는 우리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 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대기업이라고 하면 지레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부패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받아들이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부당한 기업의 비리를 어렵게 고발한 자를 오히려 배신자, 변절자로 취급되는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허수아비춤>에 그려진 세상은 소설이기에만 있을 법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려움 속에서 피어난 건전한 비판이 나라를 망치는 소리로 매도되고,  없어져야 할 기업의 부정 부패가 너무나 당연히 인정되는 세상속에서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이 컸고,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국민경제에 더 이상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

라는 이유로 그들의 부패를 덮어주면서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결과인 듯 몰아가는 정치, 언론, 법조계 등이 손발을 맞추고 있는 이 나라에서 거대 권력자들인 그들을 처벌하기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그러한 일들이 있거나 말거나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서적은 자기계발서적이고,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은 부자인 자들을 욕하지 말고 니가 한 번 돈을 벌어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생각을 밀어버리고 특권층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규칙 속에서 자본에 이끌려 큰 잘못도 사소한 잘못으로 바꿔버릴 수 있는 그들을 동경하고 그 특권층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을 한다.
그러한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좋든 싫든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고 이제까지 그려온 자화상이라는 말이 커다란 실망감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꾸며, 거대 권력에 맞서려 하지만 그 힘은 너무나 미약하고 허약하기만 하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 길을 가야하고, 우리도 그 길을 가야하기에 어쩌면 너무 많이 들어왔고, 그래서 너무나 뻔한 내용으로 누구나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내용이지만 저자는 늘 그들의 부패를 경계하고 그들을 감시하는 일에 모두가 참여하기를 말하고 있다.

“인류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노예는 평생자유를 얻을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의 잘못을 쉽게 잊어버릴수록 우리는 영원히 자본에 묶여진 그들의 노예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과연 지금 우리는 대기업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속에서 노예가 아닌 하나의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처음 <아리랑>이라는 책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다.
뭘 하나 진득하니 끝까지 몰입하는 끈기가 있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단권으로된 소설을 읽는 맛에 취해버려 좀 더 간단하고 간결한 결론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12권이라는 책의 수에 기가 눌려 버렸다.
그래서 첫 권을 시작하기 조차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나오는 생소한 전라도 사투리를 보며 몇날 며칠이 계속 이러한 생소함과 어색함으로 가득채워 질 것 같은 걱정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글을 읽어나갈수록 한 낱의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오히려 생소한 전라도말의 구수함이 전해져 오면서 그들의 순박한 농꾼의 모습이 오히려 더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 책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이후의 모습에서부터 1945년 우리나라가 독립될 때까지의 한반도, 우리 민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라도를 중심무대로 1900년대를 기점으로 일제의 조선침탈과정과 조선의 식민국가의 모습, 그리고 이것들을 바로 잡으려는 자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처음의 시작은 주로 억압받는 민초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가난에 찌든 민초들은 일제의 숨은 속셈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나 무지했고, 눈치 빠른 자들은 조국을 위하기보다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철저히 일본의 편에 서서 그들이 조선을 침탈할 수 있도록 길을 닦는다.
처음의 민족 분열은 여전히 존재하는 봉건사회의 잔재와 그들에게 괄시받던 이들의 서러움에서 양반임네 떠드는 이들을 떠받드는 사회에 대한 복수로 친일로 돌아선 사람들에서 부터 시작해서 점점 식민지배가 길어질 수록 좌절한 지식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충실한 친일파로 돌아선다. 그들은 어느새 일본인보다도 더 악독한 지주로 또는 비열한 대자본가로 변모한다.
그리고 체통을 지키고 이 나라의 주인인양 행세하는 양반이라는 작자들도 자신의 가문을 보존하고 개인의 출세를 위해서 일본에 협조하기에만 급급하다.
결국 고통받는 것도 힘없는 민초들이었고, 나라를 간절히 되찾으려 한 것도 힘없는 민초들이었다.
조선은 왕과 양반의 나라가 아니라 민초 한사람 한사람 그 자체가 조선이라는 말이 그러기에 읽은 후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글을 읽는 내내 계속해서 꺾여지고 무참하게 도륙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해져 온다.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픔이 글을 읽는 내내 가슴속에 돌덩이가 놓여있듯 답답하다.
그러기에 역사를 알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작가의 말이 더욱 무게감을 실으며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러한 말들이 역사적으로 우리민족을 죽이고 도륙한 친일자들이 단 한명도 사형집행되지 않은 체 오히려 이들을 보호하려는 이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아직까지 사회지도층들의 부패는 여전하고 친일자들이 칭송받고 그들이 여전히 고위계층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 우리는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이 되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식민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청산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았으며, 또한 아무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에서 벗어났다고 외치고 있지만, 정말 우리가 그 그늘에서 벗어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다 깨어지는 때에 혼자 성키 바랄소냐
 금이야 갔을망정 벼루는 벼루로다
 무른 듯 단단한 속을 알 리 알까 하노라“  

-최남선 <깨진 벼루의 명>=>(친일을 안할 수 없는 입장을 시로 표현할 글)

우리는 변명이 아니라 옳은 길을 가기위해 늘 자신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이러한 변명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어차피 재벌과 정치꾼들이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에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고, 책은 읽은 후에는 가슴이 아려왔다.
한 시대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들이 꿈꿔오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현재를 살면서 아직도 과거라는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진정한 삶이란 도대체 어떠한 삶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젊은 날의 푸른꿈만 쫓으며 살기에 세상은 너무나 가혹하고, 박제되어버린 비겁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도 없었던 이들에게 남은 것은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보다는 현실에 부딪혀 산산히 부셔져버린 꿈과 비참한 현실의 그림자였다.
그 그림자는 벗어나기에는 너무나 길고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군사 독재시대에 자유를 꿈꾸던 젊은이들은 한떨기의 꽃처럼 힘없이 꺾어지고 흩어져 버렸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져버렸어도 여전히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슬픔이 전해져 온다.
시장에 즐비하게 내다 팔아지는 소금에 절여진 자유를 잃어버린 고등어가 아니라 푸른 바다를 꿈꾸던 고등어가 되기를 꿈꾸던 젊은이들의 덧없음과 허무함이 그들의 삶의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암흑의 시대였기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거나 사람을 사랑하는 일조차 사치로 여기던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까지 희망이라는 단어를 부여잡으며 견뎌야 했고, 여전히 그것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애환이 있기에 더욱 가슴속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냥 옛사랑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연애소설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그 시절에 고통받은 많은 사람들의 시대적 아픔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시절에 대한 끝없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는 그러한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젊음이로서는 그들의 영웅적인 자아도취 대한 이야기가 거부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은 엄청난 삶의 무게를 감당해가며 젊은시절을 고민하며 살았고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냐? 물으며 현재를 사는 젊은이들을 무능하고 생각없는 이들로 취급하는 그들의 사고 방식에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당신네들과 같은 아픔은 아닐지라도 우리네 젊은이들도 어쩌면 당신들과 다른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못하는 그들에 대한 강한 반항심이 가슴속에 솟구쳐 오른다.
그러기에 읽는 내내 그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그들에 대한 연민과 거부감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같다.
결국 주인공 노은림의 죽음으로 허탈하게 손에서 책을 놓으며 처음부터 예상했던 결말이건만 예상하지 못했던양 허전함으로 가슴속을 쓸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