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 마지막으로 쓰인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소 짧다. 그리고 다른 어떤 작품의 주인공 캐릭터보다도 가장 계획적이고 치밀한 범죄자이다. 햄릿이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복수하려고 했고, 오셀로가 아내를 살해한 것은 왜곡된 사랑과 오해로 인해 발생된 것이었다면 멕베스는 의도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하지만 멕베스가 단지 하나의 ‘살인마’로써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면 읽고 싶지 않을 것이다. 비극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오해로 인하여 주인공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수용자에게는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선택한 것은 ‘마녀들’이다. 마녀들이 등장하여 1막 1장에서 멕베스를 황야에서 만날 것이라고 다짐한다. ‘고운 건 더럽고 더러운 건 고웁다 탁한 대기, 안개 뚫고 날아가자’ 라는 표현에서 멕베스를 변화시키려고 한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두꺼비, 천둥 번개 등 따위도 암울해질 스토리를 미리 말해주고 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중간 중간에 등장하여 멕베스의 잘못된 행동을 부추긴다. ‘보여줘라! 보여줘! 보여주고 마음을 괴롭혀라, 그림자처럼 왔다가 떠나거라.’ 라는 외침의 연속이다.

  그럼 멕베스는 이 악의 유혹에서 온전히 종속당하고 마는 캐릭터인가. 처음에 멕베스는 그들과 하나가 되는 듯 보인다. ‘이렇게 더럽고 고운 날은 본 적이 없구려’ 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만큼 익숙해져있었다. 로스가 맥베스를 코도의 영주로 맞으라고 하면서 그 욕심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그 내면적 욕망이 점차 심리적인 혼란으로 다가온다. 물론 덩컨 왕을 살해하면서 더 치열해지지만 멕베스가 가지고 있는 권력욕은 언제든 누가 건드리던 꺼내질 수 있고 다칠 수 있으며 망가뜨려질 수 있는 욕망일 뿐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누군가가 멕베스와 똑같은 상황이라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실제 멕베스와 같은 행동을 벌일 수 있을까. 실제로 현대 사회에는 이런 일들이 종종 이루어지고 있어서 놀라울 뿐이다.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서 더 깊은 욕심을 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행해진 온갖 끔찍한 일들이 마치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처럼 정당방위를 내세우는 사람들, 내게는 이들도 멕베스와 같다. 결국 그 욕망은 중립적일 뿐이며 근본적인 책임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이다.

  4막 3장에 맬컴과 맥더프의 대화는 ‘맥베스의 욕망‘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맬컴 자신은 갖가지 악덕이 있기 때문에 맥베스에 비하면 훨씬 악한 존재라고 하고, 맥더프는 맥베스를 능가하는 악마는 없을 것이라며 폭군을 강하게 비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맥베스의 욕정은 악이며 내면의 폭정(쾌락 같은)은 괜찮다고 한다. 역시 ’욕망‘이라는 것이 표출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상대적인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보여주는 고민들이 모두 여러 번 생각해보도로 유도하고 있다. 이 작품도 그 강렬함에서는 타 작품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햄릿>은 어릴 때부터 어떤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란 타이틀로 친숙해진 작품이다. 오로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유명한 대사만을 기억하다가 20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햄릿을 진지하게 읽어보게 되었다. 그것도 햄릿이란 작품이 유명해서가 아니라 햄릿을 다양한 각도로 해석하려 하는 다양한 저서들을 통해서 궁금증이 증폭했기 때문이다. 햄릿에는 수많은 극적 요소들이 내포되어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는 연구도 상당히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햄릿은 수세기를 걸쳐서도 아직 논쟁거리로 남을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셰익스피어는 많은 연구자들이 말하고 있는 작품 전반에 걸쳐있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플롯이나 요소별 완성도와는 차이가 있다. 그가 쓰는 고운 단어의 미적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든다. 진짜 고전이긴 하지만 그 어떠한 고전보다도 훨씬 섬세하고 다양하다. 비록 내용이 비극이라 해도 말이다. ‘ 지금은 바로 마법의 밤 시간, 즉 말로는 그녀를 어떻게 꾸짖든 그 말의 인준에는 내 영혼이 절대 동의 말기를..’ 등의 표현들은 몇 번을 되새김질 해봐도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멋진 표현을 떠나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오묘하게 발생하는 감정의 연주곡들을 있는 그대로 음표로 표현한 기분이다. 그 음표들이 모여서 하나의 완벽한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음악은 음표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학 작품 즉 <햄릿>은 모든 구성단위에 의미를 부여해도 될 만큼 주옥같다. 

  또 그 대사들이 그냥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분명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같은 것들도 있다. 일종의 ‘삶의 교훈’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축하고 이를 보는 수용자들을 매혹시킨다. ‘귀는 모두에게, 입은 소수에게만 열고 모든 의견을 수용하되 판단은 보류해라’, ‘악담의 타격은 미덕의 화신도 못 피해. 봄의 새싹들이 봉오리를 열기도 전에 자벌레가 너무 자주 그들을 갉아먹고, 청춘의 아침이슬 속에는 전염성 마름병이 당장에라도 생길 수 있단다.’ 라는 표현들에서 그 의미를 새길 수 있다. 그 어떤 종교보다도 때로는 하나의 문학 작품이 한 사람의 가치관을 뒤흔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셰익스피어를 통해 찾는다. 

  이 작품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문화콘텐츠의 원천소스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하지만 스토리 자체로만 이야기하기에는 단순한 고전 비극의 소재라는 측면에서 큰 이슈화가 되기 힘들다. 이 작품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문학 작품에서 빛나는 언어의 마술 때문에 단순한 스토리텔링의 개념을 넘어선 그 어떤 것이 있어 더욱 매력적이라고 본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오래도록 진행되어 온 햄릿의 문화콘텐츠화에서 ‘대사의 상대미(美)’ 를 초점으로 맞춘 공연이 만들어지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물론 이미 그런 공연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햄릿>이 비극으로서의 가치가 엄청나다면 ‘햄릿의 희극화’라는 것도 시도해 볼 만 하다.

 

  목숨을 건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목숨’을 걸었다는 것만으로 그 가치는 극대화 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사랑’의 결실이 맺어졌다고 해도 ‘죽음’으로서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오셀로>에서는 베니스 공국의 원로 브라반시오의 딸 데스데모나가 흑인 장군 오셀로를 사랑하면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여기서 오셀로를 ‘흑인’으로 설정했다는 것에서부터 사회적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당시의 사회에서는 흑인의 존재가 긍정적이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결혼이라는 설정에 타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 틀 자체가 이 작품 속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비극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번쩍이는 칼들을 거두도록 하여라, 밤이슬에 녹슬지 않도록’ 라고 말하면서 카리스마 있게 지휘하는 뛰어난 장군임에도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철저히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그의 이런 점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그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데스데모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그렇다. ‘내가 온순한 데스데모나를 사랑만 않는다면 걸림 없는 내 자유를 속박하는 일 따위는 바닷 속 보물을 다 준대도 하지 않을 테니까’ 라는 멋진 표현으로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순수함을 뛰어넘는 사랑이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은 과감하게 깨져버린다. 오셀로는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아내를 죽이기까지는 온갖 복잡한 내적 갈등이 폭발한다. 이미 질투심의 과열로 잔혹함으로 무장한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의 침실에서 하는 대사가 압권이다. ‘이건 이유가 있단다, 이유가 있단다 내 영혼아...난 너를 죽여 놓고 그 후에 사랑하리...이 슬픔은 진정 사랑하기 때문에 내려치는 천벌과 같구나.’ 다시 곱씹으며 읽어봐도 여전히 매력적인 문장이다.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아내를 죽이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다. 그런 ‘살인’의 행위에 대해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에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표면적인 낭만적 문체를 넘어서 사랑에 대한 순수함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슬픈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이 작품이 4대 비극 대열에 오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기억 남는 장면이 있다면 키프로스 해안에서의 둘의 대화이다. ‘내 앞에 선 당신을 여기서 보노라니....바람은 죽음을 일깨울 때까지 불고....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듯 곤두박질 치게 하라.’라는 대사에서 비극을 암시하고 있다. 분명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죽음’을 동시에 말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한 대사는 이 작품에서 소금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