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 책을 읽은 여운을 떨칠 수가 없다. 정말, 펑펑 울어버렸다...

 2대에 걸친, 아버지..............아, 내 아버지...

 

 '아버지'의 저자로 유명한 김정현씨는, 자신의 친구 서용준의 부음을 받고 그를 기리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야기는 서용준의 삶을 다루며, 따라서 실화이다. 점점 삭막해지는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존재한다니, 그리고 이렇게 감동을 주다니...

 항상 헌신해오신 엄마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 '엄마를 부탁해'라면, 묵묵히 집안을 지지해주시는 아버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책은 바로 이 '고향사진관'이다.

 

 

다음은 프롤로그에 나오는 말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아버지가 되는 그 순간부터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아버지로서의 행위가 된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형제로서, 또는 자식으로서 하는 행위일지라도 그것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 그는 오직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손찌검을 한 것이라 해도 그것은 어머니에게 한 아버지의 손찌검이 되어 아내는 물론, 자식에게는 곱빼기의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의 의미와 그 책임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는 구절이다. 나는 한 번이라도, 아버지의 그 묵직한 어깨에 앉은 책임감을 생각해보고 이해해보려고 했을까? 괜히 시작부터 숙연해지며 울컥하였다.

 

 

 이 책 실화의 주인공인 서용준씨는, 집안의 셋째이자 장남으로서 아버지가 갑자기 덜컥 쓰러지시며 식물인간이 되자, 그 모든 것을 떠맡는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예식장을 물려받고, 아버지의 사진기를 물려받고, 어머니의 근심과 가족의 걱정을 받고, 가장의 책임과 의무를 물려받고...

 

 난 아직 세상을 마주해 본 적이 없는데, 미처 학교도 마치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아는 것이라고는 집안 살림살이밖에 없는데, 큰누나조차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동생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둘째누나도 나보다 더 철없이 여겨지는데... 사진기라고는 여태껏 휴대용 카메라밖에는 만져본 적이 없는데... 더구나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전 문을 연 예식장은 결혼은커녕 아직 사랑도 해본 적이 없는 내겐 너무 낯설기만 한데...

 

 

 

 가족은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해본 적이 없어서, 이제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하지만 용준은 선뜻 맡겠다고 나선다. 그래서 그는 군을 갔다와서 학교를 휴학하고 자신의 꿈을 포기한다. 그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대학을 나온 것 보다 유산처럼 아버지의 명의로 받은 예식장으로 사는 것이 더 안좋냐고 빈정거리고 아버지가 죽었다고 하지만, 그는 역정을 낼 뿐이다.

 

"임마 ! 내 아버지, 아직 살아 계셔!"

 미쳤다. 세상이 미쳐버린 모양이다. 아직 돈이 인생의 전부가 되기에는 너무도 이른데 벌써들 앉으면 돈,돈타령이었다.

 

 

 

 예식장 사정도 좋지가 않다. 큰누나의 결혼을 아버지의 예식장에서 올린 후, 세를 주고 남은 절반의 공간으로 아버지가 했던 '고향사진관'을 하겠다고 한다. 브랜드 대리점을 해봐라고 하지만, 그는 굳건히 사진관을 운영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사진관은 구식형태로 사진기는 아버지가 쓰던 걸로, 비디오 기사도 그대로 같이 한다고 한다. 자신의 꿈을 접고...

 

"내 인생에서, 월급, 그거 딱 한 번만이라도 받아보고 싶다. 부럽다, 새끼야......"

 

 

 

 

 그리고 어머니가 소개해준 아가씨와 선을 보고 결혼을 한다. 말수는 적지만 남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배려해주는 용준은 이희순에게 배신은 하지 않을 거라는, 약속을 하며 둘은 결혼을 한다. 아내는 그가 강인한 듯한 외양과 달리 심성이 여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서운치 않는다. 어머니는 결혼에 대해 설렘이나 기대가 없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안타까워 한다.

 

  말은 안 했어도 꿈이 있는 자식이었다.

 

 

 

 

 결혼 후 신혼여행을 아내와 가게 되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고열이라는 연락이 온다. 신혼여행을 그만두고 다시 영주로 돌아간다. 아버지의 열은 불덩어리 같다. 차라리 고통의 신음이라도 들을 수 있으면 좋을련만, 신음조차 아버지는 뱉어내지 못한다. 용준은 오열한다.

 

 "아버지...... 이대로는 안 돼요.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제게도 시간을 주셔야죠. 뭘 몰랐어요. 한이랄 건 없지만 그래도 아쉽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쉬운 게 뭔지도 모르면서 허망한 시간을 보냈어요 ..(중략).. 삶에서 가장 소중한 건 책임지는 일이라는 걸 말이에요. ..(중략)..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에게 제 의지대로 자식 된 도리를 하고 싶어요. 사랑이라면 사랑이고 도리라면 도리겠지만, 뭐든 망설이고 의심 들지 않는 마음으로 말이에요. 그런데......."

 "아버지, 시간을 줘요, 아무리 힘드시더라도 제게 시간을 좀 주세요.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 제가 어찌 그만큼이야 할 수 있겠습니까만은 절반만큼이라도 하고 싶네요.....(중략)..."

 

 

 

 

 아버지는 다시 열이 내리시고 용준부부는 안심한다. 그리고 첫딸 혜주가 태어나고, 용준은 책임에 대하여 배우게 된다. 이제 자신이 아버지가 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고향사진관은 동창들의 길목이 되어간다. 서울에, 부산에, 간혹은 미국에, 영국에 사는 친구들도 고향길에 잠시 한적하면 얼굴을 내미는 곳이 된 것이다. 동창들의 소식을 교류해가는 곳이 된 것이다. 용준의 무거운 입과 남보다 앞서 곤란에 처한 사람을 염려는 마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의 성품은 다른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어간다.

 책을 읽다보면, 언뜻 차가워보이지만 따스함이 내비치는 그의 행동에 살며시 미소짓게 된다. 그는 정말 친구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용준의 아버지 병수발의 정성은 정말 지극하다. 하지만 17년간의 식물인간의 기간에 따른 헌신적인 병수발에도 불구하고, 임종을 맞이하신다. 아버지는 임종 전에 잠시 눈꺼풀이 움직이는 걸로 많은 말을 하시고 병원으로 가서 임종을 맞게 된다. 용준의 효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서, 영주시에서는 매달 가정의 달마다 효자 효부로 선정했지만 그는 늘 거부했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공으로 내세우면 오히려 인연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리고 항상 잘해드리지 못했다며 죄책감을 느낀다. 서용준, 그는 참 올곧은 사람이었다.

 용준부부의 세 자식도 외면만의 공경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의 순수한 사랑을 배운다. 그들 부부의 사랑과, 부부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써 사랑을 알아간다. 비록 자신들과 대화를 한 번도 한적이 없는 할아버지이지만, 그들은 돌아가며 의식없는 할아버지에게 있었던 이야기 등을 말했었다. 이젠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허전한 아버지의 자리로 인해 공허해진 어머니의 눈빛도, 용준의 달램으로 장례식때도 울지 못한 통곡을 함으로써 생기를 되찾는다. 용준가족도 빈자리를 인정하며 허전함을 메운다.

 그런데, 이번에는 용준의 얼굴색이 점차 검어진다. 아내와 친구의 강권으로, 그는 병원에 가 보는데 진단 결과는 '간암'이었다.

 

 그래, 운명일 것이다. 운명이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내게는 이제 분노할 시간조차 남아있지 않다. 운명이기에 거부할 틈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은 든다. 가슴이 먹먹하다. 억울한가, 허무한가, 미련이 남는가......?

 

 

 

 

 하지만 곧 태연하게 받아들이기로 하며 죽음을 준비한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알리기를 거부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황폐해진 어머니를 위해서였다. 또한 어머니보다 먼저 가기를 원치 않아서였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위해 함께 간 부석사에서 쓰러지면서 알려진다.

 마지막 작별 때, 아내와, 어머니와, 아이들과, 친구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한다.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아버지의 산소 앞에 소나무로 수목장을 해달라고 한다. 끝내 아버지의 곁에 머무는 것이다.

 

 

 

 

 이 책에서 느낀 바가 크게 4가지가 있었다. 부모님에 대한 공경과 효도, 부부사이의 정,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간의 우정... 용준은 친구가 참으로 많았다. 그의 성품 때문이다. 이 때, 내 자신을 성찰해보게 되었다. 나는 사람의 학벌 등으로 친구를 구분짓지 않았나, 나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을까...

 작가 김정현은 귀국길에 갑작스런 불안감으로 핸드폰을 켜보게 되고, 그의 부음을 전해듣는다. 그리고 쓰던 이야기는 접어두고 새 파일로 1년을 작업하여 이 책을 짓는다. 내가 만약 용준씨와 같은 상황이라면 쓰던 원고까지 그만두면서 내 이야기를 적을, 그렇게까지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을까... 내 참된 우정은 지금 내 삶에 존재하고 있는가, 회의가 들었다.

 평소에 아버지에 대한 나의 태도때문에 죄스러움으로 눈물이 펑펑 흘렀다. 그래서 책을 읽은 후, TV를 보던 아버지를 안으며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씀드렸다. 비록 아버지는 갑자기 우는 나 때문에 놀라셨지만...

 올해 내 목표 중의 하나가 '매일 부모님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기'이다. 매일매일 실천할 것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우리 가족, 아빠, 엄마, 오빠를 새롭게 사랑할거다.

 고향사진관. 내 마음 속이 고향사진관이 되도록 하고 싶다. 남이 편히 머물 수 있는 의지처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