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언제나 시에 코를 박고 있었다구. 별을 보지 않구 별이라구 글씨만 쓰구." -준
"누군가 내면에 지닌 것과 외면에 나타나는 게 다르다는 것은 그가 세계를 올바르게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준
"나 권투 좋아해요. 사각링에 딱 갇히면 각자 무지하게 외로울거야. 온 세상에 바로 코 앞의 적뿐이니깐." -준
"그렇다. 대위의 말대로 사람은 누군든지 오늘을 사는 거니깐." -준

 한국에서는 마땅히 내놓을 만한 성장소설이 없다는 것이 항상 아쉬웠었다. 성장소설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을 광적으로 읽으며 성장소설들을 위주로 섭렵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의 대작가 황석영씨가 자신의 자전적인 성장소설을 쓰셨다는 것을 들었다. 황석영씨도 어찌 된 일인지 우리문학사에는 성장소설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쓰셨다고한다. 책이 워낙에 인기가 좋아서 구하기 힘들어서, 도서관에 예약대출로 겨우 빌린 후 단숨에 읽었다.

 

 책의 주인공은 '준'이다. 준은 20대에 베트남에 군인으로 가기 전에,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즉,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는 액자식 구성이다.

 황석영씨의 유년기 시절이 나타난 것이 '준'이다. 준은 결코 순탄한 삶을 사는 인물은 아니다. 또한 대게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그는 약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듯한 행동을 보인다. 준은 삶에 권태를 느끼는 듯 보이며, 죽음에 별로 두려움이 없는 듯하며, 실제로 자살시도도 여러번 한다. 그리고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친구들과 말을 할 때는 말을 빙 돌려서 말하는, 일명 '공중전'대화를 한다. 제3자의 입장에서 얼핏 보면 생뚱맞데 보이는 식의 대화이다. 때때로 준은 이유없이 우발적으로 행동하기도 하며, 자신의 삶에 의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의 그의 모습은 까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부조리의 인물, 뫼르소와 비슷하게 여겨진다. 다음은 준이 한 말이다.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이야. 흘러가면서 내 길을 만들거야."

 '나는 무표정하게 거울 속의 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내가 오늘 널 보내버릴거야.'

 

준에 대해 친구가 나눈 대화이다.

 "너 준이 가끔 만나니?"

 "음, 몇번...... 근데 걔는 정신이 딴 데  팔려있는 것 같아."

 "그게 누군데?"

 "몰라... 아마 자기 자신이 아닐까?"

 

 그런 준의 태도는 불안정해보인다. 그는 스스로 '허깨비같은 삶'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준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것을 원해한다. 학교도 무단으로 결석하는 것이 태반이며, 집을 몇개월씩이나 비운 채 여행을 자주 다닌다. 무전여행도 다니며, 뜬금없이 산에 몇달간 명상을 하러가기도 한다. '여행'은 그의 내면이 어디에도 정착되지 못한채 하염없이 방랑하는 것이 표출된 것 같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따라서 막노동도 해보고, 제빵점에 취직을 하며, 절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 준의 태도는 나와는 거리감이 느껴져서 다른 사회속의 인물을 보는 것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나와 다른 측의 성질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내가 그들의 다른 면을 통해 발전해나아가는 것이 '성장소설'이다. 이게 내가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준은 이런 방랑적인 삶을 유서를 쓰고 자살시도를한 후, 끝을 맺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기차역에서 그의 방랑기적 회상이 끝난다. 그에게 베트남으로 떠나는 여행은 이제 새로운 시작이 된 것이다. 그는 기차역에서 의지적인 태도를 보인다.

 

 '헤어지며 다음을 약속해도 다시 만났을 때는 각자가 이미 그때의 자기가 아니다.

 이제 출발하고 작별하는 자는 누구나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다.'

 '그렇다. 대위의 말대로 사람은 누군든지 오늘을 사는 거니깐.'

 

 여기서 책 제목인 개밥바라기 별은, 준의 유년기같다고 느낀다. 일단 작가의 말에서 밝힌 개밥바라기 별은 '금성이 새벽에 동쪽에 나타날 때는 샛별이지만 저녁에 서쪽하늘에서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은 후 개가 밥을 줬으면 바랄 즈음에 나타나서' 그런 이름이라는 것이다.

 책 중에서는 막노동 인부가 개밥바라기 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준은 개밥바라기 별이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느낀다.  준의 유년기는, 편평하지 않고 불안정하게 쏠리고 몰려있었으며 마음은 빈 듯이 쓸쓸했었다. 그런 그의 시절이 개밥바라기 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는 준의 미래가 샛별이기를. 그는 개밥바라기 별을 통하여 샛별로 진화할 것이다.

 

 처음 츠지 히토나리를 알게된 것은 공지영님과 같이 쓰신 <사랑 후에 오는 것들>과 <냉정과 열정사이>를 통해서였다. 작품이 꽤 마음에 들어서, 이번에도 다른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

 

 현재 일본에서 알아주는 작가 히토나리씨는, 한때 작가이기 전에 대필가였다고 한다. 즉,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적어주는 사람 말이다. 이 책 '편지'는 그런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있다. 그가 항상 레오나르도 카페 같은 자리에서, 대필을 신청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주며 적었던 경험말이다.

 

 편지를 쓰는 방법에 대한 소개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많은 설명이 나와있는 것은 아니라서 설명서라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여기서는 멋진 편지를 읽음으로써, 우리 또한 그것을 보고 참고삼아 연습해 나아갈 수 있다.

 

 히토나리가 언급한 편지의 사연들을 보면 다들 제각각이다. 그 중 맨마지막의 편지가 가장 인상남았다. 이제 죽을 날이 얼마남지 않은 할머니가 손자를 무척 보고싶어하는데, 그 손자는 15살에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손자의 부모님들은 계속 부재를 숨기고 있지만, 언젠가는 밝혀질 테니 대신 편지를 적어달라고 한다. 손자의 부모님들은 할머니가 손자의 죽음을 알면 병이 더 악화될 것 같으므로, 손자의 부재를 눈치채지 않도록 하면서 할머니의 기운을 북돋는 형식으로 적어달라는 거였다. 처음엔 히토나리가 거절하지만, 결국 이 대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가 썼던 편지를 보면, 정말 잘 적었다, 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대필의 사연을 말해주고 대필해준 편지를 나열해놓고 약간의 편지 쓰는 방법을 곁들여놓는다. 지금은 일본의 대작가라고 칭할 수 있는 히토나리의 문장을 보면, '아 정말 차원이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한다.

 

 점점 디지털화되어가는 현재. 편지를 쓰는 사람들은 드물다. 나도 우표를 사본지 몇년은 된 것 같다. 컴퓨터를 켜면 우표값도 안 드는 이메일을 보낼 수도 있고,  긴급하면 통화할 수 있고, 용건만 말할려면 문자를 하면 되니깐 말이다. 하지만 편지는 그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된다. 일단 직접 쓴 글자 하나하나에,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고 의미가 담긴 것이다. 또한 편지지나 글을 쓰는 펜 등이 벌써 그 사람의 마음을 전해준다는 거에서, 표준화된 글자로 타이핑만 하면 되는 이메일과는 차이가 있다.

 

 책을 읽고, 문구점에 가서 우표를 사야만 해야하는 기분이 든다. 이제 나도, 다른사람에게 편지를 적어봐야지. 아니면 내가 나한테 적어도 좋을 것 같다. 아마 가까운 사람에게는 편지를 적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지만, 멀리 있는 친구나 친척 등에게는 이메일 보다는 편지를 적는 습관을 들여볼 생각이다. 또한 편지는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으니... 옛날에는 편지를 잘 모으지 않았는데, 지금부터라도 편지를 받으면 꼭꼭 모아둘 것이다. 그러면 간직하여 틈틈히 읽어볼 수도 있고, 추억을 회상할 수도 있고... 과연 내가 죽기 전에, 몇 박스의 편지를 모을 수 있을까?

 

 최근 개밥바라기 별을 읽은 후, 황석영님의 소설에 빠져서 도서관에 이리저리 책을 찾는 중, 이 책을 발견했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황석영씨가 그 황석영씨가 맞는지, 긴가민가했다. 책 제목이 황석영씨가 쓸 것 같은 류의 소설(?)이 아니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책을 고를까 말까, 했는데 이 책이 개정판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로 옆에 분권으로 1,2권 나누어진 '심청'이 꽂혀있었으므로. 개정까지 해서 책을 낼 정도라면, 작가의 기울인 심혈도 클 것이다, 라는 생각에 서슴없이 골랐다. 개정하면서 합권해놓으니 분량이 700페이지에 달했지만, 문체의 속도감과 긴박감, 어색함이 없음에 마음에 들어서 2일만에 통독했다.

 

 우리나라 유명한 고전 중 하나인 '심청'. 우리는 '심청'이 하면, 아비는 맹인이었고, 자신을 공양미 300석과 대신하여 팔았다가 용궁에 갔다가 왕후가 된다는 스토리를 생각한다. 또는 '심청은 과연 효녀인가?'라는 주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것만 생각할 뿐이지만, 작가들한테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우리나라에서 심청이 가지는 의의가 크다고 한다. 채만식도 심청에 관해 몇차례나 개정하면서 글을 쓴 적이 있다고하고, 광장으로 유명한 최인훈씨도 그러하다고 한다.

 

 심청이 갔다는 용궁은 유곽을 말한다. 솔직히 처음부터 조금 19금스러운(?) 내용이 나와서 당황했다. 처음 심청이 팔린 곳은, 80대 노인의 회춘용. 조선태생인 청이는 중국, 싱가포르, 일본... 등의 각지로 팔려다니는 결코 순조롭지 않은 기구한 삶이다. 하지만 청이는 절대 기죽지 않고, '그래, 너네가 나를 팔아도 난 내 빚을 갚고 내발로 걸어나갈테다.'라는 생각을 가진다. 정말 여장부같은 기개이다. 만약에 내가 길거리에서 납치되어서 몸이 팔린다면, 혀깨물고 자살치 않았을까.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다. 청이는, 조선시대 후반 식민지전쟁이 활발할 무렵의 우리 조선시대의 여인상이다. 그 고난과 시련을 모두 겪고도, 결국은 성공하며 일어서는 청이는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길이 없다. 당시는 남자들에 의해 좌우되는 삶이었어도, 그녀는 절대 남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주도권을 잡는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주인의식이 확고하다.

 또한 그녀는 몇번씩이나 유곽을 전전하며 자신도 남자들에게 성을 매매하고 강요당하기도 하지만, 절대로 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인색하게 굴지도 않는다. 당시에는 서양과의 교역이 막 활발해지던 시기여서 양인들이 많이 왕래했다. 그러자 유녀들과 잠시 머물다 간 양인들 사이에서의 혼혈 아기들이 태어났다. 유녀들은 아기를 기를 형편도 안되고, 아빠도 없으므로 길거리에 버리게된다. 그런 아이들을 측은히 본 청이는,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 기르는 '고아원'같은 기아보호소를 짓는다. 싱가포르와 일본에서 2번이나 말이다. 정말 대단한 여자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청이의 호걸같은 기개와 굴하지 않는 태도, 당당함. 정말 본받고 싶다. 어떤 삶을 맞딱뜨려도 자신 스스로가 헤쳐 나아가겠다는 태도. 비록 청이의 시련과 고난은 닮고 싶지 않지만...